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한다고 될까?
서울 갈 사람이 광주행 버스를 탔다.
전라도 광주 터미널에 도착 20분 전에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통화버튼을 누르고 작은 목소리로 받았다.
"어디야?"
"응, 장성쯤 지나는 것 같아"
남편은 왜 늦느냐고 궁금해했다. 그럴 일이 있었다고 도착해서 전화할 테니 카메라 찍히기 않게 어디 좀 있으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거의 1~2분을 벗어나지 않게 유성에서 광주로 가는 버스는 운행시간이 정확했다. 유성에서 출발시간을 알려주면 남편이 터미널에 도착하는 시간도 정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20분이나 늦어졌으니 남편이 궁금해하는 것이 당연하다.
유성에서 검표를 하고 차에 올랐다. 앞자리에 앉은 나는 뒤따라 검표하고 승차하는 사람들을 무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분이 좀 전에 화장실 갔다 온사람이라며 검표는 이미 했다면서 뒷자리로 갔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화장실 가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했다. 차는 시간이 되어 출발을 하여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10분쯤 지나는 지점에 있는 벌곡 휴게소를 막 지났을 때였다. 화장실 갔다가 다시 탔다던 그분이 앞으로 나와 기사님께 말을 걸었다.
"이차가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기사님은 룸미러로 그분을 쳐다보며 광주로 갑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순간 손님이 무언가 트집을 잡으려 하나 싶어서 온신경이 두 분의 대화로 몰려갔다. 손님이 말했다.
"제가 지금 서울에 가야 하는데 광주 가는 차면 잘못 탄 것 같은데요"
기사는 어리둥절, 난감한 표정으로 잠시 바라보더니 광주까지 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 병원에 가는 길입니다. 지금 몸이 많이 안 좋아서 강남성모병원에 6시에 예약했어요. 광주 갔다가 다시 차를 타면 많이 늦을 것 같은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하면서 그냥 들어도 난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사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차는 논산 나들목도 지나쳐 계속 달리고 있었다. 잘못 탄 손님도 말이 없었다. 가까운 졸음쉼터도 지나고 서울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머리를 굴렸다. 고속버스가 다니는 도시 가까운 나들목을 잠깐 나가서 내려주고 오면 어떨까? 그럼 택시를 불러서 가면 될 텐데, 아니면 휴게소에 내려주고 휴게소 직원들이 다니는 통로로 나가서 반대편 휴게소로 가면 서울 가는 고속버스를 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무런 대답 없이 계속 달리고 있는 운전사가 야속했다. 잘못 탄 승객은 얼굴이 창백한 것이 진짜 환자 같았다. 응급실을 간다는 승객의 편이 되어 기사에게 한마디 해줄까 생각하고 있을 때 그 승객이 말을 했다.
"가까운 휴게소에 내려주시면 안 될까요?"
기사분의 목소리는 그제야 들려왔다.
"지금 여러 군데 통화를 했는데요. 여산휴게소에서 서울 가는 상행선 버스를 타실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기사분은 그 승객의 처지를 무시한 것이 아니고 여러 군데 전화를 하면서 해결책을 찾은 거였다.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사님의 말,
"잠시 후에 여산휴게소에서 내리시면 휴게소 관리자가 모시러 올 겁니다. 그분이 승용차로 상행선 휴게소까지 모셔다 드릴 거니까 꼭 그분을 기다리셔야 합니다. 위험하니까 절대로 혼자가 시려하면 안 됩니다"
휴게소에 도착하고 관리자의 전화번호와 상행선에서 만날 버스의 차량번호까지 적어주고 그 승객을 내려주면서 상황은 종료되었다. 버스 안에 다른 승객들 20여 명이 타고 있었지만 아무도 늦어지는 것에 불만을 표현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대답 없는 기사님이 야속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그래서인지 기사님의 대처가 더욱 존경스럽게 느껴져 마음속으로 박수를 쳐드리고 있었다.
나이 탓인지 나도 요즘 건망증이 심해졌다. 남들이 그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무슨 그런 일이 있냐면서 웃던, 통화하면서 전화기 찾기라던가. 가스불 켜놓고 외출하기, 자동차키를 문에 꽂아두고 찾던 일 등등 사소하지 않은 사건들이 나에게서도 벌어지고 있다. 두 달 전에는 열흘간 여행을 갔다가 왔는데 보일러가 작동해서 집안이 불덩이가 되어 있기도 했었다. 이러다가 정말 남편에게 아들이라고 부르는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된다.
조심한다고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요즘의 시스템으로는 기계가 다 알아서 체크해주기도 한다. 그분이 검표 후에 화장실 다녀오는 일만 없었어도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소한 실수들을 자주 하게 됨을 인정하고, 스스로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도 한번 더 확인하여 실수를 줄이며 살아야겠다.
그나저나 그분은 서울에 잘 가셨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