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글에 이야기 한대로 방송대를 다니며 내 형편에 맞추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것 같다.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해서 제 기간 안에 졸업장을 받았고, 충남 문화관광 해설사도 되었다.
그리고 차차 지면을 빌어 소개하겠지만 전통놀이 강사 2급 자격증을 받았고, 효지도사 2급 자격증도 받았다.
그리고 연기 문화원에서 문화유산 해설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연기문화원 향토사 연구회'라는 조직에서 함께 지역문화와 역사를 공부해 보자는 요청이 있어 그곳에 합류하여 향토사 연구도 하였다.
향토사 연구위원이라는 명칭을 달고 30여 명의 향토사 연구위원들과 활동을 하게 되었다.
무엇이든 하기만 하면 열심히 하는 모습이 향토사에서도 주목을 받기에 이른다.
연기군의 지원을 받아 지역문화의 한 부류인 <세종의 나루터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책을 발간하기로 하였는데, 조사와 집필 편집으로 이어지는 작업의 일원으로 선출된 것이다. 총책임자 1명 조사위원 3명으로 구성된 작업이었다. 총책임을 맡은 분은 이전에도 몇 권의 책을 발간하는데 그때도 중임을 맡아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책자는 어떻게 작업하고 마무리하면 되는지 잘 알고 있는 분이었다.
조사위원으로 발탁된 우리 세명은 모두 처음이었다.
총체적인 계획표가 작성되고 지정된 날짜에 금강 주변의 마을 사람들을 만나 금강 나루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그에 필요한 자료들이 있으면 사진과 글로 첨부하여 활용을 하였다.
그 작업이 나는 꽤나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함께 하기로 한 조사위원 두 분은 그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있어서인지 조사날짜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총책 위원님과 함께 할 때는 그분이 알아서 한자로 쓰인 자료들을 보고 내용을 확인하였기 때문에 나는 옆에서 불러 주는 대로 메모만 하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총책임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우리 조사위원 들끼리만 조사를 가야 할 상황이 생겼다.
그분이 하던 방식들을 유심히 살폈던 나는 그분이 부재한 그 자리를 메꾸어 보려고 하였지만 고문서의 자료를 살피는 과정에서 한자에 막혀 제대로 된 자료를 수집할 수가 없었다.
향토사 연구를 위해서는 한자를 반드시 익혀야 하는 필요성을 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돌아와 바로 '대한검정회 한자급수 2급' 교재를 사서 공부를 시작했다. 대한 검정회 2급은 한자 2000자를 알아야 합격선에 들 수 있다. 공부를 시작하고 처음 닿는 시험일을 목표로 접수를 한 상태에서 공부에 돌입했다.
물론 책자 발간에 필요한 조사위원으로서의 활동도 소홀하지 않았다.
밤을 새우며 파고들었던 한자공부는 급격히 실력이 향상되었고
3개월 만에 도래한 시험일에 기분 좋게 합격하였다.
2급에 합격한 나는 지역에서 더 공부할 곳이 있는지를 찾으니 연기도서관에 한문반이 개강되어있었다.
그곳은 급수와 관계없이 명심보감, 논어, 맹자를 읽고 선생님의 해석을 듣고 글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에 대하여 질의답변의 시간을 가졌다. 참 유익했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도서관과 서원을 오가며 공부했던 책의 일부
한문반의 공부를 하다 보니 옛 고문서 들을 번역하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좋은 글을 읽고 뜻만 새겨도 좋은데 그런 고문서들을 번역까지 한다면 너무 뿌듯할 것 같았다.
게다가 한문번역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국가의 서고에 쌓여있는 고문서들을 다 번역하는데 100년도 더 걸릴 거라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보수도 적지 않은 아주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나이도 있고, 방송대 공부도 해야 하고, 학생회도 이끌어야 하고, 향토사 연구도 해야 하고, 한문까지 하려니 정말이지 몸이 한두 개쯤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래도 자꾸만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은 한자급수부터 올려야 했다.
고문서를 읽어보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일단 한자를 1만 자는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한자 1만 자는 '특급'에 해당한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꼭 도전해 보고야 마는 도전정신 하나는 주변에서도 알아준다.
학원은 도저히 다닐 시간이 안될 것 같아서 지금 하고 있는 활동들 틈틈이 독학으로 해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독학으로 하는 공부와 인터넷을 활용한 공부에는 방송대에 다니면서 이미 체질화되어있었다. 다음 카페에 검색해보니 회원수가 9만 명에 육박하는 한자 동호회 카페가 있었다. 그곳에 가입하여 공부에 도움을 받았다.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5개월이었다.
인터넷으로 구입한 어문회 한자 특급 교재는 상당히 두꺼웠다. 985페이지에 10포인트의 글씨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냥 읽기만 해도 5개월 안에 다 끝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하는데 까지 정말 열심히 했다. 책을 보다가 기출문제를 풀며, 샤프심 한통을 거의 다 쓸 정도로 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이라는 말에 작은 위안을 받으며 했다.
그리고 시험일, 충남대학교 특급 시험장엔 40여 명이 온듯했다.
어문회 한자 특급 시험은 200문항이 출제된다. 읽기, 쓰기 180문항에, 번역하기가 20문항이다.
주어진 시간은 100분이다. 한 문제당 5분 안에 풀어야 한다.
'사지선다'이런 건 아예 없다. 합격점은 80점이다.
수험번호와 이름을 꼼꼼히 기입하고 문제를 풀어갔다. 읽기는 자신 있었고, 쓰기도 어느 정도는 그 당시에는 가능했다. 그러나 번역하기에서 머리가 돌지를 않았다. 거의 틀린 것 같았다.
쓰기에서 몇 개는 틀렸다 해도, 그리고 번역하기는 다 틀렸어도 합격선에 든 것 같았다.
발표일이 기다려졌다.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차라리 다 어려워서 포기를 해버렸으면 좋았을 걸, 딱 기대하기 좋은 정도의 시험을 치른 것 같았다.
그리고 발표일 메일이 왔다.
불 합 격!!
운전면허 딸 때 4번 만에 합격했고, 다른 시험에선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불합격 메일은 처음 받았다.
많이 아쉬웠지만 열심히 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그리고 이때 배운 한자실력으로 얼마 후 또 남들이 못하는 '향토사연구회의 걸작'을 탄생시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