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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정이 있어야 장보는 맛이 나지

흥정 할 용기 한번 내보자.

by 강현숙

언젠가부터 장을 보기 위해 시설이 편리한 대형마트나 백화점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지간 한 거리면 모두들 자가용을 끌고 가서 주차하기 편리하고 비와 눈을 맞지 않고 이동할 수 있으며, 추울 때는 따뜻한 히터가, 더울 때는 시원한 에어컨이 사계절 언제라도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주는 대형마트들의 장점에 이용객이 적지 않다. 또한 많은 양의 물건을 쇼핑하고 두 손으로 들고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살짝만 밀어주면 스르르 굴러가는 쇼핑카트에 싣고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자동차가 주차된 곳까지 와서 바로 차에 실을 수 있는 편리함은 물론이고 한 번의 주차로 거의 모든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유명한 대형마트에 가면 몇 가지 인지도 알 수 없는 많은 종류의 상품들이 소비자가 한눈에 보고도 알 수 있을 만큼의 정보들을 빼곡하게 달고 손님을 맞이한다. 그 정보를 이용해서 갖가지 물건들을 구매하고 계산대로 와서 결재를 하면 장보기는 끝난다. 어느 물건을 구매하는데 소비자와 관계직원 간의 대화는 거의 한마디도 필요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표시된 정보들을 이해하는데 불편함이 없는 젊은 사람들은 그런 환경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누군가의 설명을 오히려 불편해할 정도이다.


그러나 아직도 재래시장이나 상인과의 직접 대면으로 물건을 구매하길 원하시는 분들도 많다.

보통은 어른이라 칭할 수 있는 우리의 엄마세대부터, 우리 정도의 세대는 물건을 바로 눈으로 확인하고, 상인에게 그 물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손으로 만져보고 가격도 비교하면서 구매하기를 원하는 경우이다.


그런 분들이 장 보러 가시는 곳이 있다. 바로 재래시장이나 동네 시장에 몇 년씩 단골로 다니면서 정을 쌓은 분들이다. 그분 들은 상인과 손님이 서로의 성격을 잘 알아 눈빛만 보아도 무엇을 원하는지 또 장사가 잘되어 기분이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를 척 알아보신다. 때로는 비싼 듯해도 그냥 팔아주고, 못 팔아 남을 것 같은 것들이 있으면 싸게 떨이를 해주거나 그냥 얻어오기도 한다. 그야말로 이웃 간의 정이 그대로 남아있는 공간이 재래시장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요즘에는 우리 같은 도소매를 동시에 하고 있는 약간은 규모가 큰 시장에도 오랫동안 단골을 정하고 다니시는 분들이 있고 마트보다는 덜하지만 재래시장보다는 좀 더 편리하고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면서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상인과의 흥정도 가능한 도매시장을 찾아오는 분들도 많다. 그러고 보니 도매시장이나 공영시장은 재래시장과 대형마트의 중간의 역할을 하는 듯하다. 마트에서는 규격화된 상품을 정찰제로 판매를 하고 있다면 재래시장에서는 원하는 만큼씩 소분해서 살 수 있다. 도매시장은 좀 더 많은 양의 물품을 구매하고자 할 때 이용하면 좋다. 소분해서도 살 수 있지만 박스단위로 사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요즘에 소매를 위한 가게를 다시 열었다. 수산물이면서도 나물이나 쌈등 기본적인 반찬으로 주로 활용되는 해초류의 특성상 오랫동안 야채동에서 판매를 했었다. 그러나 한 품목이라도 더 끌어들이면 수수료 수입이 많아진다는 계산을 한 수산부류 법인에서 해초류도 수산물이니 수산부류에서 판매하도록 해달라는 의지를 관철시켜 지금은 청과부류와 수산부류가 함께 있는 전국의 공영시장에서 해초류를 수산부류에서 팔도록 도매시장법으로 규정하게 되었다. 그나마 작년까지만 해도 수산부류에 상장된 물건이면 야채동에서 팔아도 문제 삼지 않던 것을 한 공무원에 의해서 '판매까지도 수산부류에서 하라'는 분위기를 만들고 말았다. 그래서 새벽에 야채동으로 배달해 주면 되던 일이 소매까지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만든 것이다. 매출 때문이라면 그냥 감수하면 되는데 물품이 필요한 분들이 살 곳이 없어 곤란해질 것이 걱정된 나는 결국 소매 전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해초류를 펴놓고 소매를 하는 김에 어차피 같은 시간 시장에 매어있으니 할 수 있는 것은 하자는 마음으로 냉동식품과 당일에 팔 수 있는 정도의 새우나 꽃게 등을 팔게 되었다. 아무래도 해초류를 중심으로 하는 장사다 보니 보통 수산물이라 불리는 품목들의 구색을 다 갖추지 못하여 손님들 발길을 멈추게 하기가 쉽지 않았다. 손님의 발길을 멈추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같은 물건이지만 조금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길 뿐이다. 결국 내 마진을 줄인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요즘은 재래시장이나 도매시장에도 가격을 표시하고 손님들을 맞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표시된 가격을 그대로 주고 구매해가는 분들이 많기는 하지만 아직도 흥정을 하시는 분들도 많다. 흥정에는 가격을 내려달라거나 추가로 어느 것이라도 더 서비스로 달라시는 경우인데, 어느 때는 정말 난감할 정도로 과하게 깍으시는 분들이 계셔서 팔고도 서운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특히나 생물을 취급하는 우리 같은 경우는 말 그대로 울며 겨자 먹기로 거래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찾아오신 손님들을 서운하게 보낼 수가 없어서 줄다리기를 하다가 손님이 원하는 대로 팔 때이다.


