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전조
아들이 다닐 기계공고는 그래도 성적이 상위권의 학생들이 가는 도청소재지가 있는 대전에 있었다. 학교까지 가려면 읍내 버스정류장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가서 그곳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대전터미널에 내려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복순 씨는 학교 주변에 하숙집을 얻어 주었다. 돈을 아끼려고 자취를 하겠다는 아들을 제때 끼니라도 잘 챙겨 먹으라고 하숙집으로 들어가라 했다. 인문계를 가라는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미안했는지 하숙집을 얻는 것은 복순 씨 말을 따라 주었다. 교복과 책가방과 교과서등을 챙기고 하숙집 밥이 입에 안 맞으면 먹으라고 반찬 몇 가지를 챙기니 짐이 많아졌다. 복순 씨는 짐을 들어다 주기로 하고 간 김에 입학식까지 보고 오기로 했다. 그런데 입고 갈 옷이 없었다. 동서에게 옷을 빌려달라고 했다. 동서는 -아이고 형님 아들 입학식에 남의 옷 빌려 입고 가면 주호가 창피하죠. 형님 돈도 많은데 이럴 때 한벌 사 입어요.- 하며 자기 단골집으로 끌고 갔다. 정장과 구두를 골라주고 미장원에 데려가 머리손질도 하게 했다. 남편이 떠나고 3년 만에 새 옷을 사고 머리를 한 것이다. 어색했지만 아들이 보기 좋다고 하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엄마! 화장도 하면 이쁠 것 같아요.- 무뚝뚝한 줄만 알았던 아들이 화장도 해보라는 말에 복순 씨는 화장품도 샀다.
그렇게 아들의 입학식까지 보고 돌아와 정장은 장롱 속에 걸렸고 구두는 신발장으로 들어갔다. 경대위에 화장품도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다시 식당에서 설거지를 했다. 어느 날 시동생이 포클레인 기사를 데리고 식사를 하러 왔다. 몇 번 얼굴을 봤지만 이름도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그저 시동생과 함께 포클레인을 운전해 주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나이는 복순 씨보다 몇 살 많아 보였다. 그동안 성실하게 시동생하고 아무런 불화 없이 일을 잘해 준다는 말을 들어서 그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상을 차리는데 맛있는 것을 주고 싶었다. 김치를 새로 꺼내고 나물도 새로 무쳤다. 동서는 -형님 누구 오셨다고 특별 대우 하시는 거예요?- 하며 호호 웃었다. 그저 내 돈 벌어주는 사람이라 고마운 마음에 그런 건데 괜히 얼굴이 뻘게졌다. 동서를 나무라고 설거지를 했다. -형님! 저분도 상처한 거 아세요?- 동서는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주방에서 얼핏 내다보다가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괜히 가슴이 뜨끔했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가기 전까지 매일 밤마다 데리러 와서 퇴근시간이 적적하지 않았었는데 그즈음에는 혼자 다니는 길이 쓸쓸하기도 하고 달이 없는 밤에는 무섭기도 했다. 작은 차라도 한대 사서 타고 다니라는 동서의 말은 귓등으로 들었다.
-그때 차를 샀으면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까?-
그날 일이 다 끝날 때까지 식사를 하던 그 남자는 복순 씨가 퇴근한다고 나서자 자기차로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남자랑 둘이 한차를 탄다는 것이 어색해서 괜찮다며 서둘러 식당문을 나섰다. 동서랑 시동생이 따라 나오며 -믿을만한 분이니까 타고 가셔요. 날씨도 추운데...- 했다. 그날은 달도 없었다. 깜깜한 길을 걷고 있는데 뒤에서 승용차의 불빛이 따라오다 복순 씨 옆에 세웠다. 차창을 열고 -춥네요. 모셔다 드릴게요-했다. -그래 우리 기사잖아 차 한번 타는 건데...- 생각하니 용기가 났다. 차 안에선 부드러운 방향제냄새가 났다. 잔잔한 음악도 흐르고 있었다. 포클레인을 운전하며 거칠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남자의 차는 깨끗했다. 문득 설거지 하느라 몸에 밴 음식냄새가 신경이 쓰였다. 까만색 고무신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편하게 하세요, 전 여자들 향수냄새보다 땀 냄새가 더 좋아요.- 걸어서 오면 40분쯤 걸리는 집을 10여분 만에 데려다주었다. 캄캄한 집에 불을 켜고 들어오려니 썰렁했다. 아들을 하숙집으로 보내고도 그동안은 느끼지 못했던 썰렁함이었다.
남자는 종종 시동생의 식당에 왔다. 시동생과 함께 오기도 하고 친구들과 오기도 했다. 동창들 모임도 시동생의 식당에서 했다. 그 남자를 동서는 항상 괜찮은 사람이라고 했다. 복순 씨는 동서의 매출이 올라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모임이 끝나면 복순 씨를 태워다 준다며 기다렸다. 여름이 지나고 다시 겨울이 되었다. 방학을 맞은 주호가 집에 왔다. 퇴근시간에 맞추어 마중 나오겠다고 하는 걸 -그동안 혼자 다녀보니까 다닐만해 그냥 집에서 쉬어- 하며 마중 나오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남자의 차를 타고 퇴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