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짠지 5

천붕기택, 출가외인

by 강현숙

“워쩐 일이냐? 맨날 바쁘다더니? 이 서방 아침은 주고 왔냐?”

아버지는 거실 창문을 활짝 열고 담뱃불을 붙이시며 언제부터인지 아버지의 자리가 되어버린 그곳에 앉으신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조선 시대도 아니고- 새벽부터 커피 몇 잔으로 버틴 내속이 아버지의 말씀에 허기가 진다.

“아버지 요새는 남자들이 밥 다 해 먹어요. 어떤 남편들은 마누라 밥까지 해 준다는데... ”

“하늘이 무너지면 집안을 일으킬 수 읎는겨~ 천붕기택여! 천붕기택!~”


한자성어 책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그 이상한 조합의 4자성어를 내 기억에 50년을 쓰고 계신다.

그 옛날, 술 드시고 한밤중에 돌아오신 아버지는 하루 종일 7남매 건사하고 남의 집 품팔이까지 하고 와 곤히 잠든 엄마를 깨워 날이 새도록 떠드셨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든 척하는 내 귀에 '천붕기택, 출가외인'이라는 단어가 덕지덕지 들러붙었다.


“여자는 출가외인여! 시집가면 그 집 귀신이 되야 한단 말여!”

엄마에게 써먹던 그 말은 내가 남편을 만나 결혼한다고 했을 때 자리에 앉혀 놓고 운을 떼듯이 시작해서 돌아온다고 집을 나설 때까지 한 말이었다.

아버지 같은 사람만 아니면 된다는 심정으로 만난 남편이 어느 순간 아버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낀 건 첫아이가 태어날 때였다. 산부인과 병원비를 아끼려 조산원이라는 곳에서 아이를 낳기로 했었다. 그러나 진통이 시작되고 24시간이 지나도 아이는 나오지 않고 하혈이 시작되자 조산원에서는 구급차에 태워 산부인과로 보냈다. 의사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내 몸을 살피던 의사가 탯줄이 아이의 목에 감겨있어 위험하니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만삭의 몸으로 하루 종일 일하다 와서 잠자듯이 쑥쑥 7남매를 낳은 엄마를 닮아 아이만큼은 순산할 줄 알았었다. 그런 내가 난산이라니?

자연분만이 위험해서 산부인과로 옮긴다는 연락을 받고도 아직 오지 않는 남편 대신 내 손으로 약정서에 지장을 찍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아이도 나도 무사했다. 아들을 낳은 기쁨도 잠시 병원비가 걱정이었다. 조산원에서 낳으려 했던 비용보다 20배의 돈이었고 두 달 월급도 넘었다. 얼른 결재하고 퇴원하라는 병원 측의 독촉을 받은 남편은 -병신같이 애 하나도 못 낳아서 목돈이 나가게 하냐?- 하고 병실을 나가 버렸다. 박차고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꼭 아버지 같았다. 가슴에 대못이 박힌 아픔이 수술해서 아픈 아랫배의 통증을 삼켜 버렸다. 잡아주려는 시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혼자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아이를 강보에 쌓아 안고 택시를 잡았다.


산후통도 가라앉지 않은 몸으로 젖먹이를 안고 찾아간 친정집에서 -죽어도 그 집 가서 죽으란 말여~- 하는 아버지 말씀에 견디지 못하고 돌아왔다.

남편은 3일도 안 되어 돌아온 나를 보면서 -천붕기택여~ 출가외인!-이라는 아버지의 말투로 빈정 대었다. 그때 알게 된 남편의 인간성이 지금 까지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둘째를 낳으면 나아질까 기대하며 둘째를 낳았고, 아이가 학교에 가면 달라질까 기대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때마다 보기 좋게 기대를 저버리는 남편을 믿을 수 없어 팔을 걷어붙이고 세상과 맞서며 깡으로 살아왔다. 지금의 능력 없고 매사에 무책임한 남편이 되어버린 것이 어쩌면 아버지에게도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남편 밥 안 차려 주고 왔다고 잔소리를 하시는 아버지가 부담스러워 눈을 감아 버렸다. -남편은 하늘이다. 천붕기택여~- 아버지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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