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검은 승용차가 생각났다. 집을 바라보니 아직도 집 마당에 세워져 있다. 나는 가슴에 떠오르는 불안한 감정을 도리질로 떨쳐버리며 집을 향해 달렸다. 지름길로 달려오다가 갯벌에 한쪽발이 빠져 엉덩이까지 금빛 털에 개흙을 묻히고 말았다. 하지만 개흙 따위에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먼저 저 배불뚝이의 정체를 알아내야 했다. 숨이 턱에 차서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노랑아!”
내 몰골을 보고 주인아저씨가 놀라는 것 같았다.
“야옹, 저 배불뚝이 아저씨 누구예요? 야옹?”
나는 그 아저씨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재떨이와 같은 냄새가 났다. 며칠이나 목욕을 안 했는지 고약한 냄새도 똑같았다. 역시 기분이 안 좋았다.
“응 그 아저씨는 시내 부동산 아저씨야”
시내 부동산? 시내는 아저씨랑 장 보러 몇 번 가본 적이 있어서 알겠는데 부동산은 뭐 하는 곳일까?
“야옹? 야옹? 궁금해요?”
주인아저씨가 말했다. 집이나 땅을 살 사람과 팔 사람을 연결해 주는 곳이라고,
“야옹? 으응?”
“응 이 집을 팔기로 했는데 살 사람이 나왔다는구나.”
-이 집을 판다고? 그렇다면 이사를 가야 하는데 이사 가면 깜순이랑 멀어지잖아?-
난 간신히 얻은 아름다운 사랑을 시작도 못 해보고 접어야 하나 걱정이 되었다.
“야옹! 싫어요. 아저씨 이사가지 마요.”
"노랑아! 삶 이란건 말이다, 하고 싶은것만 하며 살수는 없단다. 변화하는 삶에 잘 적응하는것이 중요하단다."
아저씨는 알아들 수 없는 말을 중얼 거리며 내 눈을 맞추다가 다시 시내 부동산 아저씨와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동산 아저씨는 싱글벙글 했지만 주인 아저씨의 얼굴은 서운한 기색이 살짝 떠올랐다가 억지로 웃는듯 했다. 부동산 아저씨는 다음 날 집 살사람들과 함께 오겠다고 말하고 검은 차를 몰고 가버렸다. 난 걱정이 되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깜순이의 수줍어하던 보석같은 얼굴이 눈에 아른거려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
다음날 아저씨는 삶은 닭다리 하나를 주었다. 평소 같으면 한입에 먹어버릴 그까짓 닭다리 하나를 입맛이 없어 먹을 수가 없었다. 마침 깜순이랑 만나기로 한 시간이 되어 닭다리를 물고 약속장소로 갔다. 깜순이는 검은 털에 윤기가 흑진주처럼 반짝이고, 초롱초롱한 노란 눈빛은 북극성처럼 빛났다. 바라보니 혼이 나갈것 같았다.
"노랑이님!"
깜순이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물고 간 닭다리를 깜순과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어제 나랑 헤어지고 집에 가서 부모에게 청혼받은 이야기를 했다고 수줍어 하며 말했다. 깜순이 부모의 반응이 궁금했다.
"네 우리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세요. 노랑이님은 주변 마을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위감 이라고 하셨어요. 야오옹!"
"얏호!, 야아~옹!"
나도 모르게 환호했다. 깜순이 부모님의 반응이 그랬다면 우리 결혼은 허락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주인아저씨의 이사만 아니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이 될 것이다. 이쁜 깜순이와 결혼을 하고, 깜순이와 나를 닮은 새끼들을 낳고 아저씨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야아~옹! 고마워, 사랑해!”
너무 벅찬 마음에 나도 모르게 사랑의 감정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당장 깜순이 부모를 만나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어제 배불뚝이 아저씨가 새 주인이 될 사람과 같이 온다던 시간이 되었다. 갈등이 생겼다. 집에 가서 주인아저씨와 새로 올 주인이 하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사람들이 집이 마음에 안 든다면서 없던 일로 하자고만 하면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이다.
“깜순 씨! 내가 급한 일이 있어서 집에 얼른 가봐야 돼 부모님 당장 만나고 싶지만 하루만 미루자. 내일은 장인 장모님께 꼭 인사드리러 갈게, 오늘은 이만 집에 가 있어, 야~옹! 야~옹!”
이렇게 헤어지자는 내말에 아쉬워하는 깜순이를 달래며 가볍게 뽀뽀를 하고 집으로 보냈다.
