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작 Jul 02. 2021

아직도 잠 못 든 너에게

  책 <미움받을 용기>에서 사부는 청년에게 누구든 당장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구든 당장 행복해질 수 있다. 당장 행복해질 수 있다..' 나는 소리 내서 몇 번 읊조렸다. 예전 같았다면 이러한 무조건적인 긍정의 말에 버럭 화를 냈을 것이다. 피가 뜨겁게 변하는 엄청난 상실의 아픔 속에서 어떻게 당장 행복해질 수 있느냐며 사부의 멱살이라도 잡았을(실제로 내게 이런 용기는 없다)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에세이를 쓰면서 너무나도 어렵지만 아픔 속에서도- 인간은 행복을 선택할 수 있으며, 행복을 결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종류의 슬픔은 신의 영역이며 모든 종류의 행복은 인간의 영역이다. 생과 죽음을 내리고, 그 안에 행복의 자리를 만들고 종종 슬픔을 뿌리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 할 지라도- 행복의 자리에서 행복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신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다.  


  모두의 삶은 유한하다. 20대들은 앞으로 겨우 80년 정도의 생이 남았고 30대들은 앞으로 겨우 70년 정도의 생이 남았을까 말까 한다. 엄청난 슬픔을 겪었고 겪고 있는 사람이든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든 모두가 언젠가 심장이 멈추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나머지 인생을 슬픔의 비를 맞으며 살아가도 된다. 세상은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을 딱하게 보지만 사실 그들은 때로 깊은 화산처럼 뜨겁게 울리며 깊은 심연처럼 차갑고 고요해서, 그 자체로 매력이 있다. 

  반대로 나머지 인생을 행복의 빛으로 향하겠다고 선택해도 된다. 거기엔 찬란한 색의 꽃과 푸른 나뭇잎, 산들거리는 바람이 있어 자꾸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 진다.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랑이다. 남은 인생을 슬픔 속에서 걷기로 선택한 사람을 자꾸만 다시 행복의 빛으로 가야 한다 이끄는 것은, 사랑이다. 단순히 용기만으로 당신은 행복을 선택하고 결심한 것이 아니다. 당신 안에 들어있는 여전히 뛰고 있는 사랑이- 신이 뿌린 슬픔이 무색해질 정도로 행복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로 우리가 통용하여 느끼는 것을, 이토록 고귀한 것을 어떻게 글로 더 쓸 수 있을까. 


  나와 당신에게 앞으로 행복할 일만 있을 것이라고 쓰고 싶다. 하지만 슬픔의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라 어찌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슬픔이 오더라도 그렇게 좌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에겐 사랑이 있고, 

원한다면 그것은 언제든- 

준비해둔 찬란한 꽃과 푸른 잎, 산들바람을 내어주려 할 테니까. 



사랑을 담아, 

글. 강작

insta@fromkangjak



추신. 지금까지 <잠 못 드는 너에게>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것만으로도 제가 깨달음을 얻고 힘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다 자라지 못한 어른입니다. 아직 삶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울고 그래요. 그럴 때마다 계속 글을 쓰며 어쩌면 나를 닮았을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병원에 계신 어머니께도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항상 미안하다고 말씀하시지만, 사랑에 미안하다는 말은 통용되지가 않아서요. 언제나 그랬듯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브런치와 윌라에게도 고맙습니다. 공모전을 겨냥한 말은 아니고요(그렇습니다). 저는 당분간 아날로그 편지 구독 서비스인 <친애하는 오늘에게: 여름 편지>를 쓰러 다녀오겠습니다. 그럼 모두 건강하세요! :-) 고마워. 



작가의 이전글 아파봤다고 강해진 건 아니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