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감정
평소와 같은 시각에 복순 씨는 퇴근을 하여 걷다가 봉수 씨 차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아마도 일부러 기다린 느낌이 들었다. 어제 아들 앞에 체면을 깎이게 만든 책망을 하리라 마음먹고 가까이 갔을 때, 봉수 씨는 차문을 열어주며 반겼다. 복순 씨는 심경이 복잡했다. 귀걸이를 돌려주고 앞으로는 사적인 관심은 갖지 말라고 하려던 생각이 남자의 친절에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것을 느꼈다. 봉수 씨는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웠다. 복순 씨의 손이 주머니 속의 귀걸이를 꺼내려는 순간 봉수 씨가 말을 했다.
"복순 씨 어제는 많이 놀라셨죠? 주호랑 함께 있는데 그 자리 끼워 달랄 수는 없고 또 모른 체하고 넘어갈 수도 없어서 겨우 생각한 것이 꽃다발 보내는 것이었네요. 그 귀걸이는 복순 씨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직접 고른 거예요. 그동안 남편에 대한 도리는 할 만큼 했다고 봅니다. 요즘에 복순 씨처럼 사별한 남편을 위해서 그 정도로 절제하고 사는 여자들 거의 없어요. 이제 귀걸이 정도는 달고 다녀도 된다고 생각해요."
복순 씨는 남자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냥 지금처럼 가끔 만나는 건데, 좋은 사람인데, 주호한테 표시 내지 말고 이렇게 살면 안 될까?- 귀걸이를 돌려주면 점잖은 남자가 거절로 받아들이고 다시는 자신을 보러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 귀걸이를 돌려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꺼내지도 못하고 넣지도 못하고 주머니 속의 귀걸이를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나 복순 씨에 대한 감정 진지하게 생각해 봤어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서로 손잡아 줄 사람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우리 함께 주호랑 범영이, 범기 잘 키우며 남은 생 함께 합시다. "
진지한 봉수 씨의 말에 복순 씨는 가슴이 떨려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작은 아버지의 중매로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생각해 보겠다며 집에 내려달라고 했다.
주호가 2층에 있을 텐데 집안의 불빛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 자나 생각하며 차에서 내렸다. 끝내 돌려주지 못한 귀걸이를 손에 쥐고 차문을 닫고 집을 향해 돌아선 순간 현관의 센서등이 켜졌다 꺼지는 것을 보았다. -현관에 누가 있었나?- 열쇠로 현관문을 열었다. 주호의 신발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가지런히 놓고 거실불을 켜고 주호야! 하고 부르며 2층으로 올라갔다. 주호는 등을 보이며 누워 있었다. 안방으로 내려와 세수를 하고 침대를 바라보았다. 새 침대를 사고 한 달 만에 떠나버린 남편 생각에 침대를 사용하지 못하던 복순 씨는 어느 순간부터 남편과 함께 쓰던 침대라는 감정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동서는 침대라도 바꾸라고 말했지만 차라리 바닥에서 잘 지언정 남편의 체취가 남아 있는 침대를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또 그러려면 돈이 들어갈 것이 아깝기도 했다. 그렇게 무심히 잠자던 침대에서 그날따라 남편의 체취가 풍기는 것 같았다. 죽은 남편과 새로이 구혼하는 남자의 생각에 뒤척이다. 바닥에 이불을 펴고서야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