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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불행
당신의 책임이 아닙니다

by 강작

가족의 불행 당신의 책임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부모나 자식이 불의의 사고로 크게 다치거나 사망을 한 경우,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일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를 어떻게 서든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파한다. 내가 그랬다. 5년 전 여행 중 사고로 척추가 부러지고 장애인이 된 엄마를 볼 때마다, '엄마가 갱년기라 골다공증 위험이 있었는데 왜 나는 자식으로서 챙기지 못했는가.' '하필 여행을 가기 전날, 엄마와 말다툼을 하여 스트레스를 주었는가.' '왜 내가 적극적으로 도와 운수 나쁜 집에 이사를 가게 했는가' 별의별 이유를 창조해 내며 죄책감을 가졌다.


아빠와 언니는 나의 생각관 달랐다. 말 그대로 '엄마 본인이 여행을 가서 다친 것'이 엄마가 지금껏 아픈 타당한 이유로 여겼다. 엄마 스스로도 인정했지만 나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죄책감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앞으로 더 잘못될까 봐 불안하기 때문에 나 스스로에게 겁을 주는 행위였다. '그러니까 이번엔 제대로 네가 사랑하는 엄마를 지켜.' 엄마가 참아보겠다고 해도 하루 종일 온라인은 뒤진 뒤 용하다는 병원을 예약하고, 영양제를 몇십만 원어치 주문하여 보내고 하면서 나는 불안 속에 떨고 있었다.

'안 그래도 돼. 너는 너의 몸이나 신경 써.'라는 대답이 돌아와도, 또다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패닉에 빠지는 것이 두려워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 사랑을 잃으면, 내 삶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요즘 보건소에서 진행하는 '속풀리스'라는 스트레스 관리 수업을 듣고 있다. 스트레스가 꽉 찬 사람들이 모여서 불리고 싶은 긍정 별명을 짓고 서로를 부르며, 스트레스 해소법에 대해 배운다. 그중에 나는 '행북이'라는 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행복한 거북이'라는 뜻이다. 행복하고 싶고, 불안 없이 느긋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었다. 내 옆에는 '이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중년 여성분이 계신다. 생김새 때문인가?(죄송하지만(?) 생김새도 약간 독수리를 닮으신 것 같기도 하고.. 멋있다는 의미!) 했는데, 독수리처럼 자유롭게 날면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담았다고 했다. 하여튼 수업을 다 듣고, 갑자기 밖으로 나가는데 이글님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는 스트레스 유형이 검사결과 나와 비슷했는데, 불안. 그래서인지 서로에게 끌리는 힘이 있었나 보다. 내가 물었다.


- 이글님은 어떻게 불안을 관리하고 계세요?

그랬더니 그녀가 그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 안 그래도, 나랑 성향이 비슷해서 말해보고 싶었어. 뭐가 불안한데요?

-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하나는 엄마에 대한 건강이요. 엄마가 몇 년 전에 크기 다쳤는데..

- 엄마가 몇 년생인데요?

- 63년생.

그랬더니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글의 사연도 별났다.


몇 달 전 아들이 추락 사고를 겪었고, 그 후에 몸과 마음에 후유증이 와서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들과 몇 시간 연락이 안 되면 너무 초조하고 불안해서 힘들었다고 했다. 나는 더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이글의 표정을 보아 듣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말을 아꼈다. 요즘은 아들과 함께 본인도 정신과에 다니며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웃었다.


- 엄마 많이 살았네. 60세 넘으면 충분히 산 거예요. 앞으로 병 없이 잘 살면 감사한 거고 병이 오면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야지.

내가 의아하단 표정을 짓자 계속 말을 이었다.

- 그러니까 엄마 걱정 더 이상 하지 말고, 예쁜(분명 이렇게 말했다) 아가씨 인생 즐기며 사세요. 저처럼 인생 낭비하지 말고. 있잖아. 나도,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다 잘 키웠고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난 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아들 때문에 요즘도 불안하긴 해. 그럴 때면 생각해요. 그날, 내 아들은 죽었다고. 지금 여러모로 아프지만 살아있는 게 감사한 거라고.


그렇게 우리는 서서 몇 분 동안 더 이야기를 나눴다. 벅찬 선물을 받아서 감히 포장을 뜯어보지 못하는 사람처럼 나는 멍하니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작년에 시어머님이 모친상, 부친상을 겪었다. 90대 중후반까지 사셨으니 주변에선 다들 대단히 장수하신 거라며 '딱히 슬프지 않아도 된다'라는 눈빛을 보냈다. 내가 결혼을 해서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땐 할머니는 치매 말기였고, 할아버지는 거의 기력이 없어 보이셨다. 그래도 고개도 끄덕이시고, 식탁에 앉아서 식사도 하시는 모양이셨다. 그런데 몇 달 후 요양원에서 뵌 모습은, 완전히 돌아가시기 직전 같아 보였다. 나는 몇 번 뵙지도 않은 분이고 우리 할머니도 아니었기 때문에 슬프지 않을 줄 알았는데, 슬펐다. 곧이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상의 줄줄이 이어졌다. 할아버지를 뒤따라 가신 할머니를 모시고 버스를 타고 납골당으로 가는 길. 막 엄마를 잃은 자식의 얼굴을 나는 처음으로 봤다. 물론 어르신들은 다 겪은 일이지만, 내가 생생히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러면서 나도 언젠가 사랑하는 이들을 사라지고 혼자 남을 모습을 상상해 봤다. 살아갈 수 있을까? 이렇게 사고를 당해 아픈 것도 불안해 안절부절못하는데, 엄마가 죽으면 나는 살아갈 수 있을까? 아들이 죽으면 이 글은 살아갈 수 있을까?



가족의 불행은 당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저 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겪은 불행이고, 그저 한 생을 받은 한 사람이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이다.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그렇듯이.


비극적인 대참사 소식이 전해지는 뉴스를 끄고, 아버지가 나지막이 말했다.


- 죽을 운명이었던 거야..


그도 사회적으로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고,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알지만, 어쩌면 그 말은- 남아 있는 가족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말이지 않을까 싶었다. 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겪은 불행.


만약 사랑하는 이의 불행을 떠안고 힘들어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글이 조금이라도 위로와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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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작


추신. 브런치 10주년 전시에 언제 오시나요? 우연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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