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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Sep 24. 2020

고들빼기김치

소고기를 선물하기로 했다.


20여 년 전 어느 신문의 콩트 만화에서 보았던 것 같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고들빼기김치를 아주 잘 담그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은 입맛이 없다는 옆집 사람에게 한 접시를 보내었는데 그 맛을 본 옆집사람은 과연 잃었던 입맛을 찾았다. 너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는 이 사람은 소고기를 사들고 감사의 인사차 옆집을 찾았다. 고들빼기김치가 맛있어서 왔다는 이 사람에게 다시 답례로 고들빼기김치를 한통 담아서 보냈는데 얼마 후 다시 소고기를 사들고 찾아왔고, 또다시 고들빼기김치로 답례를 하였다. 이렇게 소고기를 사 가지고 가면 알아서 고들빼기김치를 담아주니 그 김치가 먹고 싶을 때마다 소고기를 사들고 찾아온다는 이야기였다.


그때는 고들빼기김치가 지금처럼 흔하게 담가먹던 음식이 아니었다. 물론 소고기는 더 귀해서 웬만한 집에선 생일 때 국거리용이나 명절 때 차례음식 정도로밖에 구경하지 못하던 고기였다.

그 귀한 두음식을 맞바꾸어 먹었던 시절이 정말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 글귀를 우연히 보았고 지금까지 고들빼기김치만 보면 그 말이 떠오른다. 그 고들빼기김치가 우리 집에도 들어왔다. 남편 지인분이 많이 담았다면서 한통을 싸주셨다고 했다. 한 젓가락 먹어보니 쌉쌀한 맛이 식욕을 돋웠다.


고들빼기의 쌉쌀한 성분 때문에 이 김치를 담그려면 손이 많이 간다. 우선 잔뿌리까지 다 먹는 음식이어서 손질부터 까다롭다. 다듬을 때 꼼꼼하게 하지 않으면 먹을 때 흙이 씹혀 지끄럽다. 그런 경우엔 맛이 반감되기도 하고 심하면 힘들게 담근 맛있는 김치를 먹지 못할 경우도 생겨나니 처음부터 정성을 들여야 한다. 그리고는 소금물을 풀어 이틀 정도 담가 쓴 물을 빼야 한다. 이 정도의 시간과 정성을 들인후에 비로소 양념을 하여 완성을 시키는데 양념도 일반 김치보다 많이 들어간다. 특히 단성분을 많이 넣어야 쓴맛을 반감시켜 먹기에 좋다.


보통의 김치보다 많은 정성과 시간이 들어가니 그래서 더 맛있는 기분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처럼 수시로 일감이 몰려와 언제라도 처리해야 될 일들이 생길지도 모르는 자영업자의 입장에서는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이런 음식을 공들여 담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나는 몇 해 동안 고들빼기김치를 담그지 못했다. 기본적인 배추김치나 총각김치도 김장 때 엄마가 담가주는 김치만 먹을 수 있다. 특별한 김치가 먹고 싶어 반찬가게에 갔던 적이 있는데 가격도 비싸고 맛에도 무언가 아쉬운 점이 있어 요즘은 거의 김치 사러 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고들빼기김치를 받고 보니 정말 행복했다. 맛 또한 엄마의 정성을 담은 깊은 맛이 느껴졌다. 고들빼기김치 한 가지만으로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소고기와 바꾸어 먹어도 좋을 음식 고들빼기김치는 며칠 동안 내 입맛을 돋워 주었고, 그 덕분에 밥상에서 행복을 느꼈다. 또한 이 김치의 쌉쌀한 성분은 간 건강에도 좋은 작용을 하는 약선 음식으로 몸의 피로도 풀어준다.

해마다 가을의 문턱에서 그 진미를 느낄 수 있는 고들빼기김치가 올해는 일찌감치 나를 찾아와 맛있는 가을을 맞이하게 해 주었다.


이 정도면 소고기 한 근으로는 안될 것 같다.

곧 추석도 다가오는데 선물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이 댁에는 소고기로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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