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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Aug 10. 2023

어떻게든 책을 맛보게 하자.

12살에 다시 시작하는 책육아

 책육아를 다시 시작하고 싶은데, 어떻게 아이를 책으로 오게 할까?

만약에 꾸준히 책을 읽혔던 아이라면 이 과정이 덜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혀 책을 읽지 않았던 아이라면? 혹은 이제 엄마가 하도 책 읽으래서 지긋지긋하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책으로 아이를 이끄는 것은 분명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책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래야만 책육아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어설프더라도 이렇게라도 해야 하나 싶더라도 우선 당장 아이를 유혹해 보자. 명령하고 억지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유혹해야 한다. 여기 내가 썼던 방법들을 제시해 보겠다. 하나라도 먹히는 게 있기를 바라면서!


보상을 제시하라.

 어쩌면 가장 사용하기 쉽고 떠올리기 쉬운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아이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분명히 원하는 게 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용돈이 필요하기도 하고, 친구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여러 가지를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사달라는 물건들도 갈수록 고가이다. 이런 것들을 이용하자. 아이가 핸드폰만 붙들고 게임을 하는가? 그렇다면 책을 읽어서 현질(현금으로 게임 머니를 충전하는 것 등)할 수 있게 해 줘라. 100쪽 이상의 책을 읽고 천 원 이천 원 현질 할 수 있다면 아이템발이 중요한 우리 아이들은 당장 어느 책이 빨리 읽을 만한가 책장을 둘러볼 것이다.

 혹은 아이돌 포토카드를 모으려고 음반을 사달라고 조르는가? 그렇다면 책을 몇 권 읽으면 사주겠다고 해보아라. 사실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대개 독서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몇 권은 금방 읽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당장 아이들을 책 앞으로 이끄는 것이다.

 보상은 용돈, 원하는 선물, 자유시간, 꿈에 그리던 소원(이런 것은 책 권수를 늘리자) 등 다양하다.

 예시로 나는 아이에게 한글 책 100권, 영어책 100권 읽으면 강아지를 키울 수 있겠다고 파격적인 보상을 제시했다. 그리고 둘째 아이에게는 역시 그만큼 책을 읽으면 새 핸드폰을 사주겠다고 했다.  물론 어느 정도 강아지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둘째의 폰도 바꿀 때가 되었긴 하다.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보상을 제시하자.

 그리고 보상은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 우리 아이들은 책을 잘 읽는 수준이어서 긴 목표를 정했지만 만약 책 읽기가 힘든 친구들이라면 당장 한 두 권, 혹은 한두 챕터로 시작해야 한다. 약간의 노력이면 달성할 수 있어야 보상도 받고 싶은 마음이 드는 법이다. 만약 누가 우리에게 하루 만보씩 빠지지 않고 3년을 걸으면 1억을 주겠다고 해보자. 나는 4천 보도 걷기 힘든 생활패턴이라 도전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산책으로 30분 걷기를 하면 커피 한잔 사주겠다고 제안한다면 30분쯤이야 나는 걷고 그와 커피를 마실 것이다.

 목표는 달성 가능한 수준으로 보상을 제시하라.



아이의 관심사를 이용하라.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움직인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엄마가 꼬드기는 일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엄마가 대놓고 나를 움직이려고 보상을 제시한다면 오히려 반발심으로 흥! 그런 거 안 한다고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의 관심사를 이용한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수 있다. 원하는 보상을 제시하는 것과 비슷한 결이다.

 아이의 관심사를 파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아이를 관찰하자. 내 아이,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좀 더 조심스럽게 관찰한다면 우리 아이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의 경우를 살펴보면, 5학년인 큰 딸은 아이돌을 좋아한다. 그룹 IVE의 앨범을 사서 모으고, 유진이가 나오는 지구오락실을 챙겨본다. 친구와 사람들을 너무 좋아한다. 그리고 동물에게도 관심이 많다. 햄스터를 키우고 있는데, 강아지를 키우는 게 소원이다. 그러면 동물 쪽이 쉬우니까 동물 분야를 공략한다. 요즘에는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서 강아지의 심리를 파헤치는 책이나, 관련 동화도 많다. 나는 적당한 시사점을 주는 책이라면 웹툰을 엮은 책도 가리지 않는다. 나 역시 사춘기 때 만화를 보면서 인생에 깨닫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아지 마음 알기, 수의사 이야기, 강아지 키울 때 주의 사항 등이 나와있는 책들을 은근슬쩍 내밀었다. 아이는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기 때문에 선뜻 읽는다.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언니나 친구가 읽었던 책도 살짝 내밀어 준다. 그 친구에게서 책을 물려받으면 좋다. 같이 책을 읽고 경험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데, 아이들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스스로 나누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냥 '사촌언니가 너무 재밌게 읽었다는 책이라는데 너도 읽으면 좋을 것 같다고 줬네.'라고 은근슬쩍 내민다. 읽든지 말든지 엄마는 딱히 심드렁해 보여야 하는 게 포인트! 사춘기가 시작되려는 아이들은 부모 말에는 은근 반항하고 싶지만 또래 집단에는 무조건 따라가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다.

