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24효'를 돌아보며

노래자를 이은 대전의 효자

by 강현숙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에 노래자라고 하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학식과 덕망이 높아 제왕의 출사를 권유받았으나 혼란한 시기에 자나깨나 자식 걱정인 늙은 부모를 편안히 해 드리기 위해 부모와 함께 깊은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은사(隱士)이다. '중국 24 효'라는 효자이야기를 기록한 책에 전해오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아홉 번째로 기록된 효자, 노래자는 당시 나이가 70이었다. 이미 본인도 늙어 하늘의 명을 기다릴 나이인데 노래자에게는 더 늙으신 부모님이 계셨다. 그 부모님이 나이를 잊고 건강하게 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흰머리를 감싸고, 색동옷을 입고, 병아리를 가지고 놀며, 마치 어린아이인 듯 행동을 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아들이 어린만큼 젊은 시절을 사는 것이라고 느끼셨는지 항상 젊은 기운이 넘치셨고, 넘어져 울고, 물을 뒤집어쓰고, 아이처럼 발버둥을 치는 아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항상 즐거워하셨다고 한다.


중국24 효는 다음과 같다.

1. 순(䑞) 임금의 효감동천(孝感動天)- 하늘을 감동시키다.

2. 한 문제(漢文帝)의 친상탕약(親賞湯藥)-친히 탕약을 맛보다.

3. 증자(曾子)의 교지통심(嚙指痛心)-손가락을 깨무니 가슴이 아팠다.

4. 중유(仲由)의 부미양친(負米養親)-쌀을 짊어지고 와 부모를 봉양한다.

5. 민손(閔損)의 호의순모(芦衣順母)-지푸라기 옷을 입고도 어머니께 순종하다.

6. 동영(童永)의 매신장부(賣身葬父)-몸을 팔아 아버지의 장례를 지내다.

7. 육적(陸績)의 회귤유친(懷橘遺親)-귤을 품에 넣고 와 어머니께 드리다.

8. 채순(蔡順)의 습심이기(拾葚異器)-오디를 주워 서로 다른 그릇에 담다.

9. 노래자(老萊子)의 희채오친(戲彩娛親)-색동옷을 입고 부모를 기쁘게 하다.

10. 왕부(王裒)의 문뢰읍묘(聞雷泣墓)-천둥소리를 듣고 무덤 옆에서 울다.

11. 담씨(郯氏)의 녹유봉친(鹿乳奉親)-사슴의 젖으로 부모를 섬기다.

12. 강혁(江革)의 행용공모(行槦供母)-날품 팔아 어머니를 모시다.

13. 최산남 부인의 유고불태(乳故不怠)-시어머니께 젖먹이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4. 오맹(吳猛)의 자문포혈(恣蚊飽血)-모기가 배부르게 자신의 피를 먹도록 놓아두다.

15. 왕상(王祥)의 와빙구리(臥氷求鯉)-얼음 위에 누워 잉어를 구하다.

16. 곽거(곽거)의 위모매아(爲母埋兒)-어머니를 위하여 아들을 묻다.

17. 양향(楊香)의 액호구친(縊虎求親)-호랑이 목을 졸라 아버지를 구하다.

18. 주수창(朱壽昌)의 기관심모(棄官尋母)-관직을 버리고 어머니를 찾다.

19. 유겸루(庾黔婁)의 상분우심(嘗糞憂心)-변을 맛보며 근심하다.

20. 황향(黃香)의 선침온금(扇枕溫衾)-베개를 부채질하고 이불을 따뜻하게 하다.

21. 강시(姜詩)의 용천약리(涌泉躍鯉)-샘물이 솟아나고 잉어가 뛰어오르다.

22. 정란(丁蘭)의 각목사친(刻木事親)-나무를 깎아 어버이로 섬기다.

23. 맹종(孟宗)의 곡죽생순(哭竹生筍)-대나무를 붙들고 통곡하니 죽순이 돋다.

