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되, 많이 행복하세요
37살이 되어서야 '살아갈 인생의 방향'을 깨우친 여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시라.
사람들은 나에게 '행복하게 살아라'라고 말했다. 그 말은 너무나 방대하고 높아서 나는 '행복하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도대체 행복이 뭔데요? 하고 물으니, 현자들은 행복은 감사와 만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 했다. 좋다.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뜨고 숨을 쉬고 걸어서 화장실에 갈 수 있어 감사합니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오래된 노트북과 도서관의 공공 전력이 있어 감사합니다. 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다 불행이 찾아오면, '그나마 이 정도여서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을 옷과 먹을 양식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했다. 그런데 불행은 눈치도 없는지 내가 감사 일기를 쓰는 것보다 더 자주 빠르게 찾아왔고, 그럴 때마다 감사 에너지는 쭉쭉 떨어지고 말았다.
그럼 현자들은 또 말해주었다. '누가 인생이 행복하다고 했냐? 인생이란 건 원래 고뇌할 것이 연속인데 가끔가다가 행복이 나타나는 거야.'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찝찝했다. 아니, 누가 인생을 이딴 식으로 설계한 건지? 행복의 연속 중에 가끔가다 불행이 나타나게 만들진 못했을까? 그런데 그 의문이 실제의 삶인 경우도 있었다. 분명 저 여자에게도 불행이 있을 텐데, 유독 인생의 대부분을 살맛 나게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 어떤 여자는 무거운 불행을 안고 있음에도,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도 존재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생이란 행복이 기본값이라는 전제를 굳게 믿고, 슬픔이 찾아오면 슬프되, 끝까지 행복의 순간을 찾고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행복을 찾아 나서지 않고, 슬픔 뒤로 숨는 겁쟁이가 아니다.
애정하고 응원하는 유튜버 중에 '유병장수girl'이라는 분이 있다. 암투병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 올리는 여성인데 요즘 부쩍 힘들어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그녀를 애정하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기에 그녀가 바로 '슬프되, 행복을 만들어가는' 용기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영상 하나만 보아도 단번에 알 수 있다. 무거운 불행을 안은 사람이 만든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녀는 일상 속에서 웃음과 행복을 찾는다. 엄마가 맛있게 빵을 드시는 모습을 재밌게 묘사하고, 빼빼 말라가는 자신의 다리와 팔도 나뭇가지 같다고 표현한다. 사람들은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댓글을 달고, 엄청난 응원을 보낸다.
슬프되, 많이 행복하세요.
누구든 살면서 불행을 겪는다.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가 죽음이라는 명제와 같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행이 아니라면, 우리는 노력으로 어느 정도 불행을 멀리할 수 있다. 마치 행복하기 위해 노력해서 쟁취하는 것처럼. 그렇지만 불행을 완전히 피할 순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가올 불행이 무서워 벌벌 떨고 있어야 할까?
어떻게든 1의 불행도 맞지 않도록 갖은 애를 써야 할까?
이제 나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했다. 희로애락 중, 노여움과 슬픔을 인정하고 기쁨과 즐거움을 많이 많이 만드려 노력하려고 한다.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야기일지라도, 불행을 두려워하고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있던 나에겐 큰 깨달음이다. 어쨌든 인생이라는 것에 슬픔보단 행복이 많았다면, 좋은 인생이 아닐까?
그러니, 우리 두려워하지 말자.
어느 순간에서든 무조건 하나만 생각하자.
슬프되, 행복을 많이 많이 만들자.
그게 좋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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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