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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술일까? 예술일까?

솔직한 식탁이 필요해.

by 강현숙

특히 횟집에 가면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접시 위로 높이 쌓인 음식의 모습이다. 여러 가지 장식으로 뒤덮인 사이사이로 주메뉴인 생선회가 먹음직스럽게 놓여있다. 누가 뭐래도 잘 장식된 음식은 신선해 보이고 맛있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일단 눈으로 맛있어 보여야 손이 간다. 음식장사를 하려면 무릇 뛰어난 미적감각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미적감각이라 하기엔 왠지 속은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다.


푸짐해 보이는 생선회를 보고 -포식하겠다-라는 푸근한 마음으로 한 점을 들어 올렸는데 봉긋이 쌓여있는 생선회 아래로 무채나 천사채 같은 것이 쌓여있는 경우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익숙한 문화여서 그런 경우는 거의 없겠지만 내가 처음 횟집에 갔을 때 -저걸 다 먹어?- 하고 놀랐다가 단 한 번의 젓가락질로 너무 실망했던 오래된 기억이 있다. 그때가 아마도 1980년 초반이었을 것이다. 인천의 어느 횟집에 가게 되었는데 기본반찬을 깔아주고 한참만에 생선회가 나왔다. 하얀 동그란 접시에 수북이 쌓여있는 생선회를 보고 나는 입을 딱 벌렸다. 배고픈 시절임에도 인원수보다 너무 많은 양으로 보였다. 주변에서 다들 생선회는 비싼 것이라고, 부자들이나 먹는 거라 하던 생선회가 -저 정도면 여러 사람이 충분히 먹을 수 있을 테니 비싼 것도 아니네-라는 생각을 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런데 이미 앞사람 옆사람이 한 점씩 집어간 자리가 이상했다. 치킨집에서도, 삼겹살집에서도, 치킨아래 치킨 아닌, 고기 아래 고기 아닌 다른 건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생선회 아래 생선회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생선회가 아닌 다른 것이 있었다. 가늘게 썰어진 무채!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그때 그 노래는 없었지만 분명 거기서 나오면 안 되는 것이었다. 잘못된 줄 알았다. 주방장의 큰 실수로 생각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생선회를 집어 초장에 찍어서 맛있게 먹는 일행들 까지 이상하게 보였다. 두리번거리다 옆 테이블의 파장 분위기 접시를 보게 되었다. 봉긋했던 무채가 흐트러진 상태였다. 간간히 부족한 생선회대신 무채를 집어먹은 흔적이었다. 겨우 상황을 이해하고 생선회를 먹으려 했을 때 이미 우리 상의 생선회는 거의 사라진 후였다. 그날의 허무함은 아직도 기억이 날 만큼 강렬했다.


얼마 전 모임에서 그때의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나는 상황을 만났다. 육회와 연어회가 함께 나오는 메뉴였는데, 한눈에 보아도 푸짐한 접시였다. 함께 식사하던 모두가 와! 탄성을 지르며 젓가락을 접시로 가져가던 순간에 나는 보고 말았다. 연어회 아래로 쌓인 연어 아닌 물체를... 그냥은 먹을 수 없는 천사채를 듬뿍 쌓아 둥근 모양을 만들고 그 위로 대여섯 점의 연어회를 얹은 것이다. 살짝 연어회 한 점을 집어보았다. 상상을 저버리지 않고 젓가락에 딸려 나올 정도로 연어회보다 많은 천사채가 있었다.


왜 유독 횟집에서만 회보다 많은 장식물을 쓰는 건지 아직도 궁금하다. 음식을 싱싱하고 맛있게 보이기 위해서라고 하기엔 장식이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식사가 끝나면 모두 버려질 장식물에도 비용을 지불해 왔다는 사실에 갑자기 본전 생각이 났다. 예술이라 하긴엔 어설프고 상술이라 하기엔 지나치다. 남아도는 음식 쓰레기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식탁에서는 좀 솔직해지면 안 될까? 아래사진처럼 말이다.

사진 속의 시간은 병어회가 주인공이다.

눈속임하는 장식물들은 하나도 없다. 다 먹고 나면 설거지 해서 다시 쓰는 빈그릇만 남는다. 솔직 담백한 상차림이 구미를 당긴다. 이런 문화를 모두가 사랑하는 그날이 빠르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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