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죽음
자리보전을 하고 누워계신 시어머니를 위해서는 신식 화장실이 필요하고 중학생이 된 아들에게는 공부방이 필요하다며 남편은 새집을 지었다. 30여 가구가 사는 마을에 번듯한 2층집이 생겼다. 부부는 가슴이 벅차 끌어안고 울었다. 집들이 겸, 결혼식 때도 제대로 하지 못한 동네잔치를 벌였다. 성실한 복순 씨 부부를 동네 사람들은 천생연분이라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입주하고 한 달이 되었을 때였다. 남편은 새집을 짓기까지 모두 복순 씨의 복이 많은 덕분이라며 집을 복순 씨 에게 선물한다고 했다. 그리고 등기소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같이 가고 싶었지만 하필 그 시간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집구경 한다며 왔다. 남편은 -등기소는 혼자가도 되는 일이니 아주머니들 맛있는 것 좀 챙겨드리고 있어, 얼른 다녀올게- 하며 나갔다. 과일을 깎고 커피잔을 꺼내다가 잔을 놓쳤다. 싱크대 앞으로 박살 난 커피잔을 치우며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부자 되려고 액땜한 거라며 괜찮다고 했다. 방마다 열어보며 이쁘다고 수선을 떨다가 다시 커피를 타서 앉아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그 벨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아주머니들의 시선을 받으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에서 이장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복순 씨는 신발도 신지 않고 시내까지 달려갔다. 택시를 채근하며 읍내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응급실이라는 빨간 글씨가 보이는 곳으로 뛰어들어갔다. 의사들은 손을 놓고 있었고, 남편은 거친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버스에 받혀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겨우 남편의 피 묻은 손을 잡고 눈 좀 뜨라고 소리칠 때 남편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그대로 일어날 줄 알았다. -남편이 움직였어요. 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 얼른 좀 와보셔요- 다급하게 불렀다. 의사는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그때 남편의 손이 툭! 떨어지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의사는 남편의 피 묻은 몸에 하얀 시트를 덮었다. 복순 씨는 덮지 못하게 울며 매달렸다. 남편이 누워있는 침대는 서서히 옮겨지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염습을 한다고 사람들이 왔다. 피 묻은 옷을 벗기고 남편의 시신을 씻기던 중 한 명이 남편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며 등기부등본을 건네주었다. 그곳에는 홍복순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복순 씨는 등기부등본을 들고 하염없이 울었다.
사고를 낸 버스 측으로부터 4억 원의 보상금이 나왔다. 등기소에서 일을 마치고 길을 건너려고 서 있던 남편을 버스가 받았다고 했다. 운전 중에 자신도 모르게 핸들이 돌아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던 기사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남편이 죽고 백일도 안되어 시어머니도 돌아가셨다. 집은 갑자기 텅 빈 듯했다. 그동안 시동생과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었어도 갑자기 남편과 시어머니가 떠난 집은 그야말로 폐허 같았다. 부지런한 복순 씨는 집 주변으로 자라는 풀들을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런 형수를 바라보던 시동생은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식당에 방이 많으니 한 칸을 쓰면 된다고 했다. 시동생의 식당에서 아들과 함께 지내며 공짜밥을 먹을 수가 없었던 복순 씨는 동서일을 거들었다. 설거지도 하고 야채도 다듬고 김치도 담갔다. 한 달이 되었을 때 동서는 월급이라고 봉투를 주었다. 그렇게 시동생의 가게에서 일을 하기로 하고 집으로 왔다. 새집을 짓고 한 달 살고 떠나버린 남편에게 죄를 짓는 것만 같아 안방에서는 잠을 자지 않았다. 거실에 이불을 깔고 잤다. 중1인 아들은 복순 씨의 보호자가 되어 출퇴근 시간을 체크하고 학교가 파하면 시동생의 가게에 들러 복순 씨가 잘 있는지 확인하고 갔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 되면 다시 엄마를 마중 나와 손을 잡고 집으로 왔다.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데 엄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하는 아들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그런 아들을 위해서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 서서히 집 주변을 정리하며 산이 되어버린 텃밭의 풀을 뽑으며 절대로 한눈팔지 않고 아들만 보고 살리라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