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없는 팔자
-에구 불쌍한 것, 부모 복, 남편 복, 자식 복, 하나도 없구나!, 죽어라 벌어서 남좋은일만 시키는구나!, 차라리 혼자 살아~!!-
30년 전의 점쟁이의 말들이 기억 속을 비집고 나와 머리를 흔들어 댔다. 이집을 탈출하고 싶었다. 세수를 하고 화장대 위에 있던 스킨 병 펌프질을 하는데 피식피식 소리만 내며 나오는 것이 없다. -짜증 나!- 울먹이며 스킨병을 휴지통에 던져 넣고 로션을 발랐다. 파마기도 다 풀린 머리를 빗어 뒤로 묶고 장롱문을 열었다. 겨우 눈에 띄는 건, 작년 이맘때 큰맘 먹고 뱅뱅 산 청바지와 남방셔츠뿐이다. 뒤적거려 보아도 손 가는 것이 없어 그것을 꺼내어 입었다. 헐렁한 것이 울퉁불퉁한 뱃살을 가려 주어 참을 만했다.
싸구려 가방들 틈에 보이는 크로스백을 꺼냈다. 시어머니 모시고 미국 여행 가는 시누이한테 경비를 보태 주고 선물로 받은 그야말로 비싼 코* 가방이다. 50만 원만 드리려 했다가 -비행기 값이 얼만데, 손 부끄럽게 그걸 어떻게 드리냐?- 하는 남편의 말에 울며 겨자 먹듯 50만 원을 더 보태서 드렸었다. 나는 화장품 하나도 못 사고 겨우 모아 놓으면 돈 한 푼 물려 받은적 없는 시어머니의 요구에 크고작은 돈이 들어간다. 아무리 자식이지만 당연한듯 요구하는 어머니의 태도에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런 남편가족과 얽힌 이따위 가방은 꼴도 보기 싫었다. 코* 가방을 집어던지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산 2만 원짜리 가방을 꺼냈다. 비싼 가방보다 가방 속에 얼마가 들었는지가 실속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남들 하나씩은 다 있는 메이커 가방 하나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전대 속에 들었던 현금을 꺼내 편지 봉투 2장에 5만 원권 몇 장씩 넣어 가방에 넣고 나왔다. 등뒤로 현관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유성 ic를 빠져나와 서산을 향해 달렸다. 금강변에 우후죽순 솟아있는 아파트를 바라보니 또 울컥 해진다. 나도 이름 있는 32평 아파트를 은행 대출을 받아 샀었다. 그때는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 대출금을 갚기 위해 밤낮으로 일해도 힘든 줄 몰랐다. 그러나 전능하신 분께서 잠시 한눈을 파시다가 복 없는 나를 몰라보고 허락했던 것인지, 남편이 술 먹고 남의 외제차를 들이받아 거금을 물어 줘야 해서 할 수 없이 1년 만에 그 집을 팔아야 했다. 그런 대형사고를 치고도 여전히 술만 보면 환장을 하는 남편을 참을 수 없어 수도 없이 이혼을 하려 했다. 그때마다 무슨 귀신이 씌었는지 -미안해 앞으론 정말 잘할게-라는 남편의 말에 넘어가곤 했다.
어려서부터 지지리 복도 없는 팔자였지만 열심히만 살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을 끌어안고 죽을 둥 살 둥 살았다. 이제 뒤돌아보니 남은 건 몸과 마음의 병뿐이다. 이번엔 어떤 신령한 귀신의 조화에도 넘어가지 않고 팔자 한번 고쳐보리라는 다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