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이설 Aug 08. 2023

병원에서 상처를 받았다면

나에게 맞는 병원, 의사를 찾아가는 과정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처음 내원한 정신의학과에서 만난 주치의 선생님과 아직도 함께 하고 있다.


병원을 바꾸지 않고 계속 다니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보통은 병원의 분위기나 의사가 자신과 맞지 않을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때는 다른 병원을 찾아 전전한다. 자신과 맞지 않는 의사 몇 명을 거치고, 그 와중에 마음고생도 하며 꽤 많은 수고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병원을 찾는다. 정신의학과에서는 의사와 환자가 책상 하나를 앞에 두고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때 환자는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하는 깊은 상처를 꺼내 보인다. 어렵고, 예민하게 병원을 고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나에게 맞는 병원을 찾아다닐 용기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병원에서 상처받은 채로 치료를 포기하면서 말이다.


생각해 보니 나 또한 몇 번의 위기가 있었다. 늘 기분이 언짢아 보이던 간호사 때문에 눈치가 보여 병원 가는 날이 두려운 적도 있었고, 주치의 선생님이 툭 던진 말 한마디에 상처받아 집에 가서 두 눈이 빨갛게 붓도록 펑펑 운 날도 있었다. 그때마다 많이 힘들었다. 병원에서조차 내가 위로받지 못하고, 심지어 버림받았다고 느꼈을 때는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져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병원을 옮길 용기는 나지 않았다. 새로운 병원, 새로운 의사에게 간다면 또 새롭게 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니까. 속마음을 꺼내놓는 것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나로서는 병원을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그 의사가 내 이야기를 얼마나 잘 들어줄지, 또다시 나에게 상처를 주는 의사면 나는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두려웠고, 병원 분위기나 간호사가 불친절하지는 않을지 끊임없는 걱정에 겁이 났다. 그래서 무작정 병원을 옮기는 것보단 지금의 주치의 선생님과 한번 더 대화를 하는 쪽을 택했다. 병원을 옮기는 것은 그 후여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정해진 진료예약 날짜가 아니고서라도 아침 일찍 병원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았다. 주로 전날 밤새도록 고민하다 날이 밝자마자 병원에 전화를 건다. 늘 그런 날이면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나 또한 상처받았던 상황과 그때의 기억을 다시 힘겹게 꺼내야 하는 감정소모가 큰 일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주치의 선생님의 반응이 어떨지 알 수 없어 겁이 나기도 했다. '힘겹게 꺼내는 내 말을 이해조차 못 하면 어떡하지?' '오히려 기분 나빠하시지는 않을까?'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를 괴롭힐 때마다 다짐했다. 오늘이 마지막 진료라 생각하고 뭐든 솔직하게 말해야겠다고 말이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다니는 병원이라는 곳에서 또다시 상처를 받아서는 안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용기를 냈다.


되도록이면 숨김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으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의 대화는 나에게 정말 중요했다. 이대로 마지막 진료가 되느냐, 다음 진료예약을 잡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가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꺼냈다. 지난 상담 중 어떤 대화 속에서 무슨 기분을 느꼈고, 주치의 선생님의 말이 나에게 어떤 상처가 되었는지 말이다. 때로는 담담하게, 또 때로는 눈물범벅이 되어 상처가 된 지난 감정들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전날 끙끙 앓다가 힘겹게 말을 꺼내는 것이 무색하게도 주치의 선생님의 반응은 걱정했던 예상과는 달랐다. 지난 상담에서 나에게 어떤 말을 했다면 그 이유를, 혹은 그 말속에 오해가 있었다면 충분한 설명을 통해 내 마음이 더는 다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엔 늘 주치의 선생님의 진정 어린 사과가 있었다. 대화하는 내내 진심이 느껴졌던 주치의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전날의 걱정, 힘들었던 마음과 상처, 그리고 오해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몇 번의 오해가 생길 때마다 이렇게 대화를 통해 풀고 나니 그동안 쌓여온 시간만큼 주치의 선생님을 신뢰하게 되었고, 또 그만큼 의지하고 있다. 이제는 지금 다니는 병원 말고 다른 병원을 다니는 것은 생각도 못하겠다. 그동안 몇 번의 입원권유에도 입원을 하지 않았던 이유 중에 하나도 다른 의사와는 상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신의학과는 진료 중 여러 대화를 주고받는다. 사람과 사람의 대화이기에 때로는 예기치 않은 오해가 생기도, 때로는 어느 한쪽이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그때는 솔직하게 털어놓고 대화하는 쪽을 권하고 싶다. 그것이 상담과정, 그리고 자신의 치료에 더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진심 어린 대화를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와 소통이 되지 않거나, 갖은 노력에도 끝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때는 과감하게 병원을 바꾸는 용기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그 상처로 인해 치료를 중단하지 않는 것이다. 상처받았다고 해서 주치의 선생님과 대화하는 것을, 혹은 병원을 나가거나 옮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기를 바란다. 병원에서조차 상처받았다는 절망감과 마치 버림받은 것 같은 좌절감에 치료를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진심으로 공감해 주고,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을 의사가 어디엔가 한 명은 존재할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우울증이 오래될수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