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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Dec 16. 2017

'행복하다'말해도 돼

점심시간 카페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권 대리가 말했다. 


"저 요즘 행복해요."


권 대리는 올해 8월 나보다 한 달 늦게 회사에 입사했다. 대학교 졸업 후 연극, 뮤지컬 등에서 연기자로 활동하다가 디자인 전공을 살려 다시 디자이너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연예인 이효리를 닮은 예쁜 얼굴에 개그와 재치가 충만해서 모두의 주목을 받는 화려한 사람이다. 반면에 생활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떨어진 운동화를 버리지 못하고, 죽어가는 화초에 영양제를 꽂아 정성을 다하는 소박함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권 대리를 매우 좋아하고 있다(권 대리가 이 글을 보지 않길 바랍니다).


그녀의 또 다른 장점은 예의 바르면서도 솔직하다는 것이다. 그날도 찬 공기가 공중에 떠다니는 아주 추운 날이었다. 점심시간, 두꺼운 점퍼를 걸치고 회사 앞 카페로 달려갔다. 예약석에 앉아 바닐라 라떼, 초코 라떼, 따뜻한 아메리카노, 밀크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안 쪽에 앉은 권 대리가 우리를 보며 이야기했다. 


요즘 행복하다고. 


그 말을 듣고 나는 놀랐다. 그 흔한 행복이라는 단어를 입으로 뱉는 것이 무언가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슴 안에서 '도대체 어떤 감정을 꺼내야 하나?'하고 고민했다. 그러다 무심코 "부럽다."라고 말했다.


주워 담고 싶었다. 부러울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녀처럼 행복을 찾아 헤맸고 그것들을 잘 일구어오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가 용감해 보였던 것에서, 그리고 그 말을 듣고선 부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는 것에서 뜻밖에 감춰진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간, 있는 그대로를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 왠지 남에게 잘 보이려는 과시 같았고 스스로 합리화하는 가면 같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스스로에게 그보다 내가 못한 이유를 찾으며 시기했고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습관적으로 먼저 생각해왔다. 

현재 행복하다 말하는 것은 과시도 아니고, 가진 것에 그냥 합리화하는 것도 아니다. '현재 행복하다'라는 말은 내가 세운 기준을 따라 그린 길 그 위를 미소 지으며 걷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가 그린 길과 각자가 가진 행복의 모양은 다르다. 그녀의 사랑과 내 사랑이 다르듯, 부모님이 다르듯, 미래가 다르듯 행복의 모양도 각기 다르다. 물론 행복의 기준은 비슷할 수 있지만 그 모양새가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권 대리가 자신에게 지극정성을 다하는 남자를 이야기할 때면 부러움을 느끼곤 했다. 왜냐면 나도 내 길 위에 그런 사람과 함께하는 것을 행복의 기준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권 대리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남자가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 내 모양새에 맞는 즉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남자가 아니라면, 누구든 먼저 행복의 기준에 가까워졌다고 해도 내겐 아무 의미가 없었다. 부러워할 행복이 아닌 것이다.


나는 내가 세운 생의 기준으로 그린 길 위에서 미소 지으며 천천히 걷고 있다. 때론 춥고/ 외롭고/ 힘들어도 무너질 생각은 없다. 매일 깊은 밤 죽음을 연습하고 다음날 맞는 태양이 내게 살아있음을 말한다. 


앞으로 가거라. 

멋진 희망을 기대해라. 

너의 행복을 일구어나가거라. 


그래서 나는 이제, '행복하다'라는 말 앞에 당당해지기로 했다. 



20171216

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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