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돌아오는 이유.

강현욱 산문집.

by 시골서재 강현욱


'나. 돌아왔어.'

시골의 고요한 아침 햇살 아래에서 오랜만에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무의미하고, 소란스러운 일상 속에서 살아 돌아온 자의 얼굴이 그곳에 있다. 진행하던 프로젝트는 수많은 허언들을 두고서 떠났으나, 지친 몸과 무기력은 후유증처럼 남았다. 이런 무기력은 어리석고, 어둡기만 하다. 무기력은 스스로에게 나약하다는 착각을 심는다.

뿌리내리지 않게 무엇이 되었든 움직여야 한다.

인간의 비극은 고통과 죄,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비롯된다. 인간은 이러한 비극을 최소화하거나, 미루기 위해 마음의 풍요와 육체적 건강을 갈망한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만약 행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인간의 행복은 마음의 평온과 육체적 건강을 딛고 서 있을 것이다. 평온과 건강이 없다면, 작은 기쁨조차 알아보지 못할 테니까.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쉽게도 깨트려지고야 말테니까. 바쁜 일상이지만, 내가 주말마다 시골로 돌아가 정원일을 하는 이유다. 내 안에서 세월의 흔적이 짙어질수록, 행복의 전제가 평온과 건강이라는 점에 주저함이 없어진다. 하지만 죽음만큼은 어찌할 수 없는, 조금 더 미루고 미룰 수 있는 것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서럽고, 인간의 운명은 비참하다.

시골 정원에 들어서면, 내 앞에서 문이 닫히며, 소란스럽고 무의미한 요소들은 뒤로 물러난다. 나에게 언제나 무해한 공간. 세계가 선명하게 구분되어지는 경계. 아니, 어쩌면 나에게 있어 정원은 공간이 아닌 시간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원 뿐만 아니라, 뒤에 남겨진 아름다운 것들은 죄다 그런 것만 같다. 봄의 정원은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인사하는 아이처럼 여겨진다. 오늘도 다정한 언어로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이른 봄에 심어둔 감자에서 드디어 싹이 올라왔다. 이제 다른 채소 모종을 심어도 좋다는 자연의 목소리다. 다정한 신호와 함께 나는 분주하고, 설렌다. 때마침 오늘은 장이 서는 날이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소박한 표정들과 투박한 손들을 보는 게 좋아, 가끔씩 찾아가 서성이곤 한다. 모종을 구하러 장까지 걸어가는 들녘 길은 어느새 못자리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순한 바람이 살갗을 지나고, 투명한 새소리가 간지럽다. 불가해한 기쁨과 알 수 없는 생기. 나는 일상에서 떠나온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 비록 인간의 운명은 비참하지만, 사는 동안은 고요하며 건강하고 싶으니까.

자연의 위안은 진실되고, 아주 깊다. 그래서 나는 떠나오지 않고, 여전히 돌아온다.


덧. 어느새 곡우가 지나고, 한해 농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시골은 언제나 고요하지만, 봄의 고요함은 힘이 넘치는 듯합니다. 시골의 봄 기운 가득 전해드립니다.

작가님들. 독자님들 항상 강건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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