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고양이 노랑이1

노랑이의 사랑

by 강현숙


그날 우리 주인을 만나러 온 검은색 승용차에서 내리던 배가 불룩 나온 아저씨가 기분 나쁘게도 신경이 쓰였다. 그때 나는 까만 털이 매력적이고 눈동자가 별처럼 반짝이는 건너 마을의 깜순이와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깜순이의 매력은 근동의 모든 수고양이들의 마음에 불을 질러 어떻게든 깜순이와 눈 한번 마주치려고 안달을 나게 했다. 그런 깜순이가 간신히 내 마음을 받아주어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깜순이를 만나기 위한 내 노력은 참으로 힘겨웠다. 주변에서 가장 힘이 세다는 재떨이까지 물리치고 기어이 깜순이의 사랑을 이제 막 얻으려는 순간이다. 첫 데이트에서 깜순이의 마음을 확실히 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이때에 신경 쓰이는 일이라니 데이트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집을 쳐다보며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 깜순이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아! 깜순 씨 방금 뭐라고 하셨지요?” 무언가 의미 있는 말인 것 같아 다시 묻자 깜순이는 샐쭉해지며 “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가보시죠? 우리 부모님을 언제 만나러 가실 건지 물어 본거였는데, 딴생각만 하시니 제게 진심이 없는 것 같네요?” 하였다. 그런 게 아니라고, 우리 주인에게 온 손님이 어쩐지 불길해서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토라진 깜순이가 그 말에 나를 이해해 줄 것 같지가 않아 그만두었다. 일단은 깜순이와의 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처음 만남인데 멋진 곳을 보여 주고 싶었다. 주인아저씨랑 가끔 산책하던 오솔길로 깜순이를 데리고 갔다. 파도가 철썩이고 꽃향기가 나는 그 길을 깜순이는 너무 좋아했다. “음~ 너무 멋져요. 야옹!, 노랑이님은 어떻게 이런 곳을 아셨어요?” 좀 전의 샐쭉했던 표정은 어느새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저기 노랑꽃을 보세요. 노랑이님처럼 황금빛이 나요. 야옹!” 하며 향기를 맡아보기도 하고 눈을 감고 꽃 속에 파묻히기도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나는 그만 숨이 막혔다. -저렇게 이쁜 깜순이와 결혼해서 평생 함께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깜순이에게 청혼을 했다. “깜순 씨 우리 주인아저씨는 나를 정말 사랑해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맛있는 음식들을 하루에 한 끼씩은 꼭 챙겨 주고 매일 나를 안고 털을 쓰다듬어 주고요. 아늑한 침실에 깨끗한 이불까지 깔아주어서 겨울에도 추위 걱정 없이 살 수가 있어요. 나한테 시집오면 그 사랑을 함께 누릴 수 있어요. 평생 먹을 거 걱정 없이 몸단장이나 하면서 귀족같이 살게 해 줄게요. 우리 결혼해요. 야옹!” 나는 멋지게 보이려고 한껏 꼬리에 힘을 주어 살랑살랑 흔들며 깜순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서 깜순이의 대답을 듣고 싶어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래도 우린 오늘 처음 만났는데요?” 깜순이는 내가 원하는 대답을 선뜻하지 않고 애간장을 태웠다.

난 소문으로만 듣고 있던 깜순이를 한 달 전에 처음 보았다. 그날도 아저씨랑 산책을 하는 중이었는데 아저씨는 오랜만에 건너 마을 이장님을 보고 간다며 깜순이가 사는 마을까지 가게 되었다. 이장님 댁으로 가는 골목 어귀에서 아주 매력적인 고양이가 부모들과 산책 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첫눈에 반해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고 있자니 주인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어이구! 우리 노랑이 그러고 보니 장가갈 때가 되었구나! 저 고양이 맘에 드냐? 이름이 깜순이라고 하던데 이 근방에서는 제일 예쁘고 착한 고양이라고 하더구나- 하면서 껄껄 웃으셨다. 그날 이후 깜순이는 내 마음에서 한시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날 깜순이를 보러 건너 마을에 갔을 때 그곳에는 이미 다른 숫 고양이들이 잠복해 있었다. 잿빛털이 기분 나쁜 더러운 길고양이 재떨이, 우리 바로 옆집에 사는 얼룩이, 깜순이 마을 이장님 댁 호돌이까지 모두 깜순이에게 마음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내가 깜순이를 차지하려면 저 세 놈부터 물리쳐야 한다. 다행히도 나는 암고양이들이 좋아할 만한 멋진 털을 가졌고, 좋은 주인에게서 사랑을 받는 고양이이다. 조건은 누구와 비교해도 내가 제일 나았다. 자신감이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깜순이를 향한 구애 작전을 펼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단 옆집으로 얼룩이를 만나러 갔다. 소심한 얼룩이는 내가 깜순이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금방 단념해 줄 것이다. 또 얼룩이에게는 어려서부터 얼룩이만 바라보는 수더분한 암고양이 나비가 있다. 얼룩이는 차라리 나비와 잘 어울리는데 얼룩이 놈은 제 주제 파악도 못하고 멋진 암고양이를 쫓아다닌다. 오늘 기어이 주제 파악 하도록 잘 말해야겠다.

