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고양이 노랑이 12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마음

by 강현숙

그나저나 펑퍼짐 아줌마는 어찌 되었는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기운이 없어 쓰러진 거라면 구렁이로 몸 보신 하면 곧바로 효과를 볼 것이다. 그러면 구렁이를 잡아 온 나의 공로를 인정해서 나와 깜순이를 가족으로 받아줄지도 모른다. 구렁이를 잡을 때 나도 모르게 용기가 났었다. 깜순이에게 안정되고 편안하고 사랑받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숨어있는 용기가 났던 것 같다. 얼른 가봐야겠다. 빠른 걸음으로 주인집 현관 앞까지 왔다. 그때 지붕 위에 배꼽이 달린 차가 들어왔다. 얼른 몸을 숨겼다. 빼빼 아저씨가 먼저 내리더니 기운 없는 펑퍼짐 아줌마를 부축해서 내리게 했다.

“에구구, 에구구, 그놈의 고양이 놈 때문에 이 무슨 날벼락이람?”

펑퍼짐 아줌마는 내 욕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사랑받기위해 최선을 다한것 뿐인데... 배꼽 달린 차는 가버리고 빼빼 아저씨가 펑퍼짐 아줌마를 부축해 현관 앞으로 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마조마하며 구렁이를 보고 반가워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으악!! 흑흑!- 아줌마가 또 소리를 지르며 울먹인다. -어! 여기에 왜 구렁이가 죽어있지? 당신이 이놈을 보고 놀란 거구먼, 진정해! 내가 금방 치우고 올 테니까!- 빼빼 주인은 집게로 구렁이를 집어 바다에 던져 버렸다. -저럴 수가? 저걸 어떻게 잡은 건데 저 귀한 보양식을 바다에 버리다니!- 나는 정말 울고 싶었다. -안돼! 야옹!- 하며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빼빼가 나를 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이놈의 고양이 새끼!-하며 몽둥이를 들고 나를 쫓아왔다. 전력을 다해 도망치면서 뒤돌아보니 펑퍼짐 아줌마는 현관 앞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구렁이는 버려져 파도에 떠내려가 버리고, 빼빼는 나를 몽둥이로 때리려 하고 펑퍼짐 아줌마는 울고 있고... 전혀 상상하지 못한 상황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저리도 몸에 좋은 구렁이를 보고 소리치고 놀라고 울고불고 난리라니? 도대체 무슨 일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저놈의 고양이 내 기어코 내쫓아버릴 테니까 진정해!-하며 빼빼가 펑퍼짐을 붙들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새 주인들의 마음에 들 지혜가 떠오르지를 않는다. 정말 이 집을 떠나야 하는 걸까?

풀이 죽은 내 모습을 보고 깜순이는 또 운다. 지겹다 나도 할 만큼 하는데 걸핏하면 울기만 하는 깜순이가 밉다. 밉다고 생각하니 지금의 모든 상황이 깜순이를 만나고부터 생겨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주인은 어쩌면 나 혼자였으면 나를 버리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깜순이와 둘 다 데려가려니 딸에게 눈치가 보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버려지고 잠잘 곳도 잃고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이런 상황이 깜순이 때문이다. 빼빼 아저씨가 이사오던 첫날 –한 마리도 아니고 깜순이까지 있잖아?- 하던 말이 떠올랐다. 불쑥 화가났다.

“울지 마! 야옹!, 야옹!,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데 왜 맨날 울기만 하는 거야? 널 받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나도 배고프고 풀밭에서 자는 거 차갑고 가렵고 싫단 말이야!” 소리를 질렀다. 깜순이는 젖은 눈을 크게 뜨고 벌벌 떨고 있었다. 이 지경까지 되고 보니 저 이쁜 깜순이와 결혼만 하면 행복할 것 같았던 지나간 감정들이 우스웠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그때까지 살았던 편안한 삶이 영원할 줄 알았다. 재떨이 같은 놈에게 도움을 청하고 먹을 것을 얻어 감동하던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모진 생각들이 떠오를 때 재떨이를 구해준 잿빛털 고양이가 했다는 말도 떠올랐다. 그 말을 곱씹어 보았다. -삶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길고양이의 삶도 가치가 있어-

어린 재떨이가 혼자서 성년이 되도록 살아낸 그 삶이 순탄했을까? 나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결혼까지 했잖아? 곧 아이들도 태어날 텐데, 독립해서 가족을 부양한다는 생각을 못하고 아직도 누군가를 의지해서 가족 모두가 먹고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다니, 바보 같은 나를 깨닫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서슬에 놀란 깜순이는 무서워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 -불쌍한 것-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저 이쁜 깜순이에게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후회가 됐다. 나 하나 믿고 따라온 죄밖에 없는 깜순이를 아프게 하면 안 된다. 죽어도 같이 주고 호강도 같이하리라.

“미안해 깜순아! 야옹!, 내 진심이 아니야 제발 진정해” 나는 깜순이를 꼭 끌어안았다. 깜순이는 아직도 울음을 참느라 꺼억! 꺼억! 딸꾹질을 하고 있었다. 아까 먹은 게 몇 마리는 벌써 소화가 되어 출출했다. 파도에 떠밀려간 구렁이가 생각났다. 그 한 마리면 깜순이랑 3일은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데 아깝기 짝이 없었다. 등짝을 풀벌레가 물어뜯었다. 깜순이의 얼굴도 다리도 벌레 물린 상처로 딱지가 앉았다. 그나저나 이제 다가올 장마철이 문제다 풀밭에서 장마를 보낼 수는 없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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