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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Dec 17. 2017

정리정돈의 기쁨이란

나는 주말에 하루는 꼭 약속을 잡지 않고 글을 쓰거나 방 정리정돈을 한다. 그러니까 만약 이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식사를 하고 양치하지 않는 것처럼 굉장히 찝찝한 것이다. 방을 정리 정돈하는 것은 바른생활 어린이라서가 아니라 이 행위가 일종에 내게 기묘한 쾌락을 주기 때문이다. 


그 쾌락이라 하면... 글로 정확히 표현하기가 어렵다(그러려면 왜 쓰기를 시작했습니까?). 내가 청소하는 단계는 크게 3개로 나눠진다. 첫째는 청소할 구역을 나누는 것. 나는 절대로 방 전체를 하루에 다 청소하지 않는다. 집중적으로 청소할 구역을 선정하고 그 부분만 공략하는 것이다. 둘째는 더 좋은 배치를 연구하는 것. 예를 들자면 화장품을 두 번째 책장 왼쪽 칸에 올려두었다면 손이 잘 닿는 두 번째 책장 오른쪽 칸으로 옮기는 것이다. 셋째는 필요 없는 것을 과감하게 버리거나 기부하는 것. 중간중간 청소기도 돌리고 물걸레로 닦는 일도 꽤 재미있다. 예전에는 혼잣말을 하지 않았는데 요새는 물걸레로 닦을 때 먼지가 많이 나오면 "오메, 이 더러운 것봐~ 목욕하니까 좋겠다~"하고 중얼거리게 된다(글로 쓰니 소름 돋는데, 어쨌든 깨끗해지면 되는 것 아닌가). 


청소할 구역을 정하고 집중 공략하는 일은 굉장히 재미있다. 색깔별로 옷이 꽂혀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오늘은 책장을 청소 대상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이게 뭔 소리냐...하고 이상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세운 룰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의외로 생활에서 큰 자신감을 준다. 그래서 청소 대상으로 선택된 책장을 한번 눈으로 크게 스캔한 후 더 효율적인 배치를 연구한다. 이것 또한 큰 쾌락을 준다. 특히 책장의 경우 생활에서 중요시하는 것들을 가장 특별히 마련된 자리에 놓아야 한다(그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면 전망이 제일 좋을 것이다). 지금 내 책장엔 8개의 칸이 있고 4번째 칸엔 특별 손님들을 모셔놨다. 그 분들로 말하자면 지금 읽고 있는 책, 2018년을 맞이할 다이어리같은 분들이다. 맨 윗 칸은 주로 추억과 예술 영역을 담당한다. 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글 소재를 모을 때 머릿 속에 거대 책장을 만들어 넣는다고 하던데, 그렇게 치자면 나는 그것을 현실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내년엔 책장 모든 칸을 다 소화해내서 한 칸을 더 늘려보고도 싶다. 

버리는 것은 가장 큰 쾌락을 준다. 나는 주로 심플하게 산다. 옷 부분에서는 완벽하게 심플하지 못하다고 미리 언급해두고 다른 부분은 대체적으로 잘 사지 않고 가지고 있는 몇 개로 해결하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은 '강작은 물욕이 없네'라고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물건을 사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하나 사서 또 살 이유가 없고 둘째는 환경보호 셋째는 돈이 그토록 많지 않다. 첫째의 이유가 가장 크다고 믿어둔다. 그러나 심플하게 사는 나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입하는 것이 있고 미쳐 바로 버리지 못한 것이 있으면 청소할 때 과감히 버리는 편이다. 그리고 쓸만한 것이 있으면 필요한 사람에게 주거나 책 같은 경우는 기부한다. 보통 문제지나 예술 서적은 팔고, 단행본은 기부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숭숭 뚫린 내 방을 보고 있자면 마치 모든 악당을 물리친 영웅의 고요한 엔딩장면처럼 마음이 평온해지고 깔끔해진다. 잊어버리고 싶은 과거는 말끔히 사라지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작은 용기가 생기기도 하고 심지어 가슴이 두근 거리기도 한다. 미소는 당연히. 


그리고 이런 정리정돈의 또 다른 장점은 심심한 시간을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TV방송에서 정리 정돈을 잘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이 화제가 되곤 하는데, 나는 그들의 대부분이 이 심심한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기 위해서일 거라도 생각한다. 물론 내가 위에서 장황하게 설명한 정리 정돈의 쾌락을 함께 느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고. 청소를 마치면 보통 글쓰기를 제외한 나의 업무를 본다. 스스로의 연말 행사인 앨범 만들기를 준비하고, 요즘 흥미를 들인 영어 말하기를 점검해보고, 새해 여행 계획을 짜고, 다음 주에 있을 연말 모임 장소를 정하고, 편지 답장을 하고, 쇼핑리스트에 있는 속옷 하나를 구입하고, 다음 주엔 더 상대가 좋아하는 말을 하자고 다짐한다. 이 모든 업무를 보면 하루가 금세 간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다음 주로 미루지만 보통은 적당히 한다. 


내가 이렇게 스스로의 규칙을 만들며 나를 키우기 시작한 건 스스로가 어른이라고 느꼈을 때부터였다. 부모님이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를 키워야 한다고 느꼈을 때. 나는 좀 더 재밌게 나만의 룰을 만들고, 나를 정리 정돈하며 생활을 일궈왔다. 그후부터 내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인생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었다. 사회의 예의 없음에 "참 예의 없네요."라고 말할 줄 알게 됐고 남자의 예의 없음에 "정말 예의 없네요."라고 말할 줄 알게 됐다. 그리고 좀 더 가꿔진 나와 맞는 일, 멋진 사람들에게 다가갈 용기가 생겼다. 든든한 내가 세상의 어두움에 끌려다니지 않고 어떻게든 나를 책임질 용기가 생긴 것같다.  


책장 속 사물의 배치를 바꾸듯 언제든 규칙은 변화할 수 있다. 그리고 아예 규칙들을 버리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규칙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도 정리정돈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럼 정리정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건, 깔끔하게 정돈된 방을 미소 짓고 바라보며

내일을 꿈꾸는/ 우리가/ 있다는 것이다.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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