 내가 다음에 시도할 것은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어떤 책을 읽었나, 어디에서 무슨 책을 언급했나 찾아봐서 내밀어 주는 것이다. 사실 딱 한 그룹만 오래오래 좋아하진 않는다. 자기들이 덕질을 아는지, 탈덕했네 입덕했네 벌써부터 난리다. 그런 자신들의 우상이 언급한 책이라면 아이들도 눈길이 한번 더 가지 않을까? 아이유라면 책 제목이 연관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책을 추천할 수도 있고, 만약 좋아하는 그룹이 BTS라면 가사를 이용해서 나온 책도 있어 더 좋겠다.

 둘째 딸은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한다. 아빠한테 들키면 혼나는 데도 심야괴담 TV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추리 드라마를 다시 보기 해서 여러 번 본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역시 추리 소설이 책 읽기를 시작하는 데 최고다. 무서운 이야기 책 중에도 읽을 만한 책이 있다. 너무 잔인하거나 뜬금없이 무서운 것만 나오는 책 말고 세계 여러 나라의 괴담, 공포 탐정 등 스릴이 넘치면서도 서사가 있는 책들로 추천하자. 아이들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무서운 이야기 읽기에 푹 빠질 것이다.


 듣기부터 시작하라.

 어린아이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들려줘도 괜찮다. 우리 딸들은 잠자리 독립을 제대로 된 과정을 거치지 못한 것 같다. 아직도 잠이 안 온다며 안방으로 찾아오고, 유튜브를 듣다가 자도 되냐고 매일 묻는다. 아이들이 잠이 들 수 있도록 엄마가 15분 정도 침대 곁에서 머무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고학년 아이들이라고 해도 아직은 아이다. 좀 머리가 큰 아이라도 엄마가 곁에서 잠들기를 기다리며 손을 만진다던가 배를 쓰다듬는 그런 행동을 싫어하진 않을 것이다.

  바로 그 시간을 이용해서 책을 읽어준다. 아이는 그 책 내용에 관심을 갖게 되고 엄마가 매일 짧게 읽어주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그 책을 찾아 읽을 수도 있다. 나는 큰 아이가 잠들기 전에 내가 읽던 책을 읽어주었다. 아이도 관심 있어할 만한 재밌는 내용인 불편한 편의점, 달러구트 꿈 백화점 소설을 읽어주었는데, 아이는 그 내용이 재밌었는지 다음 주에 스스로 그 책을 다 읽었다. 잘 때 읽어줄 만한 책으로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이 좋다.

 만약 읽어주는 게 힘들다면, 오디오 북을 활용하자. 내가 구독하고 있는 '밀리의 서재'에는 책을 AI가 읽어주는 오디오북도 있고, 간추려서 읽어주는 버전도 있다. 스타가 녹음해서 읽어주는 책도 있는데 이런 것들을 활용하면 아이가 책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상대적으로 '난 책 싫어.'를 입에 달고 사는 둘째(4학년)도 네이버 오디오북 어플을 이용해서 '초등탐정 강이치' 내용을 듣다가 자기를 좋아한다. 이 건 오디오 콘텐츠가 먼저 나오고 나중에 책으로 출판한 사례 같은데, 이 책을 사줬더니 글씨 크기가 작은데도 꽤나 열심히, 즐겁게 읽었다. 요즘 북패드를 이용해서 책을 보여주는 사례도 많다. 북패드의 관심이 종이책으로 옮겨가는 것보다, 오디오북으로 듣던 관심을 종이책으로 옮기는 게 사실 훨씬 쉽다.

 때로 어떤 아이들을 부모는 모르지만 글을 읽는 게 생각보다 힘들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난독증이 그러한데, 난독증이라고 하여 글자를 전혀 못 읽는 경우만 있는 게 아니다. 읽을 수는 있지만 파악이 힘들거나, 읽는데 오래 걸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어쨌든 읽고 쓰기가 되니 부모들이 파악이 쉽지 않다. 이런 경우는 듣기로 책을 접하는 게 훨씬 편하고 좋다. 꼭 난독증이 아니어도 책 읽는 훈련이 덜 된 아이들은 청각적으로 먼저 들어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즐긴 뒤에 글로 만나면 이해도도 높아지고 쉽게 쉽게 읽을 수 있다. 이런 경험이 쌓여야 글만으로도 만나도 쉽게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만약 책을 엄마가 읽어줬다면, 아이들은 그 책을 읽을 때 책 내용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엄마와 함께 했던 분위기 감정도 느끼게 된다. 책에 대한 좋은 경험이 더 쌓여가는 것이다.


 저학년용 책이라고 무시하지 마라.

