남편이 선박 면허를 따기 위해 시험을 치렀다. 1차 필기시험, 2차 필기시험, 3차 실기시험의 관문을 통과해야 면허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지난 화요일 1차 필기시험에 도전했다. 그 며칠 전 접수를 하고 시험에 필요한 자료를 한 묶음 구해오고선 공부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하고자 맘먹으면 그곳에 집중하는 나와는 너무나 다른 성격의 남편이다. 걱정되는 마음에 공부는 안 하냐고 물어보니 미리 하면 다 잊어버려서 시간만 낭비라고 3일 전부터 하면 된다고 말한다. 어이가 없어진 나는 "맘대로 하세요 그러다 떨어지면 접수비만 날리고 다음까지 또 기다려야 하는데 그러느니 미리부터 공부하겠다."라고 한마디 하고는 잊고 있었다. 토요일 완도에 갔다 일요일에 왔으니 시험 전 3일 중에 2일은 그냥 보내고 월요일은 아침부터 어딜 갔다 온다며 나갔다가 오후 4시쯤 들어왔다. 그리고선 공부한다고 저녁 먹고 작은방으로 들어가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시험날짜를 묻지 않았던 나는 그제서 "시험이 언제인데?" 하고 물으니 "내일이라니까"하며 마치 나에게 소상히 알려준 듯한 표정이다. 사람을 어이없게 만드는데 소질이 있는 것 같다.
빨간 펜을 가지고 체크하며 보던 시험자료들은 이제 두 페이지 정도만 공부한 흔적이 보였다. 나머지는 밤새 잠 안 자고 봐도 절반도 보지 못할 것 같았다. 공부한다고 잠잘 생각도 안 하는 남편을 보며 다음날 새벽에 일까지 하고 오면 시험은 망칠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할 수 없이 다음날은 나 혼자서 일을 하기로 마음먹고 남편한테 말했다. "새벽에 나 혼자 할 테니까 공부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주무셔, 일 신경 쓰지 말고...."라고 했더니 반색을 하며 좋아한다. 혼자서 잠자리에 들어 자고 새벽에 일어나니 그때까지도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일어나니 벌게진 눈으로 힘들다며 한숨 잔다고 들어간다. 식탁에 놓인 자료를 보니 군데군데 빈종이로 넘기며 공부한 흔적이 보인다. 아무리 천재라 해도 그 정도의 공부로는 합격할 것 같지가 않았다.
떨어지더라도 시험장에는 가야 했기에 부지런히 찹쌀밥을 지어 아침을 차려주고 다시 일을 마무리해야 했던 나는 시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오후 5시가 되어도 연락도 없는 남편에게 전화를 하니 누구를 만나 저녁을 먹고 온다고 한다. 당연히 시험 결과는 그날 알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남편이 먼저 말한다. "여보! 나 합격했어"목소리는 들떠있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아직 발표 안 했을 거잖아?"라고 하니 "요즘은 그 자리에서 바로 알 수 있어 점수까지 확인했어" 라며 의기양양하다.
남편은 참 대단한 것 같다. 어쩌면 시험운을 타고났는지도 모르겠다.
몇 해 전 음주운전으로 취소됐던 면허를 다시 따는데 보통 1종 면허였던 남편은 그 기회에 대형면허를 따겠다고 했고, 난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 음주운전이나 하고 다닐 바에야 차라리 면허가 없는 편이 났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험을 보는지도 모를 정도로 무심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대형 면허증을 찍어서 카톡방으로 보내왔다. 자세히 보니 남편이 단 한 번만에 대형면허에 합격을 했던 거였다.
살다 보면 피땀 흘려 열심히 하는데도 성과가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으면서 편하게 하는데도 어떤 성과를 인정받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그런 것은 '운이 따르고 안따르고'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는 듯하다. 남편 말에 의하면 자기는 전생에 천상의 공주였다고 한다. 어쩌다가 실수를 하여 지상으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그 죗값으로 나같이 '독한' 여자를 만났고 나 때문에 자기 삶이 힘들어도 참고 살아야 죄가 사해져서 다음 생이 편해질 수 있다고 하며 그래서 내가 바가지를 긁어도 참는 거라고 한다.ㅎㅎ 기가 막혀서.....
암튼 참으로 독특한 면이 있는 남편이다. 세상살이에 어떠한 부담도 느끼지 않는다. 먹을 것은 때가 되면 언제나 당연히 있는 것으로 알고 돈도 필요하면 언제든 내게 말하면 매번 있는 줄 안다. 가고 싶은 곳은 다가야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은 모두 만나야 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다하고 살아야 집안이 조용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세상 누구도 적으로 보지 않는 순수함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