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 그지, 11

사랑의 열병

by 강현숙

그날, 귀걸이를 끝내 돌려주지 못하고 집에 온 날 차에서 내리는 걸 주호가 현관에서 보고 있었다. 현관 센서등이 켜졌다 꺼진 것은 주호가 엄마를 마중 나오다가 남자의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그냥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주호의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주호는 하숙집에 가서 방학숙제를 한다며 대전으로 갔다.


아들의 태도에 가슴이 무거워진 복순 씨는 봉수 씨의 청혼 같은 말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를 알았다. 퇴근하는 복순 씨를 기다리고 있던 봉수 씨를 만나 자기는 아들만 바라보며 살기로 했다고 말하고 귀걸이를 살짝 차에 두고 내렸다. 다음날부터 봉수 씨는 데리러 오지 않았다. 아무런 감정 없이 차만 얻어 타던 그때부터 거의 1년간 복순 씨의 퇴근길을 함께 해 주었던 사람이었다. 혼자 걸어오는 퇴근길이 허전하고 발걸음이 무거웠다. 지나가는 자동차의 불빛이 보이면 혹시 봉수 씨가 아닐까 기대하는 마음과 그런 상상을 질타하는 생각이 겹쳐 일어났다. 그렇게 열흘쯤 지났다.


밤새 잠이 안 와 뒤척이다 선잠을 자고 깨었는데 몸이 불덩이였다. 식은땀이 나고 오한이 일었다. 타이레놀 한 알과 쌍화탕을 데워 마시고 겨우 다시 잠이 들었다. 다음날 동서에게 전화해 쉰다고 말하고 동네 의원에 가서 밤의 증세를 말하고 진찰을 받았다. 의사는 과로해서 그런 것 같다며 약 먹고 쉬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처방약 중에는 수면제도 들었는지 약만 먹으면 졸렸다. 그리고 잠이 깨면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며칠을 결근하자 시동생부부가 왔다.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들을 맞았다. -형님, 이게 무슨 일이에요?- 하며 어서 읍내 병원으로 가보자며 수선을 떨었다. 오한이 나는 몸에 코트를 걸치고 병원에 갔다. 의사는 검사를 해보자며 며칠 입원하라고 했다. 입원해서 링거를 꽂고 있으면서도 열이 났다가 오한이 들었다가 하여 주체를 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이것저것 검사를 했다. 특별한 질병 소견은 보이지 않는다면서 계속 증세가 가라앉지 않으면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저녁에 시동생 부부와 봉수 씨가 함께 왔다. 동서가 봉수 씨를 부른 것 같았다. 봉수 씨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에 울컥 눈물이 났다. 동서는 설거지도 안 하고 왔다면서 시동생을 끌고 가버렸다. 봉수 씨는 복순 씨 손을 잡았다. 그 손을 뿌리칠 용기가 나지 않아 눈물만 흘렸다. -혼자 살면 아플 때가 제일 서럽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다였다. 어느새 약 기운이 돌았는지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시 깨었을 때는 새벽이었다. 봉수 씨는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컨디션이 좋았다. 열과 오한이 번갈아들던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병원 아침식사가 들어와서 몸을 일으킬 때 봉수 씨가 죽을 사들고 왔다. 환자는 죽을 먹어야 한다며 복순 씨 앞에 죽을 펼쳐주고 병원밥은 봉수 씨가 먹었다. 그때 그 감정이 남들이 말하는 행복이라는 것을 느꼈다.


의사는 간단하게 진찰을 하더니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상사병은 애들만 걸리는 줄 알았는데...- 하면서 나갔다. 복순 씨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봉수 씨를 쳐다보았다. - 아무래도 복순 씨 병에는 제가 약이라는 말 같죠?- 하며 웃었다. 그 얼굴이 너무 편하고 푸근해 보였다. 얼굴이 벌게진 복순 씨는 퇴원 준비를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봉수 씨는 복순 씨가 두고 갔던 귀걸이를 건네주었다. 복순 씨는 봉수 씨 앞에서 귀걸이를 꺼내 바라보다 귀에 걸었다. 그 후 그 귀걸이는 사고가 나기 전까지 한번도 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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