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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 해설사 자격증

방송대가 있기에 가능했던 나의 첫 번째 자격증

by 강현숙

나는 방송대에 다니면서 여러 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내가 다닌 학과(방송대 문화교양학과)는 우리나라 모든 대학 중 유일하게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고도 졸업이 가능한 학과이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세상은 어떻게 살아야 인간적이고 멋있는 삶인지, 사람이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학과 이기도 하다.


우리 과를 다닌 분들은 그래서인지 다들 멋진 진로를 정하고 지금도 그 길을 걷고 있는 분들이 많다.


2009년 방송대 1학년 과정을 공부하면서 학교에서 내건 공고 하나를 보았다.

'문화유산 해설사' 양성과정에 학생들을 모집하는 공고였다.


문화유산 해설사는 문화재가 있는 곳에서 문화재와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을 활용하여 문화재를 해석하고 설명을 하는 직업이다. 교육을 받기 이전에 한두 번 해설을 들은 기억이 있고, 해설을 들으면서 내가 갔던 관광지에 대하여 특별한 마음을 담아왔었다. 또한 해설하는 그분이 아주 멋진 사람으로 보였었다. 할 수 있다면 나도 해보고 싶은 직업이라고 생각했었다. 관심을 보이는 나에게 문화유산 해설사는 직업이 아닌 자원봉사의 차원에서 하는 일이라고 해설사분은 설명했었다. 그래서 더 멋져 보였다. 직업으로 하는 일이라면 자부심보다는 월급을 쫒는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다를 것이 없는, 돈 버는 일이 될 것이니 그런 일이라면 그저 직업을 바꾸는 정도의 의미밖에 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자기만의 지식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면서 무료로 일할수 있다면 자신에게 풍족한 자부심을 심어줄 것 같았다.


주저하지 않고 바로 접수를 했다.

수강료는 무료였으나 한 달 이내에 모든 과정을 마쳐야 하는 빠듯한 일정에 조금은 부담이되기도 한 과정이었다. 그래도 관심이 있는 학우들이 많아서 접수순으로 모집을 하는데 정원을 넘기면 그나마 교육받을 기회도 탈락되는 것이었다. 바로 접수한 관계로 정원 안에 들어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이론과 답사 평가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았다.


수료 후에는 내가 사는 연기군에는 문화유산이 어느 것들이 있는지를 찾으며 답사를 다녔다.

그러던 중 또다시 아주 우연히 연기문화원에서 걸어놓은 현수막을 보게 된다. 연기군 조치원읍에 소재하고 있는 문화원에 평생교육의 일환으로 몇 가지 과정들이 개설되어 있는데 '문화유산 해설사' 과정이 또 있었다. 그 과정의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문구가 쓰여진 현수막 이었다. 조치원에 살면서 문화원이라는 곳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었는데, 문화유산 해설사 과정을 개강한다고 하니 몹시도 반가웠다. 그래서 찾아가 등록을 했고 공부를 했다.


이론교육은 학교에서 배운 문화유산의 의미와, 백제를 아우르는 과정이 비슷했다. 다른 것은 지역 관내에 있는 문화유산들을 답사하는 과정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이미 연기군에도 문화유산을 해설하는 정식 해설사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다. 문화원의 해설사 과정을 들으면서 기회가 되면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그렇게 충실하게 모든 과정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았다. 문화유산 해설에 관련한 수료증이 2개가 되었다.


해가 바뀌고 2학년이 되어 또다시 바쁜 일정들을 소화하고 있던 어느 날, 문화원 국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연기군청에서 정식으로 해설사를 모집하고 있는데 추천해 두었으니 관심 있으면 지원해 보라고 하였다.

