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동안 나는 재떨이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내가 보기에 넌 의리도 있도 약속도 지키는 좋은 고양이 같은데 어쩌다 버릇없고 지저분한 고양이라는 오명을 듣게 된 거야? 재떨이라는 이름은 또 뭐야?”
재떨이는 표정이 굳어졌다.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 것 같았다.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던 재떨이가 입을 열었다.
“내가 처음 눈을 뜬 곳은 바닷물에 흠뻑 젖은 엄마의 등이었어, 지금 살고 있는 방파제 끝이었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파도가 한번 훑고 지나간 다음이었던지 짠 냄새가 가득했고 흠뻑 젖은 주변에 내 형제들이 모두 죽어 있었어, 엄마를 흔들었지만 꿈적도 하지 않았고 숨도 쉬지 않았어,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우는 것뿐이었어. 기어서 방파제를 올라갈 수도 없었지만 엄마와 형제들의 죽음을 보고 살고 싶다는 의욕도 없었지, 그렇게 울고 있을 때 조용한 기척이 나를 물어 방파제 위로 올려놓더군. 너무 울어서 눈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어. 나를 물어 올린 그는 혀로 핥아 주었는데 그 느낌이 아주 따뜻했어,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인데, 나도 처음부터 길고양이는 아니었대, 엄마가 살던 집은 나이 드신 할머니가 주인이었는데 우리가 태어나던 날 할머니가 돌아가신 거야, 할머니를 장례 지낸 그 집 아들들이 집 정리를 하면서 갓 태어난 우리 형제들을 모두 방파제에 버렸지, 우리를 구하려고 애를 쓰던 엄마는 산후통에 밀려오는 바닷물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셨어, 숨이 넘어가면서도 엄마는 우리가 떠내려 가지 않도록 안고 있었는데, 그런 엄마를 바닷물은 인정사정없이 덮어 버린 거야, 간신히 나를 등으로 올린 순간이었지, 다른 형제들까지 물이 닿지 않는 등으로 올리기에는 엄마는 이미 지쳐 있었어, 마지막으로 큰 파도가 우리 모두를 덮쳤고, 엄마의 등에 있던 나만 간신히 머리를 들고 숨을 쉬었지, 한참 후에 파도 소리가 저 멀리서 들릴 때 눈을 떴는데 엄마와 형제들이 이미 떠난 뒤였던 거야,”
“그때 아버지는 어디 계셨어?”
“나는 아버지에 대해선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어,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 엄마와 형제를 잃은 슬픔에 빠져 있을 때 나를 물어 올린 것은 잿빛털을 가진 덩치가 큰 고양이였어. 그가 나를 지금의 방파제 구멍에 살게 해 주고 매일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지. 어느 날 내가 작은 쥐를 잡던 날. 난 처음으로 물어보았어, 혹시 우리 아버지를 아시냐고?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 잿빛고양이는 -이제 네 힘으로 살 때가 된 것 같구나, 길고양이의 삶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단다. 삶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말하고 파도가 밀려가듯이 가다가 멈추어 돌아다보고, 또 돌아보면서 안갯속으로 사라졌어, 그 후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내가 2살이 되던 날, 난 처음으로 시내 구경을 갔었는데 어느 집에 신기한 물건이 가득하더라고, 태양도 여러 개였고 똑같은 나무도 여러 개가 들어있는 것이었지, 그 속에 똑같은 여러 마리의 잿빛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어, 나를 돌봐 주었던 그 고양이와 너무 닮은 거야. 난 걸음을 멈추고 혹시 나를 아느냐고 물었지만 모두가 내가 하는 대로 놀리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어, 그 후로 나는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는 나를 구해주고 보살펴 주었던 잿빛 고양이를 생각하면서 그곳에 가, 우리 아버지도 그 고양이처럼 생겼을 거라는 생각을 하거든, 요즘은 잿빛털이 엉키고 윤기가 다 사라졌던데 무슨 일인지 물어도 대답을 안 해”
나는 재떨이가 보았다는 그 빛나는 물건을 알 것 같았다. 주인집에도 그런 것들이 여러 개 있었다. 어느 것은 얼굴만 보이고 어느 것은 꼬리까지 다 보여주는 요술 같은 물건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거울이라고 불렀다. 그 속에 잿빛 고양이는 바로 재떨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재떨이는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 말해주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도록 그냥 두기로 했다.
“재떨이라는 이름은... 바로 그 수많은 잿빛 고양이가 사는 집에 사람들이 드나드는데 이상하게 아저씨들이 들어갈 때는 담배꽁초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지는 거야, 담배꽁초가 던져질 때마다 뜨거운 불에 델 까봐 멈칫거리는 것을 보았지. 그래서 내가 주어 먹기로 했어, 신기한 상자 속에 고양이들이 다치면 안 되니까. 그때부터 친구들도 사람들도 나를 재떨이라고 부르더군, 하하하!”
".....!!"
