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고양이 노랑이 3

사랑을 얻다.

by 강현숙

내 주인은 나를 정말 이뻐한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창고 앞 평상에 앉을 때면 노랑아! 노랑아! 하며 나를 부른다. 내가 얼른 와 무릎에 앉으면 “어딜 갔다 왔어? 하며 보고싶었다는 표정으로 내 털을 쓰다듬어 준다. ”야옹! 야옹! “ 나도 행복한 얼굴을 아저씨 손에 문지른다. 이때는 세상 어느 고양이도 부럽지 않다. 물고기를 잡아와도 항상 내 몫을 따로 남겨놓았다가 주었다. 겨울이면 창고 한쪽에 내 집을 옮겨주고 따뜻한 담요를 깔아 주었다. 여름이면 시원한 나무 아래로 다시 집을 옮기고 매쉬 원단의 깔개를 깔아 주셨다. 감사의 표현으로 쥐라도 사냥하려 했었지만 그런 건 길고양이들이나 하는 거라며 못하게 하셨다. 길고양이들이 먹는 쥐고기가 먹고 싶어 쳐다보면 더 맛있는 생선으로 달래 주셨다. 며칠씩 어딜 가실 때는 나를 꼭 안고 가셨다. 주변의 누구도 주인이 아껴주는 나를 무시하지 않았다. 모두들 멋지다고 잘생겼다고 주인의 품에 있는 나를 한 번만 안아보자고 귀찮게 했다. 맛있는 간식거리는 어딜 가도 넘쳐났다. 조금도 부족함을 모르고 살았던 내 삶이다. 감히 재떨이 따위가 ㅡ주인에게 버려졌을때...ㅡ같은 말도 안되는 상상을하다니?

결투의 종목은 정해졌다. 바로 지붕 위에 사는 생쥐를 잡아오는 일이다. 사냥에는 뛰어난 능력이 있지만 미끄러운 지붕 타기는 아마도 재떨이에게는 거의 경험이 없을 것이다. 나는 사냥엔 경험이 없지만 지붕 위는 심심할 때 여러 번 올라가 본 적이 있어서 미끄러울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안다. 지붕 위의 생쥐 잡기는 사냥의 기술도 중요 하지만 자유자재로 지붕 위를 달릴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니 사냥기술이 뛰어난 재떨이와 지붕을 잘 달릴 수 있는 나와의 결투 종목으로 누구의 질타도 받지 않을 정당한 종목으로 판단된다.

우리는 더욱 공정을 기하기 위하여 우리 집 지붕이 아닌 얼룩이가 사는 집의 지붕에 둥지를 튼 생쥐를 잡아 오기로 했다. 빨간 양철 지붕이 그다지 높지 않은 아담한 집이다. 앞쪽으로 아슬아슬한 푸른색 얇은 차양이 있고, 왼쪽 담 쪽으로 창고가 있다. 창고에서 보이는 빨간 지붕의 용마루 아래에 생쥐집이 있다. 창고에 사는 얼룩이 가족은 생쥐 어미의 수다스러운 잔소리에 새벽잠을 설쳤다고 했다. 그 시끄러운 어미 생쥐를 잡으면 얼룩이 가족도 내게 고마워할 것이다. 아마도 지금은 낮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그곳까지 먼저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 차양을 밟고 지붕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전봇대가 가장 좋다. 우리는 전봇대를 시작점으로 정했다. 전봇대를 타고 올라가 차양위로 살금살금 기어서 지붕에 오르면 속력을 내어 용마루까지 달려가야한다. 작은 구멍으로 손을 뻗어 생쥐를 잡은 뒤에는 1미터나 떨어진 창고 지붕으로 건너뛰어야 하는데 떨어지지 않도록 특히 조심해야한다. 힘든과정은 여기까지이다. 이후 담벼락을 타고 뒤쪽 대나무 숲까지 먼저가는 고양이가 승자가 되는것이다. 결투가 끝나면 신사적으로 잡아 온 생쥐로 응원나온 고양이들과 함께 만찬을 즐길 것이다.

길고양이들이 자발스럽게 –재떨이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장소를 제공한 얼룩이는 내 손을 잡으며 조용히 –힘내-라고 말했다.

