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서 왔는지 부모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기억나는 그 순간부터 아저씨가 매일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먹을 것을 주었다. 손님이 오면 아저씨는 나를 안고 족보 있는 고양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장난으로 쥐새끼 한번 잡았을 때 아저씨는 명문가문의 고양이가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고 해서 다시는 쥐 같은 건 잡지 않았다. 손끝에 쥐털하나 묻히지 않고도 항상 대서양 6대주를 누비던 다랑어나, 꽁치 고등어 같은 고급 식사를 했다. 내가 유일하게 하는 일은 털을 씻고 다듬어 언제라도 아저씨 무릎에 올라갈 준비만 하고 있으면 되었다. 한 번도 먹고살기 위한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지만 한 번도 굶은 적이 없다. 그렇게 세 살이 되도록 순탄하기만 했는데 갑자기 이런 고난이 닥치다니 이해가 안 됐다. 살면서 내가 엄청난 잘못을 한 것은 아닌지 머리를 짜내어 생각을 해 보았다. 재떨이와의 결투는 정정당당했다. 재떨이가 다친 건 자만심에 빠진 재떨이의 방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얼마 전 깜순이를 단념하라고 호돌이에게 겁을 준 것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얼룩이를 나비와 결혼하도록 월권을 행사했기 때문일까? 그것 말고는 누구에게도 먼저 해코지를 한적 없이 착하게 살았는데 왜 이런 시련이 닥친 것일까?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깜순이를 바라보다 미안한 마음에 잠들 수가 없었다. 어느새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깜순이를 살짝 건드려 보았지만 아직 깊이 잠이 들어 있었다. 남자 고양이인 나도 견디기 힘든데 먹은 것도 없이 한데 잠을 자는 깜순이는 얼마나 힘들까? 해가 뜨면 맛있는 쥐라도 잡아보아야겠다. 아저씨와 함께 살 때 천박한 고양이들이나 하는 짓 이라며 말리지만 않았어도 이럴 때 멋지게 사냥해서 사랑하는 깜순이를 굶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작년에 아저씨 차를 타고, 아저씨가 이사 갔다는 그 딸내미 집에 갔었다. 큰길을 한참 달리다가 나무가 우거진 산속길을 한참 달렸다. 오줌이 마려울 때쯤 도착한 딸내미 집은 집 뒤쪽으로 커다란 산이 겹겹이 둘러서 있고, 앞마당 앞으로 깊은 개울이 흐르고, 개울건너로 또 산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우리 집 앞으로 탁 트인 바다가 펼쳐진 것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주인아저씨가 나를 안고 차에서 내리자 딸내미가 마중을 나와 인사를 하고는 처음 한 말이 “어머나 고양이도 데리고 오셨어요? 아버지 우리 집엔 고양이 안 돼요. 아이가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잖아요. 차에 두고 들어오시면 안 돼요?”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차 안이 더워서 위험해 내가 꼭 안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하며 딸내미가 먹을 것을 주어도 나를 안고 먹으며 놀다가 왔었다. 그때는 내가 딸내미 하고 살 것은 아니니까 딸내미가 고양이를 싫어하는 것쯤은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주인아저씨가 이사 갈 곳이 그 딸내미 집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미리 기억이 났다면 아저씨가 나를 버릴 수도 있다는 예상을 했을 텐데 말이다. 그랬다면 아저씨가 계실 동안 내가 살 곳을 마련해 달라고 했어도 되는데 아무것도 몰라서 준비 없이 이 모든 상황에 닥치고 보니 막막하기만 하다.
노랑이는 아직도 자고 있는 깜순이를 한번 바라보고 슬그머니 일어났다.
허기가 더 몰려오기 전에 쥐를 잡아야 한다. 집 뒤쪽 작은 방 아래로 쥐구멍이 있다. 아침마다 물 길러 가는 쥐들의 습성을 알고 있기에 그곳에서 새끼쥐라도 한 마리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쥐구멍이 잘 보이는 곳에 몸을 숨겼다. 그동안 한 번도 쥐들을 공격한 적이 없어서 쥐들이 경계를 하지는 않겠지만 오늘은 그들 중 한 마리를 잡는다고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켕겨서 나도 모르게 몸을 숨겼다. 드디어 쥐구멍이 열리고 양동이를 들고 물 길러 가는 어미 쥐가 보였다. -분명히 새끼쥐들이 따라 나올 거야, 야옹!- 나는 침을 삼키며 몸을 낮추었다. -찍찍! 엄마!- 하는 새끼쥐의 소리가 들렸다. 바짝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저만치 가던 어미쥐가 갑자기 뒤돌아 왔다.
“찍찍! 애들아 문 닫고 집안에 조용히 있으라 했지? 어제 이 집주인이 노랑이를 두고 이사 가서 먹을 것이 없는 노랑이가 우리를 잡으러 올지도 몰라, 이제는 우리도 안전하지 않아, 어서 들어가! 원 불안해서 이사를 가던지 해야지, 찍찍!” 하며 새끼들을 안으로 몰아넣은 후 쥐구멍을 단단히 닫아걸었다. 노랑이는 기운이 빠졌다. 저렇게 눈치 빠른 쥐들을 사냥해 먹고사는 길고양이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터덜터덜 깜순에게로 왔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