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號) 사용에 대한 나의 생각
내 삶에 자신감을 준 나의 호(號), 曉井
얼마 전에 ‘절대로 호(號)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분의 이야기를 듣고 호(號) 사용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내게는 호사용에 대해 아주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과정들이 있다.
젊은 시절, 내 삶이 힘들고 답답할 때는 철학관이나 점집을 다녔었다. 그때 듣게 된 이야기 중 “사주하고 이름이 안 어울려, 사주는 어쩔 수 없지만 이름이라도 바꾸지 않으면 평생 편할 날이 없을 거야”라는 말이 있었다. 덧붙여 내 사주에 ‘火가 많으니 불이 잘 탈 수 있도록 나무가 들어간 이름이 좋다’고 했다. 원래의 타고난 흙수저인 내 삶이니 고되고 힘들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은 안 하고 점쟁이의 그 말이 이름만 바꾸면 편하게 살 수도 있다는 말로 들렸다. 그 후 모든 순간마다 내 사주와 이름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본명에는 나무는커녕 오히려 물을 표현하는 삼수변(氵)이 들어있으니 점쟁이의 말 대로라면 불이 잘 타기보다는 피우지도 못할 이름인 것이다. 이름을 바꾸고 팔자 한번 바꿔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당시에는 개명의 절차도 까다롭고 개명 수수료도 내가 감당하기에는 많은 금액이어서 당장 먹고사는 일이 급급했던 나는 개명 절차를 밟을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이름을 바꾸고 싶었다.
어느 날 스스로 옥편을 뒤졌다. 나무를 표현하는 의미가 들어간 글자를 몇 개 찾아놓고 성(姓)과 어울리며 부르기 편한 이름을 조합하다 보니 ‘나무 수(樹) 수풀 림(林)’이라는 이름을 만들 수 있었다. 나무가 숲을 이루었으니 내 사주에 들었다는 불의 재료로는 넉넉할 것 같았고 '수림아!' 또는 '수림 씨!' 그리고 '강수림 씨!' 하고 어떻게 불러도 편한 이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수림(樹林)을 나의 호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스스로 호를 정한 후 주변의 사람들에게 '樹林'으로 불러 달라고 말하며 혹시라도 나무 樹를 물 水로 상상하며 부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림 할 때 수는 나무 수입니다”하며 설명까지도 했다. 그렇게 본명 대신 수림이란 호로 불러 주길 바라며 지낸 지 10여 년이 되어가던 즈음에 어느 대학교의 연세 지긋하신 교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께도 당연히 내 이름과 호를 소개하며 인사를 했다. 물론 '나무 수입니다.'라는 설명을 잊지 않고...
교수님은 내 소개를 할 때 나무 수를 강조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지 호를 가지게 된 이유를 물어오셨다. “본명이 사주와 어울리지 않는대요.” “그래요? 그럼 제가 이름 짓는 공부를 좀 했는데 더 좋은 이름이 있는지 한번 봐줄까요?”라고 하셨다. 뜻밖의 선물 같은 교수님의 말씀에 기분 좋게 대답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정말로 이메일이 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어보니 ‘새벽의 맑은 기운이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듯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돼라’는 의미를 담았다는 이름 두 개가 있었다.
새벽 정원 ‘효정’ (새벽曉 뜰庭), 새벽 우물 ‘효정’ (새벽曉 우물井)
난 ‘새벽 우물(曉井)’이라는 이름을 선택하였다. 이름 속의 물이 내 사주와 맞지 않아 팔자가 고되다는 점쟁이의 말에 우물井이 걸리기는 했지만 저명하신 교수님이 함부로 짓지는 않으셨을 거라는 믿음이 더 컸다. 또한 뜰 안의 작은 규모의 이로운 사람이기보다는 어디까지라도 흘러갈 수 있는 큰 이로움을 펼치고 싶다는 거창한 포부가 있기도 했다.
세상일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고 한다. 난 曉井이라는 號를 사용하면서 새벽 일찍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세상의 이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미약하나마 사회적 봉사 활동과 정기적인 후원을 실천하고 있다. 태어나면서 받은 이름이 사주와 맞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는 자신감이 위축되었던 그때와 내게 잘 맞는다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자신감 있게 살아가는 지금을 비교해 보면 삶이 확실히 많이 변했다. ‘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잘난 체하는 것’이라고 말하던 그분에게 기회가 있다면 호사용의 긍정적인 면을 내 삶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 사람은 자신이 불려지는 대로, 그 이름에 걸맞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그분은 인정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내 사주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제2의 내 이름 효정(曉井), 그렇게 불리는 것이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