나는 가슴이 먹먹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거울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상상 속의 아빠 고양이들이 담뱃불에 델까 위험을 무릅쓰고 꽁초를 주어먹기 시작한 재떨이의 순수한 마음을 왜 우리 모두는 불량고양이로 낙인찍었을까? 고양이의 겉모습과 말하기 좋아하는 고양이들의 말만 믿고 -재떨이는 불량고양이-라는 이미지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었다.
삐걱!, -앗! 주인이 나오고 있어?- 우리는 긴장을 하며 서로 바라보았다. 제발 제발 이번에는 마음에 들기를, 우리가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하고 잡아 왔는지 우리의 공을 인정해 주시기를... 조마조마하며 기다렸다. -으악!- 아침에 쥐를 보고 내던 소리보다 더 컸다. -여보 왜 그래?- 뒤 따라 나오던 빼빼 남편이 펑퍼짐 아줌마를 잡았다. 펑퍼짐 아줌마는 아예 쓰러져 버렸다. 119, 119, 빼빼 남편이 허둥대며 네모난 물건을 주머니에서 꺼내 띠띠띠... 하고 소리가 나게 눌렀다. -아이고 이게 뭔 일이야? 여보 정신 차려!- 빼빼 아저씨는 펑퍼짐 아줌마를 흔들었다. 뭐가 또 잘못된 것 같다. 목숨 걸고 잡아 온 저 튼실하고 영양 많은 구렁이를 보고 쓰러지다니 어떻게 된 일이지? 너무 좋으면 사람들은 저렇게 표현을 하는 건지 고양이 세계에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다. 이해가 안 되었다. 재떨이와 눈을 마주쳤지만 그렇게 세상 경험이 많은 재떨이도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잠시 후 –띠또 띠또- 하며 반짝이는 불빛이 지붕에 달린 차가 와서 펑퍼짐 아줌마를 태워 가지고 갔다. 재떨이는 자기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가버렸다, 구렁이는 축 늘어진 채로 저만치 밀려나 있었다. 우리라도 며칠 먹으면 좋을 텐데, 주인집에 선물로 준 것을 다시 가져 올 수가 없어 그대로 두었다.
주인집은 깜깜했다. 살그머니 현관 앞으로 가서 아무렇게나 밀려나있는 구렁이를 조심스럽게 꼬리를 물어 현관 앞으로 끌어다 놓았다. 주인들이 와서 아까 쓰러진 펑퍼짐 아줌마를 위한 기운 나는 보양식이 있다고 좋아할지도 모른다.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깜순이에게로 왔다. 어찌 됐냐고 눈을 반짝이며 물었지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깜순이도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금방 시무룩해졌다. 깜순이를 위해 작은 생선이라도 잡아야 했다. 바닷가로 갔다. 예전 같으면 위험하다고 주인이 막 부르던 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는 듯했다.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밀물이 몰려오는 소리가 처량했다. 게들이 째깍거리며 파도타기를 하고 있었다. 집게발만 떼면 저놈도 먹을만한데 집게발이 무서웠다. 망설이고 있을 때 재떨이가 왔다.
“거기 노랑이 아닌가? 사냥하게?”
“응, 그런데 난 저놈의 집게발이 무섭네”
“이봐 우린 구렁이도 잡은 전사라고, 이까짓 집게발 따위를 무서워하다니, 자 나를 보게,”
그리고는 파도타기에 정신이 없는 게 한 마리를 낚아챘다. 실로 눈 깜박할 사이였다. 그리고는 바닥에 던지더니 곧바로 게 등을 발로 밟았다. 게는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한참을 밟고 있으니 게가 거품을 물고 늘어졌다. 그때 재떨이가 얼른 게의 등딱지를 뜯어냈다. 노련한 재떨이의 솜씨에 게 한 마리가 맛있는 간식이 되었다.
“이건 자네에게 주는 선물이네,”하며 내게로 내밀었다.
“고맙네!”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저놈이 저렇게 정이 많은 놈인 줄 몰랐다.
"그런데 구렁이는 어찌 되었나? "
"글쎄 잘 모르겠네, 펑퍼짐 아줌마가 쓰러지고 시끄러운 차가 불빛을 반짝이며 와서는 태우고 갔네"
"거참 이상하군 나도 사람들이 보양식으로 뱀탕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거든 그래서 자네의 제안에 동의했던 건데 사람마다 다른가보네, 일단 게사냥이나 하면서 기다려보게, 자네의 계획이 성공했으면 좋겠네"
나는 재떨이가 하던 대로 파도 타는 게를 낚아채었다. 빈손이었다. 내가 초보인 줄 아는 게 들이 내 눈앞을 오가며 약 올리듯 했다. 시범을 보이며 몇 마리를 잡아 등껍질을 뜯어 깜순이랑 먹으라며 건네주고 돌아서 가던 재떨이가 소리쳤다.
“포기하지 말게나! 누구나 처음엔 다 서툴다네 , 해내려는 마음만 있다면 곧 익숙해질수 있어”
멀어져가는 재털이의 뒷모습과 내손에 먹기좋게 손질된 게를 번갈아 보면서 하찮은 놈이라고 무시했던 재털이에게 앞으로 내삶을 의지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