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너무 좋은 여행

스스로에게 위로의 시간이 되다

by 강현숙

여행을 하고자 할 때 어디를 갈지 막막할 때가 있다. 도착한 여행지가 마음에 들어도 들지 않아도 시간과 비용은 뒤돌릴 수가 없는데 이왕 떠난 거 마음을 좋은 기분으로 가득 채우고 돌아올 수 있다면 성공한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은 다행히도 sns만 열면 정보가 넘쳐난다. 볼거리, 먹을거리, 장 볼거리, 심지어 인생 샷을 남길 수 있는 포인트까지 짚어준다. 그 많은 정보 중에서도 나는 언제 어디를 가면 좋은지 알 수 있는 제철 여행지의 소개가 가장 유용하다는 생각이다.


요즘 거의 주말마다 완도에 내려가는 일정 속에 따로 여행지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다. 다행히도 남도에는 사찰, 문화, 인물, 역사, 그리고 명산과 바다 등 가보고 싶은, 곳이 정말 많다. 낚시를 좋아하는 남편과 동행할 때는 낚시하기 좋은 장소를 물색하여 떠나는 남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9월 초부터 완도에 내려가 있는 남편 덕분에 주말에 혼자서 차를 운전하여 가게 되었다. 남편의 빈자리가 허전하기보다는 해방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나는 주말이 되어 보게 되는 남편의 얼굴이 못 견디게 보고 싶기보다는 의무감에 간다는 생각이 더 크다.


토요일 새벽일을 마치고 나면 장거리 운전에 대비하여 한숨을 잔다. 그리고 출발하여 내려가는 길에 명승지를 한두 군데 들리기로 마음먹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출발전에 인터넷 검색을 하여 어디를 가면좋을지 고른다. 그렇게 선택된 이번 여행지는 고창 선운사, 영광 백수해안도로였다.

선운사에선 상사화라 불리는 꽃무릇을 보고 싶었고 백수해안도로에서는 코스모스를 즐기고 싶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간식거리와 커피를 끓일 수 있는 간단한 도구를 챙겨서 출발했다. 남편과 같이 다닐 때는 거의 남편이 운전을 하니 조수석에 앉은 나는 핸드폰을 열고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읽거나, 남편의 간식거리를 챙기거나, 한숨 자거나 한다. 운전을 안 하니 주변의 풍경들을 더 둘러볼 것 같아도 사실은 바깥을 주의해서 살피지는 않았다. 매번 다니는 길이니 길을 다 알 거라고 생각하고 출발했는데 자꾸만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선운사를 찍었다. 내비가 안내하는 길이 잘 맞는지 가끔씩 이정표를 확인하면서 가다 보니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넓은 주차장에 드문 드문 주차되어 있을 뿐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여파가 분명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호젓한 길을 걸으니 활짝 핀 꽃무릇이 환영하듯 길옆으로 화려하게 피어있다. 꽃무릇의 아름다움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이면 핸드폰 카메라를 열어 사진을 찍었다. 혼자여도 전혀 외롭지 않은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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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해 질녘이 되어 선운사 사찰에 도착하니 고즈넉한 사찰의 분위기가 다시 한번 내 마음을 다독여 준다. 여러 그루의 연륜 있는 배롱나무(목백일홍) 또한 붉은 정열을 꽃피우고 사찰의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대웅전에 들러 인사를 드리는 시간에 마침 범종을 타종하는 소리가 들렸다. 보통 사찰에서는 하루에 두 번 범종을 울린다. 새벽에 28번, 저녁에 33번,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이 범종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어 고통에서 벗어나라는 의미라고 한다. 중생구제의 염원을 담은 웅장한 울림이 저 멀리 끝없이 퍼져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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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이었지만 눈으로 소리로 느낌으로 감정으로 일상에서 벗어나 즐기는 가슴 따듯해지는 시간이었다.

내가 소중하다고 느껴지는 시간, 나를 위해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걷고 싶은 길을 걸으며, 내가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면서 나를 위로했던 시간, 혼자여서 그 어느 때보다 훨씬 좋았던 시간이었다.


내친김에 나를 위한 사치 한번 더 부려보기로 했다. 선운사 아랫마을에 즐비하게 늘어선 장어구이집들을 혼자라고 그냥 지나쳐 오고 싶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그중에서도 가장 맛있을 것 같은 한집을 골라 들어갔다. "몇 분이세요"라고 물을 때도 당당하게 "혼자예요"라고 말하고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리고 장어 양념구이 1인분을 시켰다. (사실 1인분은 안 판다고 할까 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만약에 그랬으면 2인분을 시켜서 먹고 왔을지도 모른다.) 종업원은 두말도 하지 않고 바로 상을 차리고 숯불을 넣어주었다. 주변 테이블에서 힐끗거리는 느낌은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장어구이 맛을 음미하기 위해 집중했다. 살살 녹는 그 맛이 금방 몸에 기운을 올려주는 듯했다. 복분자주 딱 한잔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백수해안도로 어디쯤까지 갈 예정이어서 참았다.


식당에서 나와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에 백수해안도로를 찍었다. 선운사에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였다. 이미 어두워진 시간이라 밖의 풍경은 감상할 수 없었지만 코끝을 간질이는 바다의 내음을 느끼며 달렸다. 그곳에는 또 어떤 풍경들이 날 맞이할까 기대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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