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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나날.

강현욱 산문집.

by 시골서재 강현욱


출근길 차량이 줄었다. 사람도 줄었다. 어느새 겨울이다.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것이다. 시간은 무참하다. 무참하게 흐르는 시간 앞에 다시 마음이 툭 꺾인다. 시간을 아끼려 아등바등 살았으나, 결국 텅 빈 시간만이 남았다. 시간은 빈 유리병이다. 빈 유리병은 머리로는 채울 수가 없다. 오직 가슴으로만 채울 수 있는 유리병. 머리로만 아등바등했으니 비어있을 수 밖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유리병을 나는 망연자실 바라본다.

시간 앞에 나는 부복(俯伏)한다.

나는 한없이 무력하다.


차가운 바람이 창틀에 끼어 울어댄다. 양동 주전자에 물을 조금 더 붓고서, 주둥이로 일어서는 하얀 수증기를 가만히 바라본다. 내 삶도 저렇게 희뿌옇게 사라져 가는가. 노트를 펼치고 꺾인 마음을 붙잡아본다. 모든 감각과 감정을 동원해 현재를 느낀다. 그리고 기록한다. 마음으로 느낀 말들만이 노트를 지나갈 수 있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말들 속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에 나의 시간은 정지한다.

사랑.

그저 공감한다는 듯, 그게 삶의 전부라는 듯,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린다.

가슴으로 채울 수 있는 것들은 희소하다.

희소하기에 애틋하다.

나의 남아있는 나날이, 부디 가슴으로 채워지길.


덧. 벌써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서해바다 앞에서 다짐했던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일 년 전 과거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사랑하고 애도하던 시간만이 온전히 남아있는 듯합니다.

작가님들, 그리고 독자님들. 항상 강건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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