24. 황정견(黃庭堅)의 척친익기(滌親溺器)-어머니의 변기를 씻다.




고전에 나오는 효도 이야기는 황당한 이야기도 많다. 부모공경의 마음이 그 이야기 주인공의 효도에 미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조금이라도 더 큰 효도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아픈 부모에게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먹게 하는 이야기, 허벅지의 살을 도려내어 고기 대신 국을 끓여드린 이야기, 한겨울 잉어를 구하기 위해 무릎과 온몸이 굳어가는 것도 감수한 채 얼음이 녹아 잉어를 잡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이야기. 아들은 또 낳으면 된다며 부족한 양식을 부모에게 한술이라도 더 드시게 하고 싶다는 마음에 아들을 땅을 파고 묻으려던 부부의 이야기, 주무시는 아버지를 물어대는 모기떼를 유인하기 위해 웃통을 벗고 아버지 옆에 누워 있는 이야기, 등등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법들로 부모를 봉양하려 했던 효자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효도하는 과정은 죽음을 불사 할 만큼 고통도 마다하지 않지만, 결국은 해피엔딩 이어서 효행이 세상에 알려지고 임금에게 큰 상을 받는다던가. 하늘로부터 직접 금은보화로 보답받는 이야기로 마무리 되어진다. 지극한 마음으로 효도를 하면 반드시 큰 복을 받을 수 있음을 강조하는 이야기들이다.


중국 24 효의 이야기는 나라를 넘나들며 많은 효자와 효부들이 따라 하는 모범이 되었다. 그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옛부터 꼭 가르쳐야 할 덕목이 되었다. 이곳 대전과도 가까운 세종시의 한 마을에도 노래자의 효를 따라한 이야기가 전한다. 조선 세종 연간에 이정간(李貞幹)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정간(李貞幹)은 효성이 지극한 사람으로 사헌부 요직을 거쳐 강원도 관찰사로 재임 중이었는데, 그때 그의 나이 80이었다. 세종임금께서 그의 덕과 능력을 인정하여 계속하여 벼슬을 유지하기를 원하였지만, 늙은 노모를 더 늦기 전에, 하루라도 더 봉양을 해야 한다며 관직을 사퇴하였다. 임금은 아쉬웠지만 부모를 모시겠다는 효심을 막을 수 없어 간간히 그의 소식을 듣는 것으로 만족했다. 80세 아들과 100세의 노모, 어느 날 이정간이 안부를 여쭈러 노모에게 가니 노모는 아들의 흰머리를 보며" 아이고! 너도 이제 늙었구나!" 하며 슬픈 표정을 지으셨다. 이에 아들은 '자식이 늙은 모습 그대로 부모에게 보이는 것이 불효로구나!'라고 생각하여 색동옷으로 갈아입고 두건으로 머리를 감싸 흰머리를 감추고, 병아리를 가지고 놀며 재롱을 부렸다. 어머니는 아들의 재롱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사셨다고 한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세종은 그를 정 2품으로 올리고 친필로 "가전 충효 세수 인경(家傳忠孝世守仁敬)"이라는 글귀를 하사하시니, 이 글씨가 이정간의 문중에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이 되어 지금도 효의 표본이 되고 있다.(가전충효세수인경: '가정에서는충효의법도를 전승하고, 사회에서는 인자하고 공경하는 기풍을 지키도록하라.'는 의미이다)


조선 22대 왕인 정조도 어머니 혜경궁 홍 씨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기로 전해온다. 정조 임금은 혜경궁 홍 씨를 위해 지은 화성 행성에 '노래당'을 세우고 '노래당구점(老來堂口占)'을 지어 어머니를 사모하는 마음을 표현했다.(노래당구점/정조: 노래당 속에 활짝 핀 좋은 얼굴/ 동산과 정자의 이름 거듭 걸어 늙을 틈이 없네

평상시엔 감히 늙었단 말 하지 못하고/ 가만히 노래자처럼 색동옷 입어보네. `화성성역의궤 부편2', `어제(御製)에 전하는 정조의 시를 통해 노래자의 효행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을 엿볼수 있다.


