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파제 주변에서 조개를 잡아먹는 재떨이가 보였다.
“어이! 재떨이! 다리는 좀 괜찮아졌나?”
내가 부르자 재떨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봐 재떨이 나 좀 도와주게나!”
도와 달라는 말이 힘겹게 내 입에서 나왔다.
“도와 달라니?, 나 같은 길고양이가 자네 같은 고귀한 집고양이를 어찌 도울 수 있겠나? 야옹?”
재떨이는 아직도 약간 절면서 비꼬듯이 말했다. 전 주인이 나를 버리고 이사 간 것을 고소해하는 투로 들려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다. 용기를 내어 본론을 말했다.
“이봐, 내가 지금 뱀을 잡아야 하는데 도와주겠나?”
“뱀이라고? 자네 주인에게 버림받더니 드디어 미친 건가? 뱀이 얼마나 위험한 동물인데, 뱀을 잡겠다니? 명 재촉 하지 말게나! 나는 못하네, 이번에 다리 치료에도 필요해서 새끼 뱀 한 마리를 잡아먹기는 했지만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것이 뱀 사냥일세.”
재떨이는 냉정히 거절했다. 하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나를 능가하는 재떨이가 예기치 않았던 낙상으로 다리를 다치고 깜순이를 단념해야 했으니 나를 도와주는 일은 내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재떨이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하다.
“이봐 재떨이! 깜순이를 두고 우리가 결투를 한 것은 정정당당한 일이었네. 규칙을 벗어난 결정은 하나도 없었네, 자네도 그때 인정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깜순이를 내게 보내 주었고, 깔끔하게 깜순이를 단념 했던거잖아? 지금 내가 곤란하게 되었네, 자네도 소문을 들어 알겠지만 당장 사랑하는 깜순이와 잠잘 곳이 없어 노숙을 하고,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네, 새 주인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지금의 생활을 언제 끝낼지 알 수가 없네, 사람들이 보양식이라 말하는 뱀을 잡아 새 주인들에게 선물하고 싶네,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일인데 목숨을 거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네, 자네가 한때나마 진정으로 깜순이를 사랑했다면 외면하지 않길 바라네”
깜순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재떨이는 잠시 감정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평정을 찾은 듯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이봐 차라리 이곳으로 오게 사람들이 말하는 길고양이의 삶도 살아볼 만하다네, 조금만 노력하면 배고픔 같은건 격지 않아도 되네 ”
나는 뜻밖의 재떨이 말에 잠시 기분이 상했다. 전 주인이 떠나고 며칠 노숙을 하고 있다고 나와 깜순이를 저희들의 삶으로 끌어들이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번도 길고양이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봐, 농담하지 말고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게,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사람들의 보호를 받고 살아온 집 고양이란 말일세, 나는 자네들처럼 사는 건 자신이 없네, 자네는 자네 방식의 삶이 있고, 나는 내 방식의 삶이 있지 않은가, 나는 지금 새 주인의 마음을 돌려 그 집에서 집 고양이로 살고 싶네"
"삶의 정해진 방식이란 건 없네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에 따라 적응하며 사는 거지, 하긴 자네가 그걸 이해하기에는 그간의 삶이 너무 편안했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하고 있는 재떨이에게 다시 한번 사정했다.
"주인이 쥐 같은 것에는 꿈쩍도 안 하네, 오히려 그 맛있는 쥐를 망설임도 없이 바다로 던져 버렸네, 깜순이의 의견인데 사람들은 뱀을 좋아한다네, 최고의 보양식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야, 주인에게 사랑받으려면 적어도 뱀 정도는 선물을 해야 한다는 거지, 만약 이번일이 잘못되면 그때는 자네의 제안에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네"
재떨이가 고개를 저으며 먼바다만 쳐다보았다. 나는 조바심이 났다.
“여보게 시간이 없네 부탁하네”
“좋아 하지만 이번만 일세 자네가 집고양이로 살아가고자 하는 노력에 더 이상은 나를 끼워 넣지 말게, 세상의 다양한삶을 부딪히며 살아온 나로서는 절대적 존재의 마음에 들어서 편안히 살려는 자네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 또한 고양이가 살아가는 한방식이니 한번만 도와주겠네,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나?”
“고맙네 재떨이!”
나는 재떨이가 도와준다는 말에 덥석 재떨이의 손을 잡았다. 마음같아선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싶은 심정이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의논에 들어갔다. 먼저 재떨이가 말했다.
“내가 말이야 저쪽 산소 아래에 구렁이가 사는 것을 아네, 사람들 보양식이라면 구렁이가 최고지, 그놈을 잡세, 며칠 전에 보니까 살이 통통하게 쪄서 약발좀 받겠더라고”
“산소 아래면 우리가 몸을 숨길 곳도 없는데 괜찮겠나? 잘못하다간 오히려 우리가 공격을 받을 수도 있어, 그놈에게 물리면 사흘도 못 가서 죽을 걸세, 그놈이 모르게 가까이 접근하는 계획이 필요해”
“그건 걱정 말게 그놈 습관이 하나 있는데 해가 지기 전에 항상 일광욕을 하러 나오더라고, 얼마나 폼을 잡는지 일광욕할 때는 눈을 지그시 감고, 개구리 노래 소리랑 풀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명상에 빠져 있어, 그러고 있을 때 내가 한번 그 곁을 지나간 적이 있는데 내 발소리도 듣지를 못하더라니까? 오히려 내가 놀라서 뒤로 자빠졌는데 그때 서야 실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더라고 혼비백산해서 도망쳐 왔지, 그런 모습을 여러 번 보았네, 아마도 그게 습관인 것 같아, 오늘도 그 시간에 가면 분명히 명상하고 있을 거야, 그때 자네가 뒤통수를 물고 내가 꼬리를 물면 잡을 수 있을 걸세, 만약에 그놈이 몸부림쳐서 자네가 뒷덜미를 놓치면 내가 죽을 것이고 내가 꼬리를 놓치면 자네가 맞아서 큰 부상을 입을 거야, 그건 운명에 맡겨야 하네, 만에 하나 잘못되더라도 자네 원망은 하지 않겠네”
“고맙네, 고맙네, 이렇게 위험한 일을 도와주려 결심한 자네에게 면목이 없네, 야옹!”
