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지수 Aug 16. 2021

[라일락 대신 헤베꽃] Prologue

라일락 대신 헤베꽃 - 1

스물아홉 살의 절반이 지나갔다. 아홉수라는 부정적인 단어대로 그 어떤 해보다 힘든 상반기를 보냈다. 새해에 아홉수여도 괜찮다는 문구와 함께 활기차게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올렸었는데 말이다. 20대의 마지막 해를 꼭 만족스럽게 보내겠다는 포부 때문이었을까, 내년이면 서른이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혀 하루하루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왠지 서른보다 스물아홉이 더 별로인 듯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서른이면 아예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이라도 갖고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스물아홉은 무언가 발악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역시 아홉수란 단어가 괜히 있는게 아닌가 싶다. 뭘 해도 의욕도 즐거움도 없고 체력 또한 눈에 띄게 저하된 걸 느낄 수 있었다. 이것 또한 내년이 되면 '그래도 작년에는 20대였잖아' 라는 생각을 하며 30대가 된 것을 한탄하겠지. 지금이 제일 젊고 행복한 때라는 것을 자꾸만 망각하는, 참 어리석은 요즘이다.


20대 초반부터 돌아보면 참 측은하다. 3수 끝에 남들보다 대학에 늦게 입학해 작년 2월 느즈막히 졸업했다. 동갑내기 친구들에 비해 아주 늦게 졸업한 셈이다.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에 1학년 때부터 닥치는대로 대외활동과 봉사활동을 하며 전공분야에 경험을 쌓으려 애썼다. 4수씩이나 해서 들어간 학교에 만족하지 못해 1년을 더 휴학하고 편입까지 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내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것이었을 뿐, 졸업하고 나서 이력서를 넣을 때는 나의 경험이 어느 곳에 비빌만한 행적이 아님을 깨달았다. 예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나는 그제서야 일반계열 대학교 학생들과 내가 많이 다른 것을 하며 살았음을 알게 되었다. 하필 내가 졸업한 학교의 클래식 작곡과는 상업적인 쪽과 아주 크게 거리를 두는 커리큘럼을 갖고 있었다. 취업이 아닌 예술가를 양성하려는 학교에서 취업에 관련된 정보를 많이 뽑아먹을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아등바등 했던 나의 교외경험들은 예술계 기관으로 취업하려는 다른 일반계열 경쟁자들에 비해 아주 알량하고 귀여운 수준이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음악에만 전념하며 작곡가가 되겠다고 꿈꾸기도 했었다. 좋은 음악을 만드는 행위가 참 멋져 보여서 작곡과에 진학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곡가란 직업 하나를 목표하기엔 너무나도 불안정한 삶을 오랫동안 지속해야 했다. 음악 하나만 바라보며 성공할지 안할지도 모르는 곡을 계속 만들며 다른 돈벌이가 있으면 다행인 것이다. 그마저도 다른 돈벌이가 우선순위가 되면 내 음악엔 전념하기 힘든 것이다. 철없던 나는 그때서야 왜 예체능이 돈 많아야 하는거라고 불리는 것인지 알게됐다. 나를 뜯어말리던 엄마에게 죄송해지기 시작했다. 자신만만하게 음악으로 돈벌거라고 했던 내 자신에게 부끄러움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4수에 편입까지 한 내가 대입을 다시 준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공과 아예 다른 진로를 찾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너무나도 힘들게 입시했기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는게 내겐 최선의 선택이었고, 4학년 무렵부터 예술계통으로 다양한 방향을 생각해 준비했으나 현재까지 딱히 마음에 드는 상황에 처해있지는 못하다.


졸업한지 딱 1년 6개월째다. 졸업 직후 운 좋게 잠시 일했던 유아음악교육 회사는 좀 더 많은 것을 준비해 취업하고 싶은 욕심에 한 달만에 퇴사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작곡에 미련이 남아 학비가 무료인 독일로 석사 유학을 생각하기도 했었다. 음악에 미련은 남는데 진득하게 할 자신은 없고, 회사에서 돈을 벌고 싶기도 한데 또 아무 곳에나 가기는 싫고. 지금 생각해보니 최악이다. 조금씩 건드려보기만 하며 어느 곳에도 제대로 마음 두지 못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또래 친구들은, 특히 동갑내기 여자 친구들은 벌써 입사 6년 차인데 나는 뭐 하고 있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대학이 전부가 아닌데 뭐하러 4수 씩이나 했을까. 와중에 인생은 한 번에 망하는게 아니라 서서히 망하는 것이라는 글을 어디서 봐버렸다. 누가 내얘기를 써놓은 것인가 하며 끝도 없는 비관으로 지난 1년을 보냈다. 취업 못하면 어디서든 돈벌어 모아서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와야지 했던 막연한 계획도 코로나 탓에 무너졌다.


그러던 중 좋아하는 아티스트인 아이유의 새 앨범이 나왔다. '라일락'. '젊은 날의 추억' 이라는 꽃말을 가진 꽃 이름을 앨범 제목으로 삼아 20대를 아우르는 앨범을 냈다. 라일락 뮤직비디오를 다 보고는 아이유가 눈물나게 부러워서 진짜로 울어버렸다. 불행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아이유는 해도 해도 너무한 캐릭터다. 질투는 커녕 이지은이라는 사람에게 존경과 경이로움의 감정을 느꼈다. 나는 아직도 아이유의 '팔레트' 노래 가사인 '이젠 조금 알 것 같아, 날.' 이라는 말도 온전히 공감은 안된다. 나는 아직도 나를 아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데 아이유는 스물 다섯에 본인에 대해 알았다니. 팔레트 앨범이 나왔을 당시엔 그저 그녀처럼 멋있는 음악가가 되고 싶었는데 4년이 지난 지금은 환상에서 헤어나와 박수를 치게 된다.


라일락 앨범의 수록곡에 '에필로그' 라는 노래가 있다. 그 곡에 나오는 '그것만으로 끄덕이게 되는 나의 삶이란 충분히 의미 있다', '내 맘에 아무 의문이 없어 난 이렇게 흘러가요' 라는 가사는 아이유가 20대를 돌아보며, 또 30대를 맞이하며 느끼는 감정이라고 한다. 나는 그저 멋지게 느껴질 뿐 내 삶에는 조금도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본인의 20대에 아무 의문이 없다니. 참으로 부러울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젊음을 좀 더 길게 가지고 가기로 했다. '영원한 젊음, 영원한 청춘' 이라는 꽃말을 가진 '헤베꽃' 을 테마로, 이어지는 글부터는 나의 20대의 추억들을 단편으로 써내려가려 한다. 작곡을 전공한 덕분에 학교에서 쓴 곡들마다 나만의 감정이 있다. 때로는 나의 지난 곡들을 글감으로, 때로는 음악과 무관한 이야기들로 써내려가려 한다. 나름대로 나의 20대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길 바라며, 또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힘과 위로가 되길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종혁이의 먹을궁리] 햄버거 포에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