이 정도면 문화유산 해설사는 나에게 운명 같은 것이었다. 마다할 일이 없었다. 국장님이 소개한 담당자를 만나 지원 의사를 밝혔고, 담당자는 20여 일간의 교육과정 이수 후 시험을 통과해야 정식 해설사가 된다는 설명을 하였다. 정확한 명칭은 '문화관광해설사'였다. 예전에 문화유산만을 해설했다면 관광산업이 발달하고 있는 환경에 맞추어 해당 지역의 관광상품까지도 해설할 수 있는 해설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내가 지원했던 2010년도에는 충남 연기군에서 2명의 해설사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나와 연배가 비슷한 다른 한분과 충남 청양군에 있는 충남도립대학에서 문화관광해설사 과정을 공부하게 되었다. 역사와 문화, 관광, 스토리텔링에 저명한 교수분들의 교육을 받으며 문화관광해설사로서의 자질을 키워갔다. 재미있는 공부에 하루도 소홀할 수가 없었던 나는 하루 8시간의 교육과,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석하여 교육을 받았다.

수업이 끝나는 날 이론 시험을 보았다. 이론 시험은 다행히도 과정 중에 공부했던 내용들만 출제되어 부담 없이 답을 적어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떨리는 마지막 관문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시연 테스트였다. 스스로 시연 자료를 준비하고 20여 명의 교육생들과 다섯 분의 심사위원을 관광객으로 생각하며 해설을 진행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평소 말을 잘하거나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니었던 나는 정말 부담스러운 시간이었다.

게다가 더욱 엄청난 일을 내손으로 저지르고 말았는데 시연 테스트 발표 순서지를 담은 통에서 1번이 적힌 쪽지를 집어 들고 말았다. 앞사람들의 발표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발표를 다듬을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교육생들 모두 같은 마음인지라 순서를 바꾸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도 운명이려니 하며 발표 준비를 하였고 드디어 그날이 오고 말았다.


남편은 정장 한 벌을 선물로 사주었다. 그리고 자기랑 이야기하듯이 그냥 편하게 하라고 하였다. 떨어지면 좋은 공부 했다고 생각하면 되지 꼭 합격해야 될 이유는 없는 거 아니냐면서 편하게 해 주었다.

남편이 사준 옷을 입고, 기분 좋은 모습으로 발표장에 갔다.

심사위원으로 우리를 교육했던 교수님과 외부 초청교수님들이 오셨다. 그중에 방송대에서 문화유산 과정을 진행하셨던 교수님 한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좋은 징조였다. 방송대 과정에서 공부할 때 날 좋게 봐주셨던 분이다. 자신감이 생겼다.


호명과 함께 첫 번째로 단상에 올라갔다. 떨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떨리지 않는 척하며 시간 안에 시연 테스트를 마쳤다. 마치고 내려오는 내게 그 교수님은 웃으며 "수고했어요, 잘했어요"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뒷사람들의 발표 역시 떨다가 말문이 막혀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 정해진 시간보다 한참을 넘기고도 마무리가 안돼서 멈추라는 종소리를 듣고 아쉽게 내려오는 사람, 그래도 원만하게 잘하는 사람 등등 웃음과 이쉬움이 함께하는 시간은 결국 흘러서 며칠 후 발표 예정일을 확인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얼마 후 연기군청에서 또 연락이 왔다. 해설사 과정에서 합격하였다고 한다.


'충청남도 문화관광 해설사 7기'로 당당히 문화관광해설사가 되었다.


이제는 지역의 선배 해설사분들께 실습을 받고 관광지를 지정해서 근무를 해 달라고 하였다.

1개월에 일주일 이상 15일 이내로 근무를 해줄 것을 요청하였고 근무요일과 시간은 자율적이었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축하를 받으며, 연기군의 관광산업에 일조해 줄 것을 기대를 받으며, 나의 해설사 활동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후 5년간 스스로도 만족할 만큼 열심히 활동을 했다.


시연 테스트의 평가가 어떠했는지 알 수가 없어 그렇게 걱정이 되었던 해설사 시험과정에서 나의 점수는 전체 24명 중 최고였다고 한다. 탈락자는 3명이었고 21명이 합격하였다. 개인에게 점수를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군청으로 온 결과지에는 내가 24명 중에 '일등'으로 적혀있었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내가 해야 할 일이면 항상 최선을 다하였고 그 결과는 점수로 치면 언제나 상위권이었다.


해설사 활동 당시 세종시 전의면 비암사에서 해설하는 모습이다.


해설사는 1년마다 보수교육을 받는다. 15년도 해설사 보수교육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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