나는 진심으로 재떨이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버릇없다고, 지저분하다고, 동네 고양이들이 왕따를 한다고, 나도 무시를 했었다. 그런데 막상 힘든 일에 발 벗고 나서주는 재떨이에게 호감이 갔다. 이 순간에 믿을 만한 고양이는 재떨이뿐이었다.
우리는 산소 쪽으로 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나는 편안히만 살았던 지난 내 삶이 어려운 환경에선 헤쳐 나갈 용기를 갖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고 잠자리를 찾아 도처에 널린 위험을 헤치며 살아온 재떨이는 삶에 달관한 태도로 덤덤하게 내이야기를 들었다. 솔직한 내 이야기에 재떨이는 용기를 주었다.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좋은 거 먹고 편안한 잠을 자는 것도 좋지만 눈치 보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만약 오늘 계획이 실패하게 되면 앞으로는 자유로운 길고양이의 삶을 살아 보자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동안 떠도는 소문만 믿고 재떨이를 멀리 했던 시간들이 미안해졌다. 아직도 재떨이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너무나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우리는 산소에 다달았다. 해는 서산으로 한 뼘쯤 남기고 숨 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너무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햇볕이 일광욕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전에 주인의 무릎에 앉아 그 평화로움을 나도 느낀 적이 있었다. 구렁이 놈이 어떻게 여유롭게 일광욕을 하면서 명상하는 습관을 들였는지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내 삶이, 아니 깜순이와 나의 두 고양이 삶이 달린 문제이다. 사색에 빠져서는 안 된다. 재떨이와 나는 구렁이 집이 있는 산소반대편 언덕에 몸을 바짝 붙이고 숨을 죽였다. 적당히 자란 풀들이 우리 두 고양이 몸을 숨기기에 충분했다. 재떨이의 말에 의하면 곧 구렁이가 명상하러 올 시간이다. 스르륵! 문이 열렸다. 스륵! 스륵! 구렁이가 햇볕을 바라보며 만족한 듯 자리를 잡고 똬리를 틀었다. 사냥을 해야 하는 대상이지만 저 폼은 과연 멋진 철학자의 모습이었다. -구렁이시여 죄송하게 됐소이다. 제 삶이 딱하게 되어 당신을 이용하여 새로운 주인의 마음을 얻어보려 하니 제발 우리에게 잡혀 주소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기도 같은 것이 가슴을 채웠다.
재떨이가 눈 사인을 보냈다. 하나, 둘, 셋, 동시에 내달렸다. 구렁이가 눈치채기 전에 일이 끝나야 한다. 콱! 나는 구렁이 목덜미를 물었다. 동시에 재떨이도 구렁이 꼬리를 물었다. 구렁이는 있는 힘을 다해 몸부림쳤다. 내 몸이 공중에서 흔들렸다. 재떨이의 몸도 들려지면서 우리는 서로 공중에서 부딪혔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눈에서 진주 구슬을 쏟아내던 깜순이 얼굴이 스쳐갔다. 힘을 냈다. 내가 이기지 못하면 깜순이도 불행해질 것이다. 나 없는 세상에서 이쁜 깜순이가 떠돌이도 살게 할 수는 없다.
재떨이도 힘 있게 잘 버티고 있었다. 마침내 몸부림치던 구렁이는 –꺼이꺼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하며 늘어졌다. 잠시 후 미세한 떨림마저도 멈추었다. 재떨이는 구렁이 꼬리를 뱉어내며 털을 털었다.
“어이 정말 대단했네, 이런 거물 사냥은 사실 나도 처음일세, 자네 용기가 성공의 원천이네,”
나는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직도 구렁이 목덜미를 물고 있었다. 그만 놓아도 된다는 재떨이의 말을 듣고서 물었던 구렁이를 내려놓았다. 늘어진 구렁이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혼자서는 물고 가지도 못할 만큼 통통하고 길었다. 이 정도면 주인집 사람들 입맛이 아무리 까다롭다고 해도 마음에 들 것이다.
재떨이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늘어진 구렁이의 머리를 어깨에 들러 매었다. 재떨이도 어깨를 들썩하며 꼬리 쪽을 어깨에 메었다. 거물답게 엄청 무거웠다. 이 정도면 냉정한 새 주인들도 내 정성을 알아줄 것이다. 어깨가 무거웠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룰루랄라~~ 재떨이와 콧노래를 부르며 현관 앞까지 왔다. 주인들에게 잘 보일만한 현관 앞에 가지런히 두고 계단 아래로 숨었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러 나올 새 주인들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환하게 웃으며 좋아할 빼빼 와 펑퍼짐의 얼굴을 떠올리니 가슴이 콩콩 뛰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