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짠지 8

얼어버린 엄마얼굴

by 강현숙

초등학교 5~6 학년 때, 어느 해부터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는 배추장사를 하셨다. 누군가 밭주인이 심어놓은 것을 다 크기도 전에 선 돈을 주고 산다. 그리고 김장철이 되면 품을 사서 배추를 뽑고 다듬어 큰 도시의 도매시장에 경매로 내놓는다. 어느 해는 산 것보다 몇 배의 경매가를 받아 목돈을 벌기도 했다지만 내 기억에는 본전도 못 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한해 장사를 망치면 겨울 동안 9 식구가 굶어야 하는 아주 위험한 장사를 아버지는 마치 아편에라도 취한 듯 손을 놓지 못했다.


어느 싸락눈이 내리던 날 엄마가 하루 종일 일하다 오셔서 안방, 작은방에 군불을 때고, 가마솥에 보리밥을 짓고, 배추를 삶아 데쳐 소금에 무쳐서 상을 차려주었다. 설거지도 하지 않은 채 막내를 안고 잠깐 어르다가 나에게 업혀주며 -막내 재우고 너도 일찍 자라- 하고서는 빈 광주리를 이고 나가셨다. 등에서 동생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방에 눕혔는데 캄캄한 우물가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다. 동시에 퍼버벅! 하는 무언가 바닥으로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고는 조용해졌다. 몇 차례 반복되어도 엄마는 들어오지 않으셨다. 건넌방에 오빠도 있었지만 잠이 들었는지 기척도 없고, 큰방에는 밥 먹고 놀다 잠든 다섯 동생들이 있었다. 밖은 춥고 깜깜했다. 무섭고, 아직 오지 않는 엄마가 걱정되었다. 우물가의 인기척이 무언지도 궁금해졌다. 방문을 살짝, 소리 나지 않게 열었다.

“엄마?!”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다.

“엄마?!~” 좀 더 힘주어 부르는 내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아마도 무서움이었을 것이다.

“이~ 안 잤냐? 춘디 언릉자지?” 엄마의 얼어있는 목소리였다. 나는 우물가로 갔다. 문고리에 손이 들러붙었다. 엄마는 빠른 동작으로 쌓여 있는 덩어리들을 얼음이 덜거럭! 소리를 내는 물에 담갔다가 다른 함지박으로 차곡차곡 쌓는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굵어진 눈발이 내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턱을 부딪히며 –으, 으,- 하다가 방으로 들어와 아랫목에 발을 묻은체로 잠이 들어 버렸다. 다음날 내가 깨었을 때 엄마는 밥을 짓고 계셨다. 머리에 수건을 묶고 불을 때고 계신 엄마의 얼굴과 손이 벌겋게 얼어있었다. 우물가로 갔다. 그곳에는 나보다 더 큰 함지박에 배추가 하얀 눈을 소복소복 뒤집어쓰고 쌓여 있었다.



“어미야! 배고프다며? 이거 갖고 가서 먹어”

“응? 아! 네~”

옛날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엄마가 퍼준 밥을 식탁으로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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