우리는 동시에 하나, 둘, 셋을 위치며 출발했다. 미끄러운 전봇대를 동시에 올랐다. 그리고 푸른빛이 나는 차양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이제부터가 문제다. 경사지고 미끄러운 양철지붕을 통과해야 한다. 새벽에 내린 비로 지붕은 살짝 미끄러웠다. 한 발 앞선 재떨이가 미끄러졌다. 그러나 균형감각이 얼마나 뛰어난지 금방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는 조심조심 앞서가고 있었다. -어! 이상하다. 내가 연습할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미끄럽지?- 내가 착각한 것이 있었다. 우리 지붕은 기와지붕이었고 이 집은 양철지붕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기와지붕은 물기를 빨아들여서 비가 멈추면 뽀송뽀송했지만 양철지붕은 해가날때까지 물기가 그대로 있었다. 지붕은 모두 같은 줄 알았던 내게 지난날의 지붕타기경험은 거의 쓸모가 없이 되어버렸다.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재떨이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면 안 된다.- 거의 기다시피 하여 생쥐 집까지 왔다. 재떨이는 어느새 새끼생쥐 한 마리를 잡아 가지고 돌아서며 나를 비웃었다. -이봐 노랑이! 나 먼저 가겠네, 대나무 숲에서 만나세- 나는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재떨이를 바라보았다. 창고지붕까지 선두를 빼앗기면 역전의 기회는 없다. 포기하려는 마음이 들었을때 그 야비한 눈빛을 보았다. 착한 깜순이가 그 눈빛을 견딜수있을까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든 이 결투에서 이겨야 한다. 순간 힘을 내어 생쥐 집으로 손을 넣었다. 이미 재떨이가 훑어 놓은 생쥐 집은 아비규환이었다. 내 손을 물고 발로 할퀴고 새끼를 내놓으라며 난리를 치는 어미 생쥐를 콱 움켜쥐었다. 생쥐 가족에게 미안 하지만 세상살이는 먹는 자와 먹히는 자가 있으니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 이제 얼른 뛰어야 한다. 재떨이를 이기지 못할지라도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때였다. -야옹!-하는 거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달려갔다. 창고 지붕에 안전하게 뛰어내린 후 담을 타고 바닥으로 내려갔다. 재떨이는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를 이겼다고 자만에 빠져있던 재떨이가 착지 지점을 잘못 계산해서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나는 재떨이를 가만히 흔들었다. -야옹! 야옹!- 고통스런 신음을 내는 재떨이는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게임은 끝났다. 그렇지만 재떨이의 부상이 걱정이 되어 기쁘지가 않았다. 재떨이를 응원하던 길고양이들과 얼룩이 부부가 모여들었다. -야옹!, 어떡해? 많이 다친 거야?- -야옹!- 재떨이는 얼굴을 들지 못하고 슬픈 비명만 내고 있었다. 아마도 다쳐서 아픈 다리 때문이기보다는 깜순이를 포기해야 하는 마음의 아픔이 더 컷을 것이다. 재떨이의 친구들이 재떨이를 부축해서 데리고 나갔다.

다음날 재떨이에게 문병을갔다. 다리에 부목을 대고있었다.

"재떨이 좀 어떤가?"

“이봐 노랑이! 내가 졌네, 약속대로 깜순이는 포기하겠네, 자네가 결혼해서 깜순이를 행복하게 해 주게, 야옹!” 그렇게 말하고는 쓸쓸하게 고개를 돌렸다.


재떨이가 다친 다리를 치료하는 동안 주변은 조용하기만 했다. 그리고 결투에서 내가 이겼다는 소문이 나서 아무도 깜순이를 괴롭히지 않았다. 이제 깜순이를 편하게 만날 수 있다. 깜순이도 그 소문을 들었는지 내게 순종적이었다. 만나자는 내 말에 두말도 하지 않고 수긍해 주었다.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매력적인 깜순이는 눈이 부셨다. 설레는 마음으로 은근히 깜순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반짝이는 눈을 내리깔고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던 깜순이는 “엄마 아빠에게 허락을 받을게요. 노랑이님이 이겨주어서 너무 좋아요. 야옹!”라고 말했다. 세상을 다 얻은 듯 나는 행복했다. 내일 서로 좋은 소식을 가지고 만나기로 약속을 한 다음 우리는 헤어졌다. 가냘픈 허리를 살랑거리며 사라져 가는 깜순이를 넋놓고 바라보았다.


-다음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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