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5살의 대학 새내기

교양있는 아줌마가 되기 위한 첫걸음을 떼다

by 강현숙

2008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미리 보아왔던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로 칭한다.) 1학년 입학을 하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글쓰기의 꿈을 품고 있던 나는 국어국문학과를 가려고 하였었다. 국문학과가 안되면 일본학과도 제2지망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류를 준비하여 방송대 대전, 충남지역대학으로 접수를 하기 위해 방문했다.

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증과, 과목별 성적표를 가지고 방문을 하여 상담을 하며 접수를 기다렸다.

상담과정에서 국문학과와 일본학과는 지원자가 많아 혹시 탈락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아쉬웠지만 이번이 아니면 또다시 언제 대학이라는 곳을 다닐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 혹시 제 나이에 맞게 공부할 수 있는 학과를 소개해 주시면 안 될까요?"


라고 묻는 나에게 상담을 맡았던 그분은 '문화교양학과'를 소개해 주었다.

자격증 취득의 부담이 없는 국내 유일의 학과이며 세상을 두루두루 배울 수 있는 학과라고 했다.

당시에 문화교양학과의 역사는 8년 되었으며 점점 인기가 오르고 있는 학과였다. '문화교양학과'에서 공부할 수 있는 과목들을 살펴보니 충분히 좋아할 만한 과목들이었다.


대중문화의 이해, 문화와 교양, 영화로 생각하기, 고전 함께 읽기, 독서의 즐거움,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미술의 이해와 감상, 유럽 바로 알기, 세계의 풍속과 문화, 인물로 본 문화, 음악의 이해와 감상, 신화의 세계, 생태적 삶을 찾아서, 동서양 문학고전 산책, 문화산업과 문화기획, 여성의 삶과 문화, 근대화와 동서양, 전통사회의 생활문화, 생명공학과 인간의 미래, 동양철학산책, 열린사회와 21세기, 공연예술의 이해와 감상, 행복 에이르는 지혜, 세계의 도시와 건축, 근현 대속의 한국, 정보사회와 디지털 문화, 한국문화와 유물유적, 문화비평과 미학, 제3세계의 역사와 문화, 세계의 종교,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4년 동안 배웠던 과목들인데 처음에는 이과정을 공부하면 문화적인 교양 있는 아줌마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파에 시달리며 40살이 넘도록 거칠게 살아온 나를 고상하게 다듬어줄 과목들처럼 보였다. 문화, 교양, 철학, 신화, 독서라는 단어들이 내게 '여기로 와' 하면서 손짓하듯이 보였다.

국문학과나 일본학과의 과목들보다 훨씬 인간적으로 보였다.


'그렇지 이 나이에 공부하는데 자격증을 따서 무얼 할 건 아니잖아,
문화를 알고, 역사를 배우고,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그래서 내 성품이 고상해 질수 있다면, 그만큼만 공부하면 되는 거지, 떨어질지도 모르는 곳에 지원해서 이마저도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냥 문화교양학과로 가자'


그렇게 잠깐의 시간에 결정하고 온 것이 나의 방송대 생활의 시작이었으며 문화교양학과의 선택은 내 인생 중에 있었던 어떠한 결정보다도 탁월했음을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다.




얼마 후 방송대로부터 합격소식을 받고 등록금을 내야 하는 기한이 다가오고 있었다.

남편에게 첫 등록금을 받고 싶어서 이야기를 하니 뾰로통하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고 그 나이에 무슨 대학을 가겠다고 하느냐고 그냥 심심하면 다른 소일거리를 찾아보라고 하였다. 내가 꼭 하고 싶었던 것이 대학생활이었다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해보고 싶다고 팽팽하게 대립했다.

결국 남편은 등록금과 수업료, 교재비까지 다 합쳐서 50만 원밖에 안 되는 돈을 내주며 투덜댔다.


방송대는 장학금제도도 잘되어있다.

일반대학에 비하면 등록금 자체가 저렴하니 장학금 또한 10프로 밖에 안 되는 금액이지만, 액수를 떠나서 장학금을 받는다는 것은 꽤나 명예로운 일이다. 투덜대는 남편을 보면서 이후에는 모든 학비를 장학금으로 충당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결심했던 대로 이후 7학기의 학비는 모두 장학금으로 충당했다.


드디어 고대하던 입학일이 되었다.

방송대는 입학식에 참석하지 않아도 학생으로서의 신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평생의 소원이던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입학식을 빠질 수는 없었다.

어떤 사람들이 공부하러 오는지 분위기는 어떠한지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입학식 모습 : 학부형처럼 보이는 저분들이 학생이다.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도착한 입학식장에는 입구부터 각과의 신편입생 환영의 문구를 적은 현수막이 즐비하게 걸려 있었다. 학교 주변에는 꽃을 파는 상인들도 보였고 각과 선배님들이 일렬로 서서 신편입생들을 열렬히 환영해 주고 있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나는 신입생의 새내기 기분을 만끽하며 입학식에 참석하기를 너무 잘했다고 생각했다.


오티 모습: 3학년 때 방송대 송찬섭 교수님과 지역 학생회장이던 나, 2011년 신입생 환영회에서


환영의 문구와 장식들

입학식장에서 미리 대강의 안내는 받았지만 자세한 안내는 학과 OT에서 다시 안내해 줄 거라며 OT 참석을 권유했다. 오티는 대학생들만의 행사인 것 같아 대학생이 된 나는 권유하지 않아도 꼭 참석해 오티의 분위기를 누려보고 싶었다. 그날 OT에서 난 과목 외에 또 다른 과제를 하나 더 받게 된다. 그건 학과목에서는 배울 수 없는, 사람을 알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며, 리더로서의 자질을 시험당하는, 그리고 리더십을 키울 수 있는 그런 과제였다.


나는 방송대 대전충남 문화교양학과 1학년 과대표가 되었다.


나의 1학년 과대표는 사실 누가 뽑아준 것은 아니었다.

모두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누가 어떤 사람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교수님과 선배들의 인사와 소개가 있은 후 신입생들의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 것이 다였다.

그날 OT에 참석한 사람들은 남녀 모두 평균 연령이 40대 정도라는 것만 알았다.


문화교양학과 (이하 '문 교과'라고 칭하 기로 한다.) 학회장이신 선배님의 요청에 따라 1학년 동안 과를 대표해서 일해줄 과대표를 뽑아야 한다는 말에 다들 침묵하고 있었다. 지체되는 시간에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분도 있었다.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무심히 앞사람, 옆사람에게 (과대표 한번 해보시지요?)하고 작은 소리로 말하는 것이 다였다.


학회장은 시간이 더 이상 지체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느꼈는지 스스로 손을 들거나, 추전을 해달라고 하였다. 한두 사람이 다시 앞사람, 뒷사람에게 '손 한번 들어보세요'라고 하면 서로가 못하겠다고 하였다.

답답한 나는 과대표의 역할이 무어냐고 물었고 답변은 학교와, 학과, 학생들 간의 소식을 전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 정도면 공부하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가 해보겠습니다" 하고 손을 들었다. 그때 신입생들은 모두 나를 쳐다보았고, 선배님들과 특별히 참석하신 교수님들은 박수로서 1학년 과대표 선출을 환영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대학생활은 아주 재미있고 영광스러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뒷이야기는 매거진 '슬기로운 방송대 생활'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방송대에서 맡았던 임원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