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찾아 떠난 길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

by 강현숙

갑자기 가을이 궁금해졌다. 어디쯤 왔는지...



아마도 얼마 후면 일에 묻혀 여행하지 못할 것을 몸이 알기 때문 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는 일은 추울 때가 시즌이다. 바다에서 자라는 미역, 다시마, 톳, 곰피, 청각, 매생이, 파래, 들을 취급하는데 한 달 전쯤에 파래가 나와서 지금 팔고 있고 내일부턴 톳이 나온다. 그리고 이달 말경엔 미역이 나온다. 가공하지 않은 상태의 생물들을 취급하는 것이라 계절에 민감하다. 특히 미역과 곰피는 수온이 18도 이하에서 잘 자라고, 22도 이상이면 자라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아예 죽어버린다. 이렇다 보니 깊은 가을부터 다음 해 초봄까지는 거의 여행이란 걸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인듯하다. 몇 년 동안 즐기지 못한 가을을 느끼면서 몸에 여행의 욕구를 채워놓아 바쁜 겨울을 몸부림치지 않으면서 나고 싶다는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찾아 나선 곳은 전남 장성의 장성호와 백양사였다. 얼마 전 오뚜기 식품 회장과 그의 딸이 템플스테이를 다녀온 곳이라는 뉴스를 보고 주저 않고 가을맞이 장소로 정했다. 소개된 뉴스에는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있고, 멋진 가을을 기대할만한 기사가 적혀있어서 내심 적지 않은 기대가 되었다. 도착한 황룡강 둔치에 조성된 코스모스는 기대만큼 만개해 있었다. 향기로운 코스모스 길을 걸으며 꽃향기로 마음을 흠뻑 적셨다. 코스모스 향기가 스며든 마음은 한없이 평안하고, 여유롭고, 너그러워졌다. 언제부터 이런 사치를 누리며 살았는지, 예전에 일만 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가슴 벅차게 행복하다는 기분을 만끽했다.


장성호 주변을 걸으면서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경치를 보았다. 다가오는 가을을 물에서 즐기려는 사람들이 수상스키를 타고 있었다. 여름에 제한된 움직임으로 다 즐기지 못한 여운을 수면 위를 달리면서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수변데크를 따라 분위기에 젖어 한참을 걸었다. 가을을 맞으러 온 사람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멋진 장성호 주변의 운치를 느끼며 기분이 좋아진 나는 백양사로 향했다.


백양사는 단풍이 아름다운 산, 백암산에 자리한 천년고찰이다. 정읍의 내장산과 장성의 백암산이 서로 다르지 않은 산이다. 단풍으로 유명한 산이나 이날은 가을이 무르익지 않아 단풍을 즐길 수는 없었다. 대신 새파란 청춘의 모습을 과시하는 나뭇잎들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며 고즈넉한 정취를 풍기고 있었다. 백양사는 매표소에서부터 1킬로미터 정도를 차량이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경치 좋은 이 길을 차로 쌩~ 들어가기가 싫었다. 차를 세우고 걸으면서 백암산의 숨결을 더 많이 느끼고 싶었다. 몇몇의 사람들이 걷고 있는 중에 두 분의 스님도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자연과 동화된 듯 스님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 스님들의 뒷모습에서 산다는 것 또한 뒷모습을 남기며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가고 남는 것은 뒷모습일것이다. 누군가 나를 기억한다면 그것은 나의 뒷모습 일 것이기에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어떻게 살면 그렇게 될까?

나의 뒷모습은 남들이 어찌 평가하려나?


화두를 떠올리면서 도착한 백양사는 막 저녁 예불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러 명의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사람들도 보였다. 템플 스테이는 하루나 이틀, 아니면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정하고 사찰에 머물면서 불교문화나 사찰 생활을 몸소 체험하는 일이다. 자신의 길이 제대로 가는 길이 맞는지, 복잡한 사회에서 어떡하면 상처 받지 않고 잘 적응하며 살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백양사의 저녁 예불은 고즈넉한 속에 마음을 정화하기 딱 좋은 분위기였다. 이미 땅거미가 짙게 드리운 산속에서 은은하게 빛을 밝히는 법당의 자태에 밤공기를 가르는 범종의 울림이 더해져 저절로 해탈을 할 것 같았다. 부처님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자연스럽게 오체투지를 하였다. 이름하여 백팔배, 백여덞가지의 인간의 번뇌를 씻고 해탈하도록 이끌어준다는 불교의 한 행위이다. 몸을 낮추고 마음을 비워내는 백팔배를 하고 나니 밖은 완전히 어둠에 묻혀있었다. 떠나오고 싶지 않았지만 잡아주는 이 없어 하산을 하였다. 백양사로 이어진 길들이 나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또박또박 흐트러짐 없이 밤길을 걸었다. 군데군데 졸고 있는 듯한 가로등만이 어둠 속을 걷는 길손을 배웅해 주고 있었다.



사색하기 딱 좋은 장성호 수변 데크


황화 코스모스, 장성군은 옐로 시티 컬러 마케팅을 통해 관광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그래서 꽃도 나무도 노란색을 많이 심는다.
장성호 관광지 공원, 넓은 잔디밭과 주차시설이 있어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이 찾아와 한때의 행복을 누리는 곳이다.
백양사 일주문, 불교와 대중이 둘이 아니라는 의미를 갖고있으며 사찰의 초입에 세워 진다. / 백양사를 향해 걸어가는 두 스님의 모습이 자연을 닮았다.
백양사 쌍계루, 이곳에 서면 백양사의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만날 수 있다.
1, 이팝나무 / 2. 백양사 대웅전 / 3. 예불을 주관하시던 스님과 석가모니 부처님
33번의 범종을 울려 모든 중생들을 잠시 평안에 머물게 한다.
밤을 걷는 길손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가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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