“야옹! 얼룩이 있는가?”

“음! 어쩐 일인가?”

얼룩이는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아마도 깜순이 마음을 얻을 방도가 생각나지 않아서 생긴 병일 것이다. 그런 놈을 순진한 나비가 와서 간호를 하고 있었다.

“이보게 얼룩이! 자네 나비의 정성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벌써 몇 년인가? 옆에서 보지만 나비처럼 순종적이고 지극한 암고양이는 내가 본 적이 없네, 이제 그만 애태우고 나비하고 결혼하게”

“무슨 소리야? 나비는 그냥 동생 같은 고양이네, 난 나비에게 사랑의 감정은 없어!”

“떼끼, 그렇게 말하면 못쓰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건너 마을 깜순이는 이제 넘보지 말게 앞으로 깜순이 주변을 얼씬거리는 것이 내 눈에 띄면 가만 두지 않겠네, 깜순이는 곧 자네 형수가 될 걸새! 명심하게!”

“아니 자네가?”

난 얼룩이에게 윙크를 하고 돌아왔다. 얼빠진 고양이처럼 나를 바라보던 얼룩이는 단념이 참으로 빠른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 후 며칠도 되지 않아 얼룩이는 나비와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다음에는 이장님 댁 호돌이를 찾아갔다. 이 녀석은 처음부터 근엄하게 텃세를 부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깜순이 이야기를 꺼내자 자기네 소작을 지어먹는 집안 처녀고양이를 눈독 들였다고 오히려 깐족거리며 다른 마을로는 시집을 보낼 수 없으니 나더러 단념하라고 했다. 나는 첫눈에 호돌이 놈의 속마음을 알 것 같았다. 저런 놈은 진심이 아니다. 소작농 집안 고양이라는 조건으로 결혼을 해서 집에 가두어놓고 저는 다른 암고양이를 찾아다니며 바람이나 피우고 가정은 전혀 책임질 녀석이 아니다. 저런 놈에게 사랑스러운 깜순이가 시집가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자네 이장님이 우리 주인의 말을 아주 잘 듣는다는 거 잘 알지? 자네를 아주 멀리 팔아버리라고 말한다면 어쩔 텐가? 어쩌면 건강원에 팔려가 누군가의 약탕 속으로 풍덩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고집을 부릴 텐가?”

호돌이는 내 말에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실 얼마 전에 호랑이 무늬가 있는 고양이가 약효가 좋다고 건강원에서 팔라고 했던 것을 우리 주인이 말해서 겨우 살아남게 되었는데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듯했다.

“알겠네, 깜순이를 넘보지 않겠네, 그러니 제발....”

호돌이는 이마에 식은땀을 비 오듯 쏟으며 넋 나간 듯이 말했다.

이제 근동에서는 힘이 제일 세고, 버릇없다고 소문난 재떨이가 문제다. 재떨이는 어려서부터 부모 없이 혼자 살아온 녀석이라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방파제 어느 구멍 속에서 자고 바닷가에 떠밀려오는 물고기들을 줏어 먹고사는 녀석이다. 사람들의 사랑 같은 건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재떨이는 사람들이 버린 담배꽁초를 주어 먹기도 한 대서 재떨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녀석이다. 세수도 안 하고 목욕도 하지 않아서 구질구질하고 고약한 냄새가 난다. 힘은 고양이 서너 마리는 한 번에 물리칠 정도라 하고, 체면 같은 건 아예 찾아볼 수 없어 말로도 안 통하고 힘으로는 내가 자신이 없다. 재떨이를 물리칠 방법을 생각하느라 꼬박 이틀밤을 지새웠다. 어떻게든 이쁜 깜순이가 재떨이와 살게 될 일은 막아야 했는데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