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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Jul 26. 2023

4억 그지, 16

주호의 결심

주호는 졸업식이 있는 대강당 입구에서 교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아빠가 오신다고 했기에 자기를 못 찾을 까봐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교내 스피커에선 -곧 졸업식이 진행될 예정이니 학생들과 학부모님께서는 모두 강당의 지정석에 모여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이 반복되어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호는 거의 사람들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교문을 바라보다 강당으로 갔다. 절반의 친구들은 부모님들이 오셨고, 절반의 친구들은 주호와 같이 한 명의 축하객도 없이 졸업식을 맞이했다. 그러나 주호만큼 마음이 허전한 아이는 없어 보였다.     


학교생활 3년 동안 하늘에서 보고 계실 아빠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자청하여 선도부장을 하며 어른들이 걱정할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그 3년의 시간은 주호에게 극기의 시간이었다. 엄마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세상을 뒤집어 놓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도 떠나는 시점에서 자신 때문에 아빠를 더욱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참았다. 그리고 죽을 듯이 공부했다. 3학년 2학기때 친구들이 현장실습을 간다며 책가방을 집어던질 때도 주호는 책과 씨름하며 자격증을 두 개나 땄다. 오늘 졸업식에서 주호는 2개의 상장을 받기로 되어있었다. 우등상과 모범상이었다. 그 모습을 작은 아버지께 보여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졸업식이 다 끝나도록 작은 아버지는 물론 누구도 주호를 보러 오지 않았다. 상장도 졸업장도 그 자체로는 주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빠를 그리워하며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탔다. 세 번을 갈아타고 도착한 집은 너무나 썰렁했다. 가방을 던져 놓고 아버지가 계신 선산으로 갔다. 아빠의 무덤 앞에 엎드려 하염없이 울며 다짐했다. -아빠! 아빠가 손수 지은 집, 아빠가 선물처럼 남기고 가신 돈, 다 이루지 못한 아빠의 꿈, 제가 모두 지킬게요. 아빠가 끝을 보지 못한 포클레인 사업도 제가 우리나라 최대의 업체로 키워 놓을게요. 아빠를 버리고 떠난 엄마는 이제 잊을 겁니다. 죽어라 공부했듯이 죽도록 일 한번 해 볼게요. 아빠! 저 지켜 주실 거죠?- 주호가 썰렁함을 느끼며 일어설 때는 이미 주변이 캄캄해져 있었다.  

   

정오가 지나도록 잠을 자던 주호는 시장기를 느끼며 잠에서 깨었다. 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광철을 만나 졸업했다고 인사도 할 겸 집을 나섰다. 찾아간 사무실에서 낯선 아저씨들에게 이미 몇 개월 전에 사무실을 인수했고 포클레인은 하천변에 세워둔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주호는 아빠의 분신 같은 포클레인을 보려고 하천 주차장으로 갔다. 포클레인은 쓰레기로 덮여있고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다. 2학년이 시작되기 전에 보았던 것과는 너무도 다르게 폐차처럼 보였다. 어찌 된 일인지 작은아버지의 말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해는 졌지만 작은 엄마가 하는 식당은 보통 열 시가 넘어야 끝나기 때문에 그때 찾아가도 늦은 시간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작은집의 식당간판이 보이는 곳에서 고급승용차 한 대가 지나쳐 갔다. 작은 아버지 차는 소나타였음을 기억하는 주호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 왔다. 식당 뒤쪽으로 내실로 통하는 문이 있어 그곳으로 가서 벨을 눌렀다. 그때 진숙은 내실 뒷문의 벨소리를 알아듣고 깜짝 놀랐다. 그곳은 가족과 주호만 아는 벨이었다. 분명 주호가 온 것이라고 느낀 진숙은 올 것이 왔구나 싶은 마음에 가슴이 벌벌 떨렸다. 그래도 주호를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문을 열어주고 반가운 표정으로 주호를 맞아들였다. 아직 손님이 있으니 마무리하고 오겠다며 방안에 혼자 두고 나와 광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주호가 와있어- 진숙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주호는 자동차 불빛이 방안을 비추는 것을 보다가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아까 입구에서 만났던 고급 승용차였다. 운전석 문이 열리더니 작은 아버지가 내렸다. 주호는 작은 아버지의 형편이 좋아진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식당 출입문으로 들어가는 작은 아버지를 보며 졸업식에 왜 안 오셨는지 물어볼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금방 안으로 들어오실 줄 알았던 작은 아버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 후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승용차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주방장이랑 홀이모들도 인사하고 가는 걸 보니 장사도 끝난 것 같았다. 주호는 식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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