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욱 산문집.
정기 건강검진을 받았다. 의사는 모든게 좋다고 한다. 다만, 조심스레 덧붙인다.
'지난번 검진 때 목 안에 조금 큰 혹이 있다고 전문병원에 가보시라 말씀드렸었는데... 조직 검사는 받으셨나요? 병원에서는 뭐라 하던가요?'
'음...'
죽을 때까지 갖고서 살아가야 한다고.
니의 일부라 여기라고.
목 넘김이 불편할 때, 그때 제거를 생각해 보자고.
지금은 그냥, 안고 살아가라고.
거무스름한 형체의 혹을 물끄러미 건너다본다. 아주 가끔 불편한 느낌을 전하기도 한다. 나에게 들러붙은 가차없는 삶도 저런 모습이리라. 나를 해하기도, 살리기도 할 나의 삶. 때로는 양심이라 부르기도 하고, 어쩌면 책임이라 여겨도 괜찮을 그저 그런 삶.
태어났으니 살아가는 것이고, 성실하게 응답할 책임이 나에게 있다. 그런 삶을 무엇으로 채울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삶과 나의 끊임없는 투쟁상태.
내가 가진 가장 힘이 센 무기는, 사랑과 기억이다.
그런데 그걸, 자주 잊고 살아간다.
지하철을 기다린다. 수많은 희망과 기다림이 들어오고, 다시 떠나간다. 일 년 전, 나를 데려오던 희망(希望). 바랄 희와 바랄 망이 조합된 바라고 바라는 희망이 떠나간다. 다시 그 자리를 채우는 일은 역시나 나의 과업이다. 그렇게 살아진다. 때로는 경멸과 분노를 섞어 채우기도 하고, 또 때로는 사랑과 희망을 떨구기도 하면서.
삶은 부지불식간에 나의 뺨을 후려칠 준비가 언제나 되어있겠지만, 그럴때마다 아무런 준비없는 나는, 휘청이다 다시 지하철에 올라탄다. 살아있음에 대한 나의 성실한 책무이니까.
해가 바뀐다고 해서 태양이 더욱 찬란한 건 아니라는 걸, 이젠 알 것도 같다. 매일 떠올라 나의 정수리 위로 안온하게 번져가는 햇살이 언제나 찬연하게 빛나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건 다시 나에게 기회를 주는 빛이다.
비록 목 안의 혹 처럼 다가올지라도, 살아있음에 그저 감사하다.
덧. 제 브런치북인 마음 하나 얹은 소담한 밥상 하나가 출간일이 다가오고 있어 부득이하게 모든 글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댓글과 라이킷에 담긴 수많은 응원의 말들과 애정의 언어들을 다시 읽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들이 희망이었노라 적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 희망들을 잊지 않는 것, 또한 저의 책무입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살아올 수 있었으니까요.
가슴 아픈 항공기 사고를 보며 씁니다. 그리고 고개 숙여 애도합니다. 어쩌면 저의 사고였을 수도, 제가 사랑하는 이의 사고였을 수도 있었을 비현실적인 소식에 먹먹한 두 눈을 그저 껌뻑이며 삶을 생각합니다.
작가님들, 그리고 독자님들 평온한 새해 맞이하시고, 새해에도 항상 강건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