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 그지. 10

주호의 고민

by 강현숙


다음날 주호는 첫차로 하숙집으로 간다며 집을 나왔다. 엄마 보기가 불편해서 둘러대고 나왔지만 하숙집으로 갈 마음은 없었다. 중학교 동창들 몇 명을 불러내어 겨울바다로 놀러 갔다. 여관방을 얻고 술을 사고 안주 겸 간식 겸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사서 차가운 모래사장에 둘러앉아 마셨다. 소주병과 맥주캔들이 모레 위를 아무렇게나 뒹굴기 시작하더니 곧 아이들도 아무렇게나 뒹굴었다.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질렀다. 연거푸 들이킨 독한 소주도 어제 엄마가 남자의 차에서 내리던 모습을 지우지 못했다. 주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너무 불쌍했다. 열심히 일해서 벌어진 돈을 모두 엄마에게 드렸다. 마지막 순간에도 교통사고로 온몸이 다 부서져 살갗을 꿰매고 장례를 치렀다. 그 대가로 엄마에게 4억이라는 목돈을 받게 했다. 다행히도 엄마가 그 돈을 함부로 쓰지 않아서 그동안은 참을 수 있었다. 자신도 그 돈이 아버지의 목숨값이라는 생각에 함부로 할 수가 없어 엄마가 용돈을 주어도, 친구들이 빵이라도 사 먹자 할 때도, 주머니에서 돈이 녹아나도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너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다.


-왜 아버지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기만 했을까? 그렇게 자신의 몸이 부서져 세상을 떠나면서도 그 많은 보상금을 받게 했을까? 만약에 그 돈이 없어 엄마가 가난했다면 남자를 만나지 않았을까? 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이 어쩌면 그 돈 때문일지도 몰라, 그 돈이 없다면, 그 돈만 아니라면, 엄마랑 평생 아버지만 그리워하며 살지도 몰라-

-엄마를 잡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엄마가 나를 버리는 게 두려워서 엄마를 따라다녔던 것이 아니다. 불쌍한 아버지를 영영 떠날까 봐 지켰던 것이다. 그런데 결국 엄마는 서서히 아버지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어떡하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아버지에게서 받은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하라는 작은 아버지의 말을 믿어도 될까? 그걸로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까? 정말 떠나는 엄마보다 핏줄인 작은 아버지가 더 믿을 만한 걸까?-

혼란스러운 머리를 감싸고 있을 때 소리 지르고 뒹굴던 친구들이 춥다며 방으로 가자고 일어섰다. 눈가를 맨손으로 쓱쓱 문지르며 바라보는 주호를 일으켜 어깨동무를 하고 방으로 이끌었다. 방에서 다시 벌어진 술판은 한 명씩 필름이 끊겨 잠들어버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다음날 한낮이 되어서야 잠이 깬 친구들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대전으로 올라왔다.

하숙집에 틀어박혀 고민에 빠져있던 주호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책을 펼쳐봐도 몇 줄도 읽지 못하고 딴생각에 잠기곤 했다. 집에 한번 다녀오기로 했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닐듯하니 어떤 결론이든 내려야 공부를 해도 할 것 같았다. 주호는 곧바로 작은엄마의 식당으로 갔다. 설거지를 하던 엄마가 반갑게 뛰어나왔다. 주호는 엄마의 그 모습이 부담스러워 고개만 까딱하고 작은 아버지와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광철은 주호를 데리고 손님방 한 칸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 복순 씨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주방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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