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을 베이다

'다행이다'라는 말의 힘

by 강현숙

손바닥을 베었다.

비 오는 어제 새벽에 작업을 하면서 우비가 걸리적거리기는 했지만, 간단한 작업에 우비를 벗었다 다시 입는 일이 귀찮아서 불편한대로 작업을 마치려고 했다.

칼을 들고 하는 작업이었는데 크게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우비와 박스가 걸리면서 살짝 튕기는 박스에 칼을 들고 있는 있는 오른손을 치었다. 그 순간 칼은 왼손 바닥을 긁고 말았다.


보통은 칼에 베이는 정도는 밴드를 붙이고 넘어갔는데 어제의 상처는 아주 깊었다.

"아야" 하는 순간에 피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피의 양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카터칼에는 살짝 녹까지 슬어있는 상태였다. 더 큰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곁에 보이는 면장갑으로 피를 막고 응급실로 갔다.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응급 소독을 하고 열 바늘을 꿰매었다.

2주일 동안은 상처에 물이 닿지 않게 하라고 한다.


집에 와서 무언가를 하려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붕대를 감은 손은 가렵기까지 하다.




'그나마 다행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길에서 강도를 만나 지갑이 들어있는 가방을 빼앗기고도 몸은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 하고, 눈길에 넘어져 발목을 삐었는데 꼬리뼈가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하고, 교통사고가 났는데 다친 사람이 없으니 다행이라 하고, 시험을 치르고 과락은 면하였으니 다행이라 하고, 오빠가 오진으로 인한 암수술을 받고도 암이 아니니까 다행이라 하고.........


그렇게 셀 수 없이 많은 경우에 다행이라는 말을 쓴다.

생각해 보면 '그나마 다행이다'라는 말을 하면 마음에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행이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불행해 질 수도 있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그대로 불행 속으로 빠져들 수 없기에 우리는 다행이라는 말로 위로를 하는 것은 아닐까?




어제 다친 순간에 '이런 지금 빨리 해야 되는데 다치면 어떡해!' 그러면서 피나는 손바닥을 면장갑으로 감싸고 남은 작업을 계속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나오는 피로 감싸고 있던 장갑이 빨갛게 물들어 오는 것을 보면서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남편을 불러 남은 뒷일을 부탁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한 손으로 운전을 하고 가면서 속이 상했다. 작업을 해서 납품을 하면 6천 원의 마진이 붙는 정도의 일이었고, 작업을 안 했다면 12,000원이 손해가 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정도의 일에 재수 없게 다쳤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났다.


도착한 응급실에서 코로나 환자를 막기 위한 열체크를 한다고 시간을 지체하고, 접수를 하는데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재차 묻는 말에도 짜증이 났다. 빨리 좀 해주면 좋으련만, 확인하는 시간에도 계속 흐르는 피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간호사가 "어느 손이에요?" 하고 물었다. "네, 왼손이요!"라고 답하는데 갑자기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손잡이인 내가 만약에 오른손을 다쳤다면 혼자 운전하고 병원까지 오는 일조차 못했을 것 같다. 그러면 남편이나 또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남은 일들 또한 지체되었을 테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누그러졌다. '다행이다'라는 말의 힘이 짜증스러웠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집에서도 간단한 가사는 한다. 한 손으로 세수를 하면서 조금 불편했지만 만약 오른손을 다쳤다면 더욱 불편했을 것이다. 그리고 상처가 아무는데 2주일이 아니고 그 이상 걸린다고 했으면 어쩔 뻔했는가? 한달도 아니고 3주일도 아니고, 2주일이면 상처가 나아서 붕대를 풀어도 된다 하니 참으로 다행이지 않은가?


다행이다.

다치고 나서 불행해지려는 마음을 편안하게 받아 들일수 있도록 바꾸어준 마법의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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