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 그지, 1

죽고 싶은 마음

by 강현숙

2020년 여름, 한전에서 최후 통지가 왔다. 말일까지 밀린 전기요금 35,540원을 납부하지 않으면 전기공급을 중단하겠다는 통지서였다. 홍복순 씨는 한숨이 나왔다. -무슨 사는 게 이래? 이까짓 몇만 원이 없어서 독촉을 받는 신세가 되다니...- 아픈 손목으로 지갑을 뒤졌다. 만 원짜리 몇 장이 보였다. 그 몇 장으로 이달 월세와 가스요금, 전기요금, 관리비까지 다 내려면 어림도 없다. 당장 식당 알바라도 가야 할 텐데 이놈의 손목 통증이 가라앉지를 않아서 설거지도 할 수가 없어 이틀째 쉬고 있는 중이다. 억지로 참고 식당에서 일하다가 엊그제 접시 몇 개를 떨어트려 깨었다. 주인은 -그게 얼마짜린데 조심하지 않고?- 하며 일당에서 접시값을 제하고 주면서 그만 나오라고 했다. 그날 일당만 제대로 받았어도 어떻게 이달은 넘어갔을 수도 있는데, 접시값 물어주는 바람에 또 월세나 가스요금이나, 관리비중에서 어딘가는 펑크를 내야 할 듯하다. 아픈 손목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한바탕 울었다. 홍복순 씨는 지금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한때의 판단을 잘못해 사람도 잃고 돈도 잃고 건강도 잃었다. 아니 그때는 그게 최선인 줄 알았다. 이미 뒤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되고서야 후회를 했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어쩌면 벌을 받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죽으려는 시도도 여러 번 했다.

한 번은 모아둔 수면제를 털어 넣었다. 그대로 세상을 떠나는 줄 알았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파 잠에서 깨어보니 이틀을 자고 난 뒤였다. 다섯 알의 수면제와 알 수 없는 알약들을 합쳐 20알 정도를 먹었는데 그 정도로 죄 많은 목숨을 끊는 건 어림없다는 듯 그렇게 깨어났다. 또 한 번은 자리에 누어 손목을 면도칼로 베었다. 분수처럼 뻗혀 나가는 피를 보며 영화에서 보던 자살한 사람을 사람들이 뒤늦게 발견하고 웅성거리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데 피가 금세 잦아들더니 조금씩 흐르다가 멈추었다. -어! 왜 그러지? 이렇게 베면 피가 다 빠져나와서 죽어야 되는 거 아니야? 더 베어야 되는데 칼이 덜 들어간 건가?- 복순 씨는 면도칼을 다시 들었다. 그런데 한 번은 베었던 용기가 두 번은 벨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응급실에 가서 손목에 붕대를 감고 오느라고 비싼 병원비만 썼다. 독한 소주도 몇 병을 마시고 쓰러져 보기도 했다. 며칠을 신물이 나오도록 토하고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는데도 죽지 않고 앓다가 일어났다.

60살 복순 씨는 한 칸짜리 반지하 원룸에서 또다시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20년 전의 남편에게 받은 집과 남편의 목숨값으로 받은 현금 4억 원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더 불려서 늙어 죽을 때 고스란히 아들에게 물려주리라 다짐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이러고도 살아있다는 사실이 더욱 견딜 수가 없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지금의 처지가 된 것이 너무 부끄럽다. 모든 상황들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되고 보니 살아있음이 의미가 없었다.

복순 씨는 문득 손바닥만 한 원룸을 둘러보았다. 작은 침대와 옷걸이 하나, 속옷과 양말이 담긴 직사각형의 플라스틱 바구니 몇 개가 전부였다. 다리 뻗고 누우면 벽이 닿을 정도의 공간이 다. 아직 한낮인데 방안은 어두컴컴했다. 복순 씨는 남편이 죽고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또한 자신을 위해서는 돈 주고 맛있는 거 사 먹은 적도 없었고 변변한 옷 한 벌 사지 않았다. 4억 원의 이자도, 월급을 받아도, 푸성귀를 팔아 푼돈이 들어와도, 포클레인 수익금이 들어와도 모두 은행으로 들어갔다. 그런 돈들이 어느 날 수억 원이 모여 있었다. 게다가 전원주택 붐을 타고 시골의 땅값도 올랐다. 새로 지은 복순 씨의 집과 텃밭을 팔고 싶으면 3억은 받아줄 거라며 부동산 하는 친구가 말을 했었다. 아들이 올 때가 아니면 몇 달이 지나도 방문을 한 번도 열지 않는 방이 있을 정도로 넓은 집에 살던 복순 씨였다. 복순 씨는 그때가 꿈이었는지 지금의 상황이 꿈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길이 보이지 않아, 더 이상 하늘을 보고 살 수가 없어, 주호아빠! 지금 나의 이런 상황이 당신이 내리는 형벌이야? 차라리 나 당신 곁에 데려가 주면 안 돼?-

복순 씨는 하늘에 있는 남편을 부르며 또다시 후회에 빠져 들었다. 그때 자신의 선택이 잘못 이었다는, 그때부터 모든 일이 잘못되었다는 후회였다.

-주호 아빠 미안해, 주호야! 엄마가 잘못했다. 내 아들 주호야!-

복순 씨는 통증이 시작되는 손목을 잡고 아들 이름을 부르며 방바닥에 쓰러졌다. 손에 들고 있던 한전 독촉장과 지갑에서 빠져나온 몇 장의 지폐가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