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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Jul 26. 2023

4억 그지. 17

불안한 기운


복순 씨는 사무실 문 앞에 섰다. 위쪽으로 여섯 개의 칸을 나누어 유리를 끼우고 아래쪽엔 판자를 끼운 문 네 짝이 달려 있는 미닫이 문이었다. 한 번도 닦이지 않은 듯 유리는 탁해지고 틈새는 때가 절고 금이 간 유리에는 테이프로 덕지덕지 고정을 해 놓았다. 손잡이를 잡으려니 새까만 기름때가 손에 묻어 나올 듯했다. 옛날 주호 아빠가 처음 사무실을 오픈하던 날, 저 미닫이 문을 닦고 또 닦으며 그 문으로 손님들이 밀려 들어오기를 기도했다. 팥떡을 돌리며 고개가 땅에 닿도록 인사하며 주변을 돌았다. 남편은 문을 열면 첫눈에 보이는 위치에 심성철이라고 이름 쓰인 사업자등록증과 포클레인기사 면허증을 걸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작은 책상을 놓았다. 그 책상에는 남편보다 주호가 앉아 노는 시간이 더 많았었다.    

 

옛 생각을 하던 복순 씨는 미닫이를 살짝 열었다. 문이 삐걱 소리를 냈다.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 있던 두 남자가 -아이 씨, 또 뭐요?- 하며 쳐다보았다. 심광철 씨 계시냐고 물었다. 두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광철이를 왜 여기서 찾냐고 반문했다. 복순 씨는 설명했다. 여기는 우리 아들 심주호 사무실이고 심광철 씨는 아들의 후견인 같은 사람이라고, 지금 주호 엄마가 찾아왔다고 전해 달라고 했다. 남자들은 비웃으며 말했다. -참내, 좀 전엔 대가리 피도 안 마른 놈이 와서 삼촌 찾아내라 하더니, 여긴 내가 인수한 지 몇 달 뒜수다. 저기 사업자등록증 안 보이슈?- 남자가 가리키는 곳으로 눈길을 돌린 복순 씨는 그곳에 적힌 이름이 심주호가 아니란 걸 확인했다. 삼촌을 찾았다면 분명히 주호인데 그럼 주호도 모르게 사무실을 옮겼다는 건가? 동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송화음이 몇 번 들리더니 동서가 받아 -형님 지금 좀 바빠요. 이따가 전화드릴게요.- 하며 끊었다. 복순 씨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당장 식당으로 쫓아가고 싶었지만 봉수 씨가 퇴근할 시간이 되었기에 그냥 집으로 왔다. 복순 씨는 봉수에게 좀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만약에 삼촌이 주호돈 가지고 무슨 일을 꾸몄으면 어쩌죠?"

"설마 그 돈이 어떤 돈인데? 광철이가 그 정도는 아니겠지? 별일 없을 거야. 한동안 내가 바빠서 신경을 못 썼는데 내가 광철이를 한번 만나볼게, 너무 걱정하지 마"

"한 번도 그런 적 없는 동서가 제 전화를 바쁘다고 그냥 끊었어요.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아요. 저도 같이 가요."

"그래, 그럼 점심시간 끝나고 데리러 올게"     


봉수 씨는 별일 없을 거라고 복순을 달래고 왔지만 느낌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광철과 같이 일할 때 복순에게 말하지 말라면서 일당에 웃돈 붙여주는 것을 받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만약에 -그때 형님도 같이 썼잖아요?-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을 것 같고 복순과 주호를 볼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더니...- 봉수는 입맛을 다시며 현장으로 갔다. 오늘은 좀 일찍 마치고 광철의 식당으로 가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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