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만 불쌍하지
복순은 식당과 집만 오갔다. 집에서는 텃밭이랑 가꾸어야 하니까 항상 작업복 차림이었고, 식당에선 궂은일을 해야 하니 또 작업복이었다. 머리는 길어서 거추장스러울 때쯤이면 집에서 가위로 잘랐다. 그리고 신발은 검정 고무신만 신고 다녔다. 남편 목숨값으로 4억을 받았다는 소문은 금세 퍼져 어느 날부터 사람들은 복순 씨를 4억 그지라고 불렀다. (그지는 거지의 사투리이다). 4억 원의 돈을 두고도 시동생 식당에서 일하며, 번듯한 옷 한 벌 안 사 입고, 미장원 한번 가지 않고, 싸구려 고무신이나 신고 산다고 쑤군대는 것이다. 그래도 복순 씨는 주변의 그런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남편의 목숨값으로, 보아줄 남편도 없는 자신의 몸에 치장하려고 그 돈을 쓸 수가 없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집 주변을 관리하고 텃밭의 작물을 가꾸고 출근하여 하루종일 설거지를 하고 집에 오면 온몸이 녹초가 되었다. 남편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쓰러져 잤다. 그렇게 서서히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며 하루하루가 갔다.
포클레인은 시동생이 기사를 두고 관리해 주기로 했다. 포클레인 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닦고 기름치며 좋아하던 형의 손때 묻은 포클레인을 팔아버릴 수가 없다고 했다. 형이 관리해 거의 새것 같은 포클레인을 팔려고 내놓으니 아무도 제값을 주려 하지 않는다며 차라리 기사 두고 운영해 보자고 했다. -기사 월급 주고도 한 사람 월급만큼은 나올 거예요- 특별히 우애가 좋았던 형제였다. 그런 시동생을 믿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포클레인기사의 월급은 일이 있는 날 일당으로 주면 된다. 운영비를 빼고도 복순 씨의 식당 월급보다는 더 될 것이라 했다.
식당에서는 월급으로 80만 원을 받았다. 시골살이에 보일러 기름이나 넣고 전기세만 내면 되니 생활비로는 넉넉했다. 그 돈에서 절반이상을 저축할 수 있었다. 틈틈이 텃밭에서 나오는 푸성귀들은 시동생 식당에서 팔아주고 남는 것은 또다시 주변식당에 팔아주니 그 돈도 쏠쏠했다. 아이도 용돈을 주면 돈이 구겨져 귀퉁이가 닳아 떨어질 때까지 갖고 다녔다. 간식이라도 사 먹으라고 해도 먹고 싶은 게 없다고 돈을 쓰지 않았다.
보상받은 돈 4억 원은 은행에 정기예금으로 넣었다. 그 이자로 받는 돈이 100여 만원이 되었다. 그 돈을 다시 적금을 들었다. 복순 씨 통장은 항문 없는 동물 비휴가 되었다.
복순 씨는 식당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포클레인 일을 관리하는 시동생과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시동생은 가게일을 도와주면서 포클레인 일이 있을 때마다 기사와 함께 현장에 나갔다. 형에게 들은 일머리를 기억하며 의뢰자들의 신임을 얻어갔다. 결재를 받으면 기사 일당을 주고 경비를 제하고 복순 씨의 통장으로 꼬박꼬박 입금해 주었다. 불어나는 복순 씨의 재정을 눈치챈 동서가 한마디 했다. -아주버님만 참 안 됐어요. 그렇게 열심히만 사시더니 겨우 살만 하니까...- 동서는 시동생의 눈짓에 하던 말을 다 못 했지만 다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건지 알 것 같았다.
시간은 흘러 아이가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다. 기계고등학교만 졸업하고 포클레인 일을 하겠다고 했다. 복순 씨는 아들이 인문계를 가서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시동생은 오히려 조카 생각이 기특하다며 기계공고 가는 것을 말리지 말라고 했다. -형은 어려서부터 포클레인 운전수가 되겠다고 했었어요. 포클레인은 형의 꿈이었다고요. 형의 꿈을 하루라도 빨리 이루도록 돕고 싶어서 그때 부족한 돈을 저도 빌려다가 드린 거예요. 그 꿈을 다 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조카가 그 일을 물려받으면 형도 좋아할 거예요.- 남편이 좋아할 거라는 말에 두말도 하지 못하고 아들을 기계공고에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