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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당신의 감정쓰레기통이 아닙니다

by 강작

전 당신의 감정쓰레기통이 아닙니다



감정쓰레기통이란 '한 사람이 자신의 부정적 감정이나 스트레스를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쏟아내는 상황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듣는 사람은 정서적 부담을 느끼고 심리적 소진에 빠질 수 있다.'


상대가 나를 감정쓰레기통으로 여기고 있느냐, 고민 상담자로 여기느냐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가 내 말을 경청하려 하느냐, 안 하느냐. 경청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말만 일방적으로 쏟아낸다면 100% 당신은 상대의 감정쓰레기통이다.


그들은 당신에게 어떤 조언을 들으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어떤 조언을 한다고 해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거나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거나 사운드를 겹치게 할 수도 있다. 그들의 문제가 얼마나 크든, 당신과의 관계와 엮어있든 상관없이- 그들은 그들만의 행동을 규정해 놓고, 스트레스를 풀 용으로 당신을 이용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감정쓰레기통 문제는 가까운 관계에서 자주 일어난다. 엄마와 딸, 동생과 언니, 남자친구와 여자친구, 부부, 친한 친구. 거리가 있는 관계에서는 감히 '인간을 스트레스 푸는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지만, 가까운 관계에서는 '그래도 되겠지'라는 오만과 '네가 가까우니까 내 감정을 받아줘야 한다'라는 착각으로 감정쓰레기통 문제가 발생한다.


안타깝지만 엄마와 나는 서로의 감정쓰레기통이었다. 아침부터 엄마의 불만은 시작되었다. 주로 외할머니와 아빠에 대한 불만이었다. 이 세상에 어디 문제없는 관계가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우리 엄마도 그런 평범한 문제들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사기, 바람, 폭력 같은 이혼숙려캠프에 나올만한 문제는 아니고, 지극히 '내가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채워지지 않은 기대'에서 나온 것이다.


아버지가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이라면, 엄마에겐 희망이 있다. 대화로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변화하면 개선이라는 게 된다. 하지만 61년생인 아버지에게(61년생 비하 아님, 우리 아버지에게 한정) 25년형 남편을 바라다니? 그러니까 25년에 결혼하는 예랑이에게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의 관식이가 되라고 하는 게 더 수월하겠는가, 아니면 61년 아침점심저녁 꼭 밥을 드셔야 하는 아저씨에게, 드라마랑 나이대도 비슷하니 관식이가 왜 아니냐고 따지는 게 더 먹히겠는가?


어쨌든 25년 애순이인 엄마는 관식이가 아닌 아버지를 못마땅해하고 불만이 쌓인다. 이렇게 당당하게 말해도 괜찮은 것이 내 지인의 부모들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좌우지간 이 글의 초점은 그로 인해 딸인 강금명이 감정쓰레기통으로 종종 이용당한다는 것이다.


처음엔 이건 딸인 내가 나서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서 머리를 싸매고 고심을 했다. 어떻게 아버지한테 말해야 엄마의 속이 풀릴까? 내가 중간에서 할 수 있는 건 뭘까? 그래서 몇 마디 아버지에게 말해보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되려 엄마는 내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뭐지 이 기분은? 수영장에서 힘껏 발차기를 해도 나아가지 않는 이 기분은?


하루 종일 불만을 털어 넣고, 아버지가 돌아오시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함께 식사를 하시는 모습에 힘이 쭉 빠졌다. 이것이로구나 바로 오늘 내 역할은 감정쓰레기통이었구나.


- 엄마. 이제 해결책을 물어볼 것이 아니라면, 반복되는 불만 토로는 제게 자제해 주세요. 플리즈. 저도 조심할게요!


서운하실지도 모르지만 딱 거기까지.


삼세번은 이해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대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네 번은 그만하자. 그때부턴 (just) 투정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도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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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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