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뒤척이느라 온몸에 몸살이 난 듯 찌뿌둥했다. 아저씨는 아침부터 나를 찾았다. 간신히 기지개를 켜고 아저씨께로 가니 아저씨는 나를 번쩍 안았다.
“우리 노랑이 잘 잤어? 근데 왜 눈이 퉁퉁 부었냐?”
“야옹!, 아저씨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 야옹!”
나는 힘 없이 대답했다.
“어이구! 우리 노랑이 상사병이 났구나, 하하!”
우리 주인아저씨는 눈치가 백 단이다. 내 표정만 봐도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불편한지를 다 안다. 너무나 고마운 아저씨다.
“야옹! 그런데 장애물이 있어요. 그 못생긴 재떨이가 깜순이를 노리고 있어요. 힘이 센 재떨이를 물리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요”
“해보지도 않고 미리 풀이 죽으면 안 되지? 너 재떨이랑 직접 싸워 보지 않았잖아? 간절히 얻고 싶은 것이 있으면 용기를 내야 해, 기선제압이라는 게 있어, 자신 없는 마음이 있으면 눈빛이 먼저 흔들리거든, 흔들리는 눈빛으로는 상대를 제압할 수는 없어, 우선 힘부터 내야겠다. 자! 맛있는 장어구이로 아침을 먹어볼까?”
나는 아직도 입맛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저씨는 뼈까지 발라내어 구운 부드러운 장어구이를 먹기 좋게 잘라 주었다. 고소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자! 자! 노랑아, 깜순이 생각을 해봐라 네가 기운 없이 망설이는 사이에 재떨이가 먼저 깜순이 마음을 얻으면 어쩔래? 사랑은 기다려 주지 않아, 어서 먹고 기운 내자” 아저씨는 한 조각 한 조각 입안에 넣어 주었다. 천천히 꼭꼭 씹어먹었다. 먹으면서 생각했다. 힘센 재떨이를 힘으로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가진 장점들을 최대한 어필하며 깜순이의 마음을 얻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신사적으로 재떨이가 물러나도록 해야 한다.
재떨이를 만나기로 했다. 재떨이가 집으로 삼고 있는 방파제 구멍이 있는 곳으로 갔다.
“어이! 재떨이!” 나는 마음을 다잡으며 꼬리에 힘을 주고 재떨이를 불렀다.
방파제 구멍으로 빼꼼히 고개만 내민 꼬질꼬질한 고양이 얼굴이 보였다. 얼마나 지저분한지 순간 멈칫했다. 저렇게 더러운 놈하고 일대일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낮잠을 자던 중이었는지 부스스한 몰골로 좁은 구멍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야옹!! 무슨 일이야!”
“자네 나하고 결투를 할 텐가? 그냥 조용히 물러 날텐가? 야옹!”
“무슨 말이야? 야옹!”
“자네 깜순이를 좋아하지? 자네 주제에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뭐라고? 내가 어때서? 왜 내가 깜순이를 좋아하면 안 된다는 거지? 내가 부모가 없어서? 아니면 집이 없어서?”
노랑이는 재떨이의 몰골과 담배꽁초나 주워 먹는 나쁜 습관과, 어른고양이를 보고도 인사조차 안하는 버릇없는 태도들을 들추어내고 싶었지만 그건 인신공격이라는 생각에 그만 입을 다물었다.
“이보게 재떨이! 자네가 깜순이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나? 깨끗한 집에서 살게 해 줄 수도 없고 맛있는 식사를 하게 할 수도 없고, 모든 고양이들이 바라는 삶을 살게 해 줄 수도 없지 않은가?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순간의 욕심으로 고귀하게 살 수도 있는 한 암고양이의 삶을 망가트려서는 안 되지? 자네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나는 깜순이에게 해줄 수 있네, 그러니 자네가 깜순이를 포기하게”
“칫! 웃기고 있네, 지금 자네가 말한 것들이 자네 힘으로 하는 건가? 어쩌다 주인 잘 만나서 사랑 좀 받고 산다고 그게 자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정신 차리게 그건 자네의 능력이 아니라 자네 주인의 능력이란 말일세, 만약 자네 주인이 자네를 버리기라도 한다면 지금 그 나이 되도록 사냥 한번 해보지 않은 자네가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때는 아마도 굶어 죽거나 다른 고양이에게 린치를 당할지도 모르지? 나는 어려서부터 세상의 위험들을 헤쳐 나가는 방법을 몸소 익히며 살았네, 어떤 상황이 되어도 살아낼 자신이 있다는 말일세, 그러니 자네가 깜순이를 양보하게!”
이럴 수가! 재떨이가 내게 악담을 퍼붓는 것으로 들렸다. 기억도 안나는 어릴 때부터 주인아저씨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자란 나는 한 번도 주인아저씨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 결혼까지 걱정해 주는 아저씨가 나를 버릴 리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귀족 같은 고양이 생활을 죽 이어갈 것이다. 물론 내 색시가 될 어떤 고양이라도 함께 누릴 것이다. 그게 사랑스러운 깜순이면 좋겠다. 나는 결국 재떨이와의 한판 결전을 치러야 할 것 같다.
“자네 그렇다면 할 수 없네, 우리 결투를 하세 한쪽이 상처를 입거나 다치면 항복하기네”
“하하하, 자네가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좋아 어떤 결투일지 자네가 정하게”
나와 재떨이의 결투가 있을 거라는 소문은 금방 퍼졌다. 주변의 모든 고양이들이 금세 주위를 둘러쌓다. 재떨이를 응원하는 길고양이들이 수적으로 더 많았다. 재떨이가 버릇이 없어서 모두들 놀아주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응원하러 모인 길고양이들을 보니 그런 것 같지 않았다. 반면 나를 응원하는 고양이는 사람들에게 길들여진 두세 마리의 집고양이가 전부였다. 기가 죽었지만 겉으로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미 정해진 일이다. 내가 다치든 재떨이가 다치든 끝을 보아야 한다. -그나저나 결투는 무엇으로 하지?- 달리기도 재떨이가 빠를 것이고 나무 타기도 재떨이가 더 잘 오를 것이다. 수영을 해서 물고기 잡기도 자신이 없다. 그러고 보니 내가 너무 준비 없이 아저씨의 사랑 속에서만 살았다는 것을 느꼈다. 재떨이 악담대로 만약에 아저씨가 나를 버린다면 난 정말 살아가기 힘들지도 모른다. 기분 나쁜 예감이 나를 감쌌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