깜순이를 보내고 산모퉁이를 돌아 집을 바라보니 막 어제의 검은 승용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바람처럼 뛰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검은 승용차에서 세 사람이 내렸다. 배불뚝이 부동산 아저씨, 빼빼 마른 안경 쓴 남자, 펑퍼짐한 아주머니, 아마도 빼빼 마른 남자랑 펑퍼짐한 아주머니가 이집을 사겠다는 사람들 같았다.
“야옹!”
주인아저씨는 세 사람에게 굽신거리며 미리 닦아놓은 평상에 앉으라고 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집안으로 들어가 잘 익은 수박을 잘라 접시에 담고 다섯 잔의 달달하고 향긋한, 모락모락 김이 나는 뜨거운 갈색물을 쟁반에 받쳐 가지고 왔다. 나는 주인아저씨 무릎에 앉았다.
“음! 집이 너무 예쁘네요”
펑퍼짐한 아줌마가 말했다. 그 말은 내게는 아주 불길한 말이다. 집이 마음에 들 수도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 말을 받아 주인아저씨도 말했다.
“이 집이 말이죠. 내가 죽을 때까지 살려고 아주 튼튼하게 지은 집입니다. 경치도 이만한 곳 찾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갑자기 딸내미가 자기들 좀 도와 달래서, 딸내미 집이 멀어서 이사를 가려고 내놓았지요. 이사 가기 정말 아까운 집입니다.”
-야아옹! 뭐라고? 딸내미집? 거기로 이사를 간다고?-
주인아저씨의 딸내미는 여기서 차로 두 시간을 가야 한다. 내가 걸어서 온다면 산 넘고 강을 건너고 큰길을 따라 하루종일 와야 할 것이다. 어쩌면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깜순이가 보고 싶다고 아저씨가 차를 태워서 와주지 않는다면 깜순이를 보러 오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건 내게는 묘생이 걸린 사건이었다. 빼빼 마른 아저씨와 펑퍼짐한 아줌마가 집이 마음에 안 든다면서 가버리기를 간절히 빌었다. -야옹! 야옹!, 제발! 제발!- 마음속으로 빌면서 빼빼 아저씨와 펑퍼짐 아줌마의 얼굴을 살폈다. 만족한 표정이었다. 나는 기운이 빠졌다.
짬깐 사이에 주인아저씨는 수박씨가 튀어나오도록 집 자랑을 했다. 빼빼와 펑퍼짐은 이곳저곳 둘러보며 -아휴! 정말 이뻐요.- 소리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쥐들이 나를 약 올리며 달아나던 집 뒤의 작은 구멍들을 보여주고 작은방 침대 밑에 뚫린 벽지 구멍 속에 지네 5대가 대가족을 이루고, 창문넘어에 사는 친척들까지 오가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싶었다. 그 사실을 알면 이대로 내뺄지도 모른다. 나도 지네가 사는 주변은 가까이 가기도 싫다. 그런데 주인아저씨는 그런 건 싹 빼고 안방에서 보이는 바다 풍경이랑, 거실에서 보이는 멋진 풍경들만 보여 주었다. 펑퍼짐 아줌마가 작은 방을 훑어볼 때 기회다 싶어서 급히 나는 살집이 통통한 지네, 통통이를 불러내었다.
“야옹! 어이 통통이! 잠깐 나와보게”
“쉭~쉭~. 무슨 일이야? 우리가 제일 싫다며 가까이도 안 오더니?”
낮잠을 자던 통통이가 투덜대며 구멍을 나오려다가 사람들을 보고는 두 눈만 껌벅거렸다. 펑퍼짐 아줌마의 눈에는 보일 리가 없었다. 더 나오라고 손짓을 했지만 들키면 큰일이라며 뒷걸음으로 들어가 버렸다.
“야옹! 겁쟁이 지네 같으니라고!”
이곳저곳 둘러 보던 다섯 사람이 거실에 앉았다. 그 앞에 글씨가 빽빽이 적힌 종이를 배불뚝이가 펼치고 있었다. 순간 먼저 집에서 이사오기전에도 저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야옹! 안 돼요!”
나는 소리쳤다.
“노랑아!”
주인아저씨는 나를 불렀다. 평소 같으면 얼른 뛰어가 안겼겠지만 지금은 가고 싶지 않았다.
“노랑아! 이분들이 이 집을 사신다는구나”
다섯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글씨가 적힌 하얀 종이를 읽고 배불뚝이 아저씨가 무언가를 더 쓰더니 서로 빨간색이 묻어나는 동그란 것을 찍어댔다. 저건 지난번에 아저씨가 옆동네에서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에도 보았던 것이다. 저 빨강동그라미를 찍으면 살던사람은 다른곳으로 가고 못보던 사람이 이곳으로 오게 된다. 그렇다면 이 집엔 빼빼 남자와 펑퍼짐 아줌마가 살게 될 것이다. 인상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