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고양이 노랑이 13

체면은 묻어두고..

by 강현숙

비를 피할만한 곳이 있는지 집 주변을 돌아보았다.

집 뒤쪽 작은 방 아래로 쥐들이 살고 있는 구멍이 생각났다. 식구가 많아 구멍이 제법 클 것이다 쥐들을 내 쫒으면 깜순이랑 둘이 살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다. 입구가 좁고 안이 넓어 개들이 귀찮게 하는 것도 피할 수 있다. 작은방 환기통과도 연결되어 눅눅하지도 않을 것이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구조이다. 풀숲에 비하면 그야말로 대궐 부럽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 체면에 말이 아니지만 당장 다가올 장마 앞에 체면을 차릴 겨를이 없다. 풀숲에서 밤을 지새우는 사이에 깜순이 이쁘던 털이 털 빠진 까마귀 꼴이 되었다. 내 털도 황금빛은 사라지고 껌딱지가 붙은 듯 엉켜서 볼품이 하나도 없다. 쥐들을 쫓아 내고라도 그 집을 차지하면 그나마 장마철에 더 망가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체면은 나중에 찾기로 하고 쥐구멍 쪽으로 갔다. 새끼들이 집 앞에서 놀다가 쏜살같이 집안으로 숨어 버렸다. 쥐가족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엄마, 그리고 나와 동갑인 큰아들과, 바로 아래 시집간 딸과 처가살이하는 사위가 있고 그 아래로도 건장한 아들쥐들이 다섯이나 있다. 저놈들을 모두 쫓아 내려면 혼자 힘으로는 벅찰 것이다. -어쩌나, 이럴 때 재떨이가 좀 도와주면 좋으련만...- 어느새 힘들 때는 재떨이를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부모도 없고 집도 절도 없이 떠돌던 재떨이는 어려서부터 혼자 먹을 것을 찾고 혼자서 안전한 잠자리를 찾아 자면서 성장했다. 자신 앞에 어떤 상황이 닥쳐도 전혀 두려워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그런 재떨이가 몹시도 부러웠다. 이럴 때 재떨이와 힘을 합치면 이까짓 쥐구멍 하나 정도는 순식간에 빼앗을 수 있을 텐데 지금 내 모습이 초라하기만 했다.


감상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어 정신을 차리고 쥐구멍 안쪽의 상황을 살폈다. 그때 어흠! 큰기침을 하며 할아버지 쥐가 곰방대를 물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엄마쥐와 손자 쥐들이 –찍찍, 할아버지 잘 다녀오세요. 아버님 조심히 다녀오세요- 인사를 하고 있었다. “첫째야! 문 앞을 잘 지키고 있거라! 요즘 집주인이 바뀌고 노랑이가 갈 곳이 없어 여기저기 살 곳을 찾으러 다닌다는 말이 있어, 여기는 겨울엔 따듯하고, 여름엔 시원해서 살기에 좋고, 입구가 좁아서 적들이 쉽게 침범할 수 없는 안전한 곳이란다. 입구에서 방어만 잘하면 재떨이가 와도 문제가 없을 거다. 그러니 문 앞을 방심하지 말고 잘 지키고 있거라! 찍찍!” “네 할아버지 걱정 마셔요. 샌님 같은 노랑이 정도는 저 혼자서도 이길 수 있어요. 찍찍!” 나는 자존심이 상하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벌써 저 여우 같은 할아버지 쥐가 나의 사정을 다 알고 있으면서 철저히 방어를 하라고 손자쥐에게 이르고, 동갑내기인 큰 놈은 나를 무시하면서 의기양양해 있다. 용기백배해 있는 큰아들 쥐를 당해낼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은 이 주변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포기할 수도 없고, 빼앗자니 혼자서는 안 되겠고 갈팡질팡 했다. 순간 생각을 멈추었을 때는 재떨이를 만날수 있는 방파제로 저절로 가고 있었다. 멈칫 돌아서려 할 때 재떨이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노랑이!”

요즘 부쩍 덩치가 커진 재떨이가 늠름하게 서 있었다.


한 번만 도와달라고 해볼까? 체면은 묻어두기로 했으니 재떨이 도움을 받아 쥐들의 집을 빼앗아 살다 보면 빼빼 와 펑퍼짐이 마음을 여는 날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용기를 내기로 했다.

“어! 재떨이 잘 만났네. 야옹!”

내게 볼일이 있나? 야옹?”

“그렇다네, 야옹!”

“왜? 무슨 일인데? 야옹?”

나는 간신히 입을 뗐다.

“새로 온 주인이 지난번 구렁이 사건 이후로는 나를 보려 하지 않네, 아예 나만 보면 몽둥이를 들고 쫓아오네, 그 상황이 언제까지 일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 더 괴롭네, 지금 내 꼴도 말이 아니지만 깜순이는 꽁지 빠진 까마귀 꼴이 되었네, 가끔씩은 정신까지 나간 것처럼 멍하니 먼바다만 쳐다보고 있으니 안타까워서 내가 너무 힘드네, 더구나 장마철이 코앞인데 이대로 풀숲에서 밤을 지새 울 수는 없지 않은가?”

“음! 안타깝게 됐구먼, 무슨 방도를 생각해 둔 것은 없는가?”

“작은 방 쪽으로 쥐구멍이 있네, 그곳이라도 빼앗고 싶은데 그 집 가족들이 머리도 영리하고 건장한 큰아들 쥐는 힘도 세네, 무슨 방도가 있겠는가?”

“어허! 이보게 고양이 체면이 말이 아닐세, 아무리 궁색하다지만 어찌 쥐구멍 빼앗을 생각을 하는가?”

나는 부끄러웠다. 하지만 지금 체면 차릴 상황이 아니다. 고개를 숙이고 한숨만 쉬었다.

“이보게 차라리 방파제로 가세, 내가 거들어 줄 테니 그곳에 터를 잡세”

그건 길고양이들이 하는 짓이다. 내가 재떨이에게 몇 번 도움을 받았다고 재떨이가 완전히 나를 제 놈과 같은 부류로 취급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이보게 나는 한 달 전에도 집주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족보 있는 집고양이란 말일세, 지금 내 처지가 이리되었다고 날 우습게 보는가?”

“하하하하....!”

재떨이는 실소를 했다. 나는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어 쳐다만 보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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