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군 완도읍 청해진남로 101-1번지는 신흥사라는 사찰이 있는 곳이다. 완도읍에서 운동삼아 뚜벅뚜벅 걸어서 목적 없이 걷다가 만난 사찰이었다. 사찰의 뒤쪽으로는 남망산이라는 이름의 낮은 산이 있고 앞쪽으로는 그야말로 완도의 풍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우리나라 명당에는 모두 사찰이 있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신흥사라는 사찰 또한 명당의 터에 자리하고 있었다.
목적 없이 나온 길이라 시간 또한 정해진 것이 아니어서 전망 좋은 사찰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사찰 입구에는 공덕비와 행적비가 세워져 있다.
창건주 송암당 성렬대화상의 공덕비와 지운당 청파 대선사 행적비이다. 창건주 공덕비 옆에는 창건주의 부도도 있다. 살펴보니 신흥사의 역사는 그리 길지는 않았다.
1932년 창건주 스님에 의해 불로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가 중간에 신흥사가 되었다고 하며 해남 대흥사를 부흥시킨 초의선사의 맥을 이은 스님들이 신흥사의 맥을 이어 오셨는데 그중에도 대흥사 출신 응송 스님과 백양사의 방장이셨던 지종 스님이 거처하셨던 곳으로 유명하다. 조계종18교구 백양사의 말사이며 완도군의 생일도 학서암과 함께 전통사찰로 등록되었다. 1628년 조성된 목조 약사여래 좌상(전남 문화재자료 제214호)이 모셔진 사찰이다.
약사여래좌상은 원래 해남 대흥사 소속 암자인 심적암에 있었던 것인데 초의 스님이 대흥사 대광명전에 모셨다가 응송 스님 당시에 신흥사로 옮겨 봉안하였다. 불상에서 나온 복장물의 발원문에 의하면 불상의 명칭은 약사여래좌상으로 호칭되었고 1628년에 처음 조성하였으며 1802년에 중수, 1845년 개금불사, 1865년 중수개금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불상의 조성 시기는 임진왜란의 혼란기를 지나서 서서히 불상 조성의 움직임이 시작되는 시점의 불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당시까지는 조선 전기의 불상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8-19세기는 불상 조성의 형태가 변화하는 시점으로 이후의 불상 양식과 비교하는 표준이 되고 있다.
신흥사는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며 불교를 쉽게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찰이고, 해마다 장보고 학교를 개설하여 학생들에게 완도의 역사를 가르치기도 하고, 일반 시민들에게 도예공방을 열어 문화생활의 일면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도 하여 완도 군민들에게는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나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하여 사찰의 적막함만이 감도는 조용한 사찰이었다. 덕분에 사찰의 분위기를 홀로 오롯이 느끼며 대웅보전과 약사전을 들러서 인사를 드리고 눈에 보이는 대로 완도의 경치를 구경하였다.
한눈에 보이는 완도의 풍경은 그림 같았다. 완도타워에서 완도군을 조망하던 때에는 사찰은 잘 보이지 않았었는데 사찰에서 바라본 완도타워의 모습은 확연하게 한 폭의 그림처럼 조망할 수 있었다. 종루에서 바라본 풍경은 더할 수 없이 아름다웠고 사찰 경내 어디를 걸으며 바라보아도 다도해의 멋진풍경이 눈길을 끌고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었다.
완도읍에서 걸어서도 운동삼아 갈 수 있는 신흥사는 완도군이 다 바라다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그곳에 서면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공간에 있는듯한 느낌으로 잠시 몸과 마음을 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찰이었다. 가볍게 산책 삼아 나선 길에 만났던 신흥사의 느낌은 내 삶의 한 점 추억이 되어 가끔씩 꺼내보고 싶은 그런 곳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