세월을 거슬러 오면서 수많은 '노래자'들이 있었겠지만 기록으로 다 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회가 변하면서 정서도 따라 변하여, 지금 우리 사회는 효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가족의 끈끈한 정이 무너지고, 개인주의가 우선시 되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孝와 忠을 강조하는 목소리를 들은 지 언제인지 모르겠다. 이런 때에 나는 노래자를 이은 또 한 사람의 효행을 목격하여 전하고자 한다. 나는 온전히 따라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의 행적들은 존경스럽기만 하다.


대전의 한 도매시장의 상인인 '윤희종'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이 사람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청상의 몸으로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우시고 80이 넘은 몸으로 아직까지도 자식들을 위해 밥 짓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시는 분인데, 이 어머니를 위해서 윤희종은 50이 넘은 나이에 어머니 앞에 재롱을 부리며 산다. 그렇다고 이 사람의 성품이 원래 경박하거나 철없는 사람은 절대로 아니다. 10여 명의 직원을 아우르고 있는 大商의 품성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엄마 앞이 아니면 그다지 필요 없는 말들은 하지도 않고 공과사를 분명히 한다. 말투 역시 절대 가볍지 않다. 오직 엄마 앞에서만 영원한 어린아이로 살고 있는 것이다.

새벽 일찍 시장에 나와 장사를 하다가 아침 지을 시간쯤 되어 오시는 어머니가 저만치에 보이면 하던 일을 놓고 마중 나가 어머니의 작은 가방을 받아 들고 손을 잡고 모시고 온다. "엄마 오셨어!" 하면 어머니는 "어이 아들!" 하며 손을 내미신다. 밤새 안부를 묻는 아들의 손을 잡고 굽어진 허리를 힘주어 펴시며 덩실덩실 춤사위라도 펴실 듯 걸어오시는 모습이 그렇게 밝으실 수가 없다. 아침결에 그렇게 상봉한 모자는 하루 종일 함께 하는데 한가한 시간이면 어머니가 무료하고 심심하실 것을 달래 드리기 위해 아들은 수시로 엄마! 하며 곁으로 가서 재롱을 떤다. 그런 아들 모습에 어머니는 웃음이 끊이질 않으시고 바라보는 사람까지도 흐뭇하게 한다.


벌써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함없는 윤희종의 행동을 보면서 나는 중국의 노래자를 떠올렸다. 사람이 스스로 늙어감을 깨달으면 쓸모 없어지는 것 같아 슬퍼지고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모든 의욕을 잃어버리니 몸도 빠르게 노화하여 기운을 잃어가다가 결국은 세상을 뜨게 되는 거라고 한다. 그런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해서 건강하게 오래 장수하시도록 하는 것, 참으로 훌륭한 효도이다.


자식사랑은 하늘이 내린 본능이어서 누구나 가르치지 않아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효도는 가르쳐야 부모에게는 효도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예부터 효행의 모범된 사례들을 가르치며 인간의 근본으로 삼게 하였다. 그러나, 학교에서 똑같은 시간을 배우고도 시험성적이 우수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가르쳐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듯이 '효'도 그런 것 같다. 효가 인간의 근본이라고 다 같이 배우지만 다 같이 행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끝없이 효를 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다른 시험에서는 타인이 쓴 답을 따라서 적는 이른바 '커닝'이라는 것을 엄하게 금하고 있지만 효도에 있어서 만큼은 커닝에 대한 벌이 없다. 효도는 남이 하는 걸 따라서라도 해야 할 만큼 가치가 있는것이기 때문 일 것이다.


희종이 노래자의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노래자가 했던 효가 세대를 거쳐 250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야기로만 전해 듣던 노래자의 효행을 윤희종을 통해서 보는것 같다. 정작 본인이 이글을 본다면 과하다고 손사레를 칠지 모르겠으나,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하고 행복해 하시니, 어쩌면 노래자를 뛰어넘는 효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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