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감 교사 시절에 쓴 일기
나는 생활지도 교사이다. 일명 '사감'이라고 부른다.
2014년 3월부터 '세종 ㅇㅇ고등학교' 기숙사에서 근무한다. 먼저 밝히지만 사감이라는 직업은 직업으로만 생각하면 단 며칠도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마음은 아니더라도 이모 같은, 고모 같은 애정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ㅇㅇ고 기숙사에 오고 일주일 만에 깨달았다. 내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된 나는 도저히 이모, 고모의 마음으로 고등학생인 아이들을 바라봐 줄 자신이 없어서 일주일 만에 계속할지 말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그만두기를 결정하고 팀장님께 통보하니 다음 생활지도교사를 구할 수 있는 보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사표를 보류하였다.
이에 사표를 내었으니 오래 하지 않아도 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 이틀 근무를 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향한 부담감도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표를 내고 그만 두리라 마음먹은 그때부터 내 마음속의 사감의 기질이 나타났나 보다. 나도 모르게 아이들이 규칙을 어길 때는 엄격하게 혼내주고 아이들이 곤란한 경우에는 그 일을 함께 해결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혼내준 아이에 대한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다음날 만나면 따뜻하게 위로하게 되고 그러면 아이들도 따라서 죄송하다며 사과하고 그렇게 아이들과 정이 들었다.
3월 한 달만 채우고 그만 두리라던 마음은 아이들의 아이다운 모습을 포용하고 엄마 아빠 떨어져 생활하는 아이들을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으로 변하였다. 다시 계속하고 싶다는 의사를 학교로 보내어 수락을 받고 비로소 ㅇㅇ고 사감으로서의 진짜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을 지도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벌점이다. 벌점이 쌓이면 기숙사 생활을 얼마간 제한받기도 하고 학교에서 수상의 결정에도 반영된다고 하니 아이들은 당연히 벌점을 무서워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난 ㅇㅇ고에 사감으로 오기 전에 칭찬이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서 공부를 하였었다. 그래서 난 ㅇㅇ고 아이들을 벌점이 아닌 칭찬으로 생활을 지도하여 졸업까지 1점의 벌점도 받지 않는, 어디에 내놓아도 인성 부문에서도 우수한 아이들이 되도록 지도하리라 다짐하였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괴리가 생기는 법, 나의 순수한 마음을 학생들이 벌점을 피해 가는 길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엔 정말 몰랐다. 취침시간 타호 실 출입이라는 위반을 하여 "벌점 받아야겠다"라고 하면, "갑자기 배가 아파서 방에 아이들이 잠 깰까 봐 복도 화장실에 가는 중이었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말이 정말인 줄 알고 그 아이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예쁘다는 생각에, 화장실에서 무서울까 봐 친절하게 불까지 켜주며 데려다주었다. 한 바퀴 돌고 나서 사무실에서 정리하다가 다시 올라와 보면 또 다른 소란함이 있어 방문을 열고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00가 생리하는데 이불에 묻어서 같이 치워주고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또 "그래 친구들이 서로 도와줘야지..."하면서 잠깐의 시간까지 주고 내려오곤 했었다. 그리곤 다음날 등교시간에 만나면 밤새 잘 잤는지 안부까지 물으며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오기를 덕담으로 전하곤 했었다. 하지만 아무 때나 이모처럼, 고모처럼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정독실 자습시간 만큼은 엄격하게 하였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내가 자습 감독일 때는 잘 따라주는 듯했다. 그렇게 사감으로서 익숙해지던 어느 날, 자습 감독을 하고 있는 중에 정독실이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인지 들어가니 안쪽에서 "할매쌤이야, 할매쌤" 하면서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것이다. 소란의 원인을 찾지 못하고 뒤돌아 나오는데 '할매쌤'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밟혔다.
정독실에서 할매쌤이 누구냐고 물을 수 없어서 그냥 나오면서도 알 수 없는 감정이 마음을 흔들었다. 이모처럼, 고모처럼 이라고 생각했던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아이들 사이에서는 나를 '할매쌤'이라고 통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은 한 번도 다른 곳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할머니'라는 의미에 잠깐의 충격을 받았다. 그리곤 오래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고민을 했다. 방송대를 다니기 전에는 다른 누군가를 지도하는 위치에서 선생님 소리 들으며 산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다만 그런 직업을 가진 누군가가 부러웠을 뿐이었다. 그랬던 직업을 늦은 나이에 갖게 되었는데 그만 두기도 아쉽다.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그만두지 말라고 잡아줄 것 같지도 않았다.
젊은 선생님들은 여러 기숙사를 다녀봐서 어느 학교는 어떻고, 또 어느 학교는 어떻더라는 말을 하며 비교하다가 그곳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또 바로 빈자리를 채울 정도로 옮겨오기도 하였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다. 사감을 꼭 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사감을 하려고 집에서 먼 다른 학교로 가는 것은 더더구나 원치 않는다. 이곳에서 할만하면 계속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감 생활을 아주 그만둘 것이다. 일단은 그만두지 않을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보자. ㅇㅇ고에서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들 중에 내 나이가 가장 많다. 어느 선생님과는 스무 살도 넘게 차이가 나니 그분들과 비교하면 아이들 입장에서는 할머니 뻘이 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냥 감수하기로 하자. 그리고 집을 떠나 생활하는 아이들에게는 이모나 고모보다 할머니의 정이 더 필요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는 결정을 내리니 '할매쌤'이라는 호칭 정도는 애교로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하기로 하였다.
어느덧 두 학기를 마치고 나니 이제 한 명 한 명의 성향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엔 아이들이 날 속이는 줄도 모르고 속아 주었지만 이제는 아이들 속이 다 보인다. 표정만 봐도 무슨 말을 할지 알겠고, '선생님~~'하고 부르는 목소리만 들어도 위로가 필요한 건지, 쓸데없는 푸념을 할 건지 알 것 같다. 얼굴색만 보아도 정말 아픈 건지 꾀병 인지도 파악이 된다. 그래서 지금은 속아줘야 할 때를 알며 속아주고 습관적으로 피해 가려하는 아이들에게는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다독이고 칭찬해 주면 얼마든지 모범생이 되는 아이들이 있고 매섭게 야단치지 않으면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도 있는데 이곳 아이들은 거의 모범생이다.
단단한 나무는 바람에 부러지고 연한 갈대 줄기는 바람을 즐긴다. 갈대 줄기처럼 환경을 탈 줄 아는 아이들 이었으면 좋겠다. 이곳의 아이들은 선택받은 아이들이다. 이미 중학교 시절에는 각자의 학교에서 TOP을 달리던 아이들이고, 외국어 두 가지 이상은 구사능력이 있는 아이들이다. 게다가 국제계열의 진로를 목표로 하고 있어 성격도 국제적이며 개성들이 강하다. 분명히 졸업 후에는 지구촌 한 지점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며 멋진 삶을 펼칠 것이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지금은 좋은 샘이 아닐 수도 있다. 아이들은 날 무섭다고 한다. 까칠하다고도 한다. 그리고 잔소리쟁이 정도로 생각한다. 난 정말 애정 어린 마음으로 그애들이 벌점 받지 않고 잘 지내기를 바라며 잔소리를 하는데, 그 진심을 아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중에 사회인이 되면 내 잔소리들이 기억 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