며칠 전의 일이다. 아주머니 두 분이 함께 오셔서는 게장용 암게를 보여달라고 하셨다. 게장용으로는 5월에 살도 찼으면서 알도 품고 있을 때 급냉을 하여 저장했던 것으로 '알배기 암게'라고 부른다. 5월 암게라고 하면 더 보지도 않고 사가시는 분이 계실 정도로 인기가 있다. 그 암게가 우리 집에 2.5킬로 정도가 남아있었다. 더 구하지 못한다 해서 물량을 채워놓지 못했던 꽃게인데 그 꽃게가 아주머니들 눈에 띄었던 것이다.


가격을 물으시고는 다 살 테니까 깎아달라 하셨다. 가격표는 35.000원이 적혀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것을 한꺼번에 팔 요량으로 킬로당 30.000원씩 할 테니 다 가져가시라고 했다. 35,000원짜리가 갑자기 30,000원이 되었다. 냉동 쇼케이스에서 꺼내보라고 하여 박스째 꺼내드리니 갑자기 트집을 잡기 시작한다.


"재는 다리가 없으니까 빼고, 재는 색깔이 이상하니까 빼고, 재는 작으니까 빼고...." 그렇게 몇 개를 골라내고 나머지만 달아보라 하셨다. 웃으며 저울에 올렸다. 1.5킬로를 조금 웃돌았다. 47.000원만 달라고 했다. 금액을 말하니 4만 원에 하자고 하신다. 45.000원이라도 달라고 했다. 4만원 아니면 사지 않겠다고 한다. 가지런히 담겨 있던 게는 이미 다 흐트러져 볼품없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골라놓은 것들을 모두 드릴 테니 가격은 깎지 말라고 했다. 아주머니들은 한술 더 떠서 다 가져가고 4만 원만 주신다고 한다. 내 물건을 아주머니들이 값을 정하고 있었다.


사는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웃었다. 웃으며 얼핏 계산해 보니 원가가 못 되는 가격이었다. '내가 사 먹으려 해도 이 가격에는 못 살 텐데 그냥 내가 끓여 먹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다 먹다 보면 정말 내 물건을 내가 다 사 먹는 꼴이 될 테니 장사에 의미가 없다. 얼마라도 더 받고 팔아서 나와 남편이 좋아하는 고기를 사 먹는 것이 장사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는 안돼요. 장사가 본전은 돼야지요 ㅎㅎ" 아주머니들이 원하는 가격은 크지는 않지만 본전을 밑도는 금액이었

다.

