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써지는데 어쩌나
올해는 일을 쉬고 있다.
번아웃, 우울증, 힘듦 등 쉴만한 많은 이유가 있었고 쉬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이 든다.
아예 일을 그만뒀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일로(그 일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므로 다른 일을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책을 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기획한 책이 쉽사리 써지지 않는다. 방법과 실천이 꼭 필요한 책인데 내가 별로 노력하지 않고 있어서다.
그래서 책을 쓸 생각을 말고 그냥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진심을 담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깊은 사색과 고민과 불안이 나의 글의 원천이었다.
그런데 일을 하지 않고 집안일에도 영 소질이 없음을 깨달으면서 점점 모두 다 놓게 되었다.
그렇게 글을 쓸 원료도 없어지고 있다. 나는 남는 시간에 핸드폰 게임에 열중한다. 책도 그리 많이 읽지도 않는다. 쓸 말이 없다.
앞으로 글을 쓴다고 핑계를 댔는데, 생활비는 어쩌나.
집에 있으면 글이 써지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정리하라고 잔소리하면서 정작 나도 집안 정리가 전혀 되지 않기 때문에 집중하기 힘들다.
시간은 빨리 간다. 나는 이것저것 집중력을 잃은 채 관심을 분산시키고 있다. 이것도 상상했다가 이것도 검색했다가 저것도 만들어봤다가 하면서.
나는 글쓰기를 왜 시작했었나. 나의 깊은 고민과 어려움에의 고찰이 정리가 필요했고, 글로 쓸 때 그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매우 단순한 사람이 되었고, 많은 고민과 어려움에 약간 초월한 상태가 된 것 같다. 우울증 약의 영향인지 약간 살짝 들떠있는 기분이고, 일을 안 하니까 더 잘해야 한다는 자기 검열에서 탈출해서 고민도 적어졌다.
고민거리를 만들어야 글이 써질까.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토해내는 일이다. 그 생각은 쉽사리 쓸만한 게 쥐어지지 않는 법이다. 인생의 고통은 생각과 글의 양분이 되나 보다. 그러면 나는 다시 고통스러워야 할까? 아니, 그건 좀 곤란하고 고통스럽지 않고 글을 쓰는 법을 찾아야겠다.
오늘도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잘하지 못하면서 연습도 안 하는 나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글 쓰는 것도 잘하지 못할 거면 때려치우고 싶은 게 아닐까.
글을 쓴다고 핑계를 댔는데, 나는 재능이 없다고 핑계를 대며 그만둘 판이다.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재능 따위 덮어두고 무엇이든 끄적여본다.