 '이제 고학년인데 언제까지 그림 있는 책을 볼 거니?' 하며 아이들을 억지로 성장하라고 다그치지 말자. 나도 아직도 그림책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한 페이지에 몇 단어 없는 어린아이용 책들도 몇 권은 아직도 비울 수 없다. 그림책만이 가진 감성이 있기 때문이다. 책이 주는 것은 너무도 다양하다. 정보나 지식을 주기도 하고 긴 서사를 들려주기도 하지만 감동도 준다. 글이 길다고 감동이 긴 것도 아니다. 짧은 그림책에 더 많은 감동과 생각거리가 담기기도 한다. 아이들이 책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대개 아이들은 지적 수준이 성장할수록 스스로 좀 더 긴 글의 책을 찾기 마련이다.

 그리고 저학년용 그림책이 책 확장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아직까지 글이 많은 책을 읽히기 어렵다고 아이가 좋아했던 그림책들을 다 버리지는 말자. 나도 꽤 비웠는데 버릴 수 없는 책들이 있다. 작가에게 사인받은 책,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들이다. 우리 가족은 '요시타케 신스케' 작가를 좋아한다. 이 작가의 책에는 독특함, 상상력, 참신함, 깊고 넓은 사고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글이 별로 없는 책이지만 볼 때마다 귀엽고 재밌다. 어처구니없는 발상에 실소도 나온다. 이게 이 작가의 매력이다. 우리 아이들도 이 작가를 좋아해서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있고 가끔 꺼내 읽는다. 아이들이 이런 어린이책을 좋아한다고? 한숨만 쉬지 말고 그 부분에서 시작하자. 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들을 물론 난도가 낮은 책이지만 그 작가를 좋아한다면 삽화만 들어간 다른 책들을 찾아낼 수도 있다. 아니면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 작가의 다른 책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요시타케 신스케는 그림책만 쓴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이나 '살짝 욕심이 생겼어' 같은 에세이도 몇 편 썼는데, 아이들을 이야기책이 아닌 에세이도 읽을 수 있게 하는 발판이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아 요시타케 신스케 작가가 신작 냈네, 이 책 사볼까? 하면 아이들은 대부분 그림책을 연상하기에 그래. 하고 흔쾌히 대답하게 된다. 그리고 귀여운 그림이 어쨌든 드문드문 있으므로 한 번은 펼쳐볼 것이다. 그리고 뭐야 그림책 아니네 하고 읽지 않더라도 작가에 대한 호감이 있으므로 꺼내 펼쳐볼 확률이 매우 크다. 다른 유명한 동화작가들도 그렇다. 중고학년용 동화를 쓰는 작가도 있을 테고 혹은 어른용 책을 주로 쓰는데 동화를 가끔 내는 작가도 있다. 그런 작가를 아이들이 좋아하게 된다면 책을 읽는 범위를 넓혀주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서점 데이트를 즐겨라

 아이들과 외출할 때 웬만하면 서점을 들른다. 책을 살 때도 있고, 사지 않을 때도 있지만 새로 나온 신간을 확인하고 책을 구경한다. 요즘 대형 서점에는 문구류를 같이 팔기도 하니 구경할 것도 많다. 맘에 드는 책을 서점 한 구석에 앉아 잠깐 읽을 수도 있다. 아이들은 물론 신간 만화책에 관심이 많을 테고, 우리 딸처럼 서점 가면 앨범부터 보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서점에 익숙해지고 책과 가까워진다.

 나는 특별한 날이면 서점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한 권 사준다. 생일이나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같은 날은 책을 사주는 날이다. 아이들을 서점에서 책을 고른다. 만약 만화책을 고른다면 나는 그럼 만화책 하나 사줄 테니 다른 책도 골라보라고 하거나 어린이 신간 구역에서 몇 권을 골라서 아이보고 그중에 골라보라고 한다. 다 너무 내 취향대로 고르면 아이가 싫어할 수 있으므로 아이가 관심 있어할 만한 책도 추천하는 게 좋다. 우리 둘째는 아직도 흔한 남매 같은 만화책류를 좋아하는데, 그런 책도 사게 해 준다. 그리고 얇지만 글이 꽤 있는 책, 그림도 적절히 있고 아이가 좋아하는 부류의 책, 혹은 전에 재밌게 읽었던 시리즈의 책 등을 추천한다. 둘째는 심사숙고하는 습관이 전혀 없어서 그림을 보고 대충 고르거나 얇은 책을 고른다.(얇은 책 고르면 엄마의 계략에 빠진 것임.) 그러면 나는 그 책들을 아이 책가방에 넣어준다. 요즘 많은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책 읽는 시간을 주는데, 아이는 그 시간에 그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런 시간이 없더라도 내 생일에 산 책, 내가 고른 책, 새 책이라는 인식이 있으니까 한 번쯤 책상에 꺼내볼 것이다. 그럼 우선 한 입, 맛은 본 셈이다.


우리집에 있는 요시타케 신스케 작가의 책들. 나도 아이들도 애정하는 책이다. 좋아하는 작가가 생긴다는 건 독자로서의 길을 출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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