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빼빼 주인에게 어찌하면 좋을지 물어보려 했다. 그런데 빼빼 주인은 아예 고양이하고는 커뮤니케이션이 안된다. 아무리 야옹! 야옹! 해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한다. 아직도 떨고만 있는 깜순이를 달래며 사람들의 동태만 살피고 있었다. 집안으로 이삿짐을 들이던 사람들에게 펑퍼짐 아줌마는 몇 개를 손짓하더니 창고로 갖다 넣으라고 한다. 아저씨들이 커다란 선반 같은 걸 들고 들어왔다. 넋 놓고 있다가 선반의 귀퉁이에 머리를 찧을 뻔했다. 얼른 피했다. 이번에는 선반을 들고 한 바퀴 돌던 사람들의 발에 밟힐 뻔했다.
“이놈의 고양이 새끼 걸리적거리게, 저리 좀 가라” 하며 한 아저씨가 발길질을 했다.
깜짝 놀란 나는 뒤로 비키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덩달아 깜순이도 엉덩방아를 찧고 함께 넘어졌다. 아저씨들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나는 깜순이를 데리고 슬그머니 나와 일단 내 방으로 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아침까지 있던 내 방이 보이지 않았다. 이사 간 주인아저씨가 깔아준 핑크색 담요만 나무 사이에 걸려 있었다. -어찌 된 일이지? 내 방이 어딜 갔지?- 펑퍼짐 아줌마가 다가오더니 나무등걸의 담요를 잡아채 커다란 박스 속으로 던져 넣었다.
“아휴! 이 먼지, 고양이털까지 더러워”
-어? 그건 내 담요인데 이사 간 아저씨가 깜순이 데리고 온 날 새로 깔아 준 건데...- 나는 얼른 박스로 가서 이불을 물어 올렸다. 너무 무거워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깜순이와 첫날밤을 보낸 이 담요를 버리지게 할 수가 없어 있는 힘을 쓰고 있을 때 펑퍼짐 아줌마가 갑자기 나를 때렸다. -야~옹!-
“저리 가 이 더러운 도둑고양이야”
나는 세상에서 가장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 더러운 도둑고양이라니? 그것도 깜순이 앞에서? 나한테 저렇게 말하는 사람은 지금껏 보지를 못했다. 자존심이 너무나 상했다. 고양이 세계에서 가장 모욕적인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펑퍼짐 아줌마를 피하며 무서워 벌벌 떨고 있는 깜순이를 데리고 풀숲으로 갔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방도 사라지고 담요마저 버려졌다. 하루아침에 집 없는 거지가 되어버렸다. 우리 뒤쪽의 풀이 움직였다. 누군가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눈치챈 걸 알고 달아나는데 설핏 보아도 재떨이 놈이 분명했다. -저놈이 나의 이런 꼴을 보고 즐기며 훔쳐보고 있었던 건가?-
밤이 어두워졌다. 풀이 차가워서 깜순이가 감기라도 걸릴까 봐 데리고 처마 아래로 갔다. 앞마당을 지나며 불 켜진 거실을 쳐다보았다. 새로운 주인들은 짐 정리를 마치고 거실에 음식을 차려놓고 유리잔을 부딪히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내 방을 없애고 담요까지 버리라고 박스 속으로 던져 넣었던 펑퍼짐 아줌마는 뭐가 그리 좋은지 입을 크게 벌리고 웃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 상에 차려진 음식들을 보니 아침에 멸치 몇 조각 먹고 여태껏 굶은 것이 생각났다. 깜순이는 얼마나 배가 고플까? 절대로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주인아저씨가 이사 가는 첫날부터 굶길 수밖에 없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일단 이슬이라도 피할 곳이 있는지 가던 길을 가려는데 깜순이가 거실 상위에 있는 음식을 넋 나간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먹어야 사는 본능 앞에선 매력 있는 고양이도 어쩔 수 없구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가자 깜순아!- 조용히 불러 집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래도 몸을 숨길수 있는 풀밭으로 왔다. -야옹! 흑흑!- 깜순이는 울보다. 무서워도 울고, 배가 고파도 울고, 오줌이 마려워도 운다. 저리도 마음이 약한 깜순이를 이제 나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 깜순이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별들이 깜순이 눈동자 대신 반짝이고 있었다.
내 어깨에 기대어 울던 깜순이가 말했다.
“야옹! 우리 엄마 한 테로 가요. 어쩌면 멀리 가지 않았다고 엄마도 반가워할지 몰라요. 엄마 보고 싶어요. 흑흑,”
“안돼! 깜순아! 그건 절대 안 돼, 내가 널 책임지겠다고 큰소리치고 왔는데 거길 어떻게 가니? 다시는 오지 말라던 아버님의 말씀 벌써 잊었니? 남자 고양이는 자존심 하나로 산단다. 차라리 여기서 죽어도 처갓집으로는 못 간다. 내가 어떻게든 다시 번듯한 거처 마련해 볼게 조금만 참자, 야옹!” 큰소리는 쳤지만 당장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떠 오르는 것이 없었다. -배고파요. 추어요. 야오옹!- 깜순이는 잠꼬대를 했고 풀벌레들은 빼앗긴 자기들의 영역을 내놓으라고 밤새 시위를 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