"그럼 안 사" 하며 같이 오신 분을 툭툭 치며 가자고 하신다. 이럴 때는 정말 마음이 흔들린다. '그냥 가져가시라고 할까?' 하지만 그래도 내 물건인데 원가도 안되는 거 알면서 손님에게 휘둘릴 수는 없다. 게다가 그 물건은 귀한 것이고, 상태도 좋다. 재입고가 되기 전까지 누군가는 필요한 분이 계실 것이다. "그럼 그러세요. 다른데도 알아보시고 생각이 바뀌시면 오세요" 하고 주섬주섬 게들을 박스에 가지런히 정리를 했다. 바람을 잡듯이 깎아줘, 더 줘, 하시던 분은 그냥 가자고 같이 오신 분의 팔을 끌며 바람을 잡으시고, 진짜로 게장을 담그실 분은 꼭 사고 싶으신지 "그냥 4만 원에 다 줘" 하시며 발길을 돌리지 못하신다.


사실 골라 놓은 것까지 다 드리고 47000원을 받으면 원가는 된다. 또 1킬로 정도 못생긴 애들만 남겨봐야 팔기는 쉽지 않다. 밑질 때도 있는 것이 장사지만 그럴 경우는 물건이 더 이상 선도유지가 안될 경우이다. 7000원을 빼주면 2,5킬로에서 7000원이 손해가 발생되는 거였다. 한 번만 더 튕겨보기로 했다.


"45000원에 다 드릴게요."그런데 이 아주머니도 보통이 아니다. 한번 더 튕겨보자는 생각을 나와 똑같이 하신 것 같다. "4만 원에 안 주면 안 살래" 하며 돌아서려는 몸짓을 하신다. 나도 돌아섰다. "그럼 저도 안 팔래요" 그리고는 다른 일하는 척 두 분을 외면했다. 금방 가실 것 같던 두 분은 냉동고 앞에 서서 돌아서지를 못하신다. 그리고는 결국 "알았어 45000원 줄테니까 이거 다 줘", 일단 흥정에서는 내가 이겼다. 본전도 못 건지며 다 털어드렸지만 그나마 손해를 줄이고 팔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흥정을 하실 때는 깐깐하시던 두 분이 결정을 하고 나니 엄청 부드러워진다. 꽃게탕용 숫게도 사시고, 손주 쪄준다고 새우도 달라하신다. 숫게에서 10,000원이 남고, 새우에서 5,000원이 남았다. 마진 15,000원 중 암게에서 손해 본 2,000원을 빼면 내 마진 13,000원이 남는다. 이 정도면 장사 잘한 것이다. 어느 때는 다른 무엇을 더 사실 것 같아 깎아 달라는 만큼 가격 내려주고 덤까지 집어 주었는데 다른 것은 다음에 사신다며 그냥 가는 경우도 많다. 그분이 다음에 다시 오셨을 때는 또다시 가격을 깎거나 덤을 드려야 사 가실 것이기 때문에 다시 원하는 만큼 마진을 남길 수가 없다. 그 생각을 하면 잘한 장사이다.




이런 거래가 과연 대형마트에서 가능한 일일까 생각해 보았다. 나 역시도 종종 대형마트를 이용하지만 분위기상 절대로 불가능 할 것이라는 판단을 한다.

가격 흥정은 고사하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상품 설명에 대한 추가 설명이나, 원하는 상품이 놓인 위치를 알 수가 없어 답답해도 물어볼 사람 만나기도 어렵다. 그러니 어디 가격 흥정이 가능하겠는가? 비록 몇천원의 줄다리기 이지만 그런것이 '사람사는 맛' 일 것이다.


어디서 장보는 것이 장점인지, 어느 곳이 더 편리한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우리 정서에는 면대면 거래가 가능한 재래시장이나 공영시장 등에서 훨씬 더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가격의 흥정, 덤, 등의 정서가 살아있는 '시장'으로 장 보러 한번 가보시라. 대형마트와 정찰제에 익숙해져 흥정에 쑥스럽다면 어떤기회에 시장에 가시게 될때 과하지 않은 흥정을 한번 시도해 보는 용기를 내보시기를 권한다. 사람 사는 정이 느껴져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워 지